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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시원한 해장국의 대명사 콩나물국밥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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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7월 29일 (수) 00:16:57
최종편집 : 2020년 07월 29일 (수) 13:34:32 [조회수 : 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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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교회 집사님 부부가 소개해준 식당이 있었다. 이천의 설봉공원을 산책하다가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국수를 3000원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국수만 파는 것이 아니라 보리밥은 5000원, 콩나물국밥은 4000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저렴하지만 맛도 있어서 자신들은 종종 가서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번 찾아가 보았다. ‘들밥’이라는 이름의 식당이다.

세 가지 메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긴 했지만 그 날 내가 주문한 음식은 콩나물국밥이었다. 새우젓과 오징어젓갈과 청양고추 그리고 싱싱한 계란 한 개와 깍두기가 먼저 나온 뒤 팔팔 끓는 콩나물국밥이 뚝배기에 담겨져 나왔다. 착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국물의 맛이 깊고 담백했다. 국밥을 먹다가 밥이 좀 부족해서 밥 한 공기를 더 추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인심 좋으신 사장님께서 입구 쪽에 있는 밥솥에서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다 드시라고 한다. 이렇게 장사해서 남는 것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장 저렴한 맥도널드 햄버거 세트보다 더 착한 4000원의 가격으로 이렇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음이 감사해서 사장님께 따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판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니 이 식당건물이 자신의 소유이기에 월세가 나가지 않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콩나물 국밥의 국물 맛이 참 좋다고 하니 10가지 이상의 재료로 정성껏 육수를 내신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이셨다.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이천은 한정식이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 한식의 상차림은 밥과 국과 반찬이 따로 나오는 것이 기본인데 콩나물국밥을 비롯한 국밥은 밥과 국을 함께 말아서 나오는 음식을 말한다. 밥과 국을 한꺼번에 끓여서 나오는 국밥 문화는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을까?

국밥은 시장 문화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 지금은 시장이라고 하지만 고려시대 때부터 객주(客主)라는 상거래 행위가 이뤄지는 공간이 있었다. 전국의 보부상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다. 그 객주 주변에 술과 음식을 팔던 주막(酒幕)이 생겼고 그 주막에서 팔던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국밥이었다. 장사꾼들이 장사를 마치고 빨리 집으로 가야하기에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주었던 것이 국밥의 원형이다. 이 국밥의 문화가 조선시대 말기부터 발달한 시장문화와 함께 더 발달하게 된다. 그래서 지역별로 대표국밥이 탄생하게 되었다. 국밥에 들어가는 그 지역의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국밥의 이름이 달라진다.

내가 먹었던 메뉴가 콩나물국밥이라서 콩나물과 콩나물국밥이야기를 좀 더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콩나물을 먹었을까? 산둥성 태수 가사엽이 6세기에 지은 “제민요술”에는 콩의 종류가 나온다. 그 중에 황고려두, 흑고려두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고구려의 콩이 유명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시대에 콩을 이용해 장을 만든 기록은 여럿 남아 있지만 콩나물에 대한 기록은 없다. 콩나물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고려 때 발간된 의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콩나물이 약재로 쓰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콩과 콩나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익 선생(1681-1763)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말년에 귀농을 했는데, 선생이 지은 방대한 백과사전인 “성호사설(星湖僿說)” 6권을 보면 콩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서문에 “콩죽 한 사발과 콩나물로 담은 김치 한 접시, 된장으로 만든 장물 한 그릇으로 어른과 아이가 모두 모여서 다 배불리 먹고 파하였으니, 음식은 박하지만 정의는 돈독한 데에 무방하였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콩의 이로움을 적었다. 콩죽과 콩나물김치 그리고 청국장 이 세 가지를 삼두회(三豆會)라고 하였다.

콩나물은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였다. 1920년대의 기사들을 보면 일제 식민시대에 콩나물은 경성의 빈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사류박해”(1855년)에는 황권저(黃卷葅)(콩나물, 파, 붉은 고추, 마늘을 섞고 소금물을 부어 만든 콩나물김치)로, “일성록” 1795년 1월 21일자에는 숙채(菽菜) 1796년 2월 11일자에는 태아(太芽), “만기요람”에는 황채(黃菜)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콩나물은 사시사철 전국 어디에서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이후에 콩나물이 가장 유명한 지역은 전주였다. 특별히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이 유명한 이유는 전주가 물이 좋은 고장이기 때문이다. 콩나물은 물만 주면 자라는데 좋은 물을 주니 전주에서 나는 콩나물이 맛이 있었다. 그 덕에 전주 콩나물이 유명했고 콩나물국밥도 유명해 졌다. 오늘날 콩나물국밥은 전국적인 음식이 되었고 지역마다 특색 있게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콩나물에는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되어있다. 콩나물 한 접시에는 하루 필요량의 절반의 비타민 C가 들어있다. 신기한 것은 콩 자체에는 들어 있지 않은 비타민 C가 콩나물에는 듬뿍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숙취해소성분인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래서 콩나물 국밥은 해장에 매우 좋은 음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녹두를 싹 틔운 숙주는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먹지만 콩을 싹 틔운 콩나물은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고 한다. 콩나물과 콩나물국밥은 확실한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친근한 음식인 콩나물 국밥의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맛은 요즘처럼 눅눅한 장마철에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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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220.85.169.189)
2020-07-29 04:41:38
숙주 자식은 숙주를 안 먹고.

주님의 자식은 술을 안 먹고.

세상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 구별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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