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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유영모의 귀일신학, 이정배지음펜더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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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7월 15일 (수) 08:05:41
최종편집 : 2020년 07월 16일 (목) 09:06:35 [조회수 :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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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

유영모의 귀일신학

 

 

지은이 이정배

펴낸곳 신앙과지성사

값 30,000원

ISBN 978-89-6907-235-1 93230

 

다석학회에서 펴낸 『다석강의』를 필자 나름대로 읽고 재정리한 책. 전체적으로 『다석강의』의 목차를 따라 서술했지만 본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43장의 전체 제목을 조직신학적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구어체로 쓰인 본래 내용이 단순 명료화되었고 필자의 생각이 보태지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900쪽에 이르는 『다석강의』가 그 절반의 양으로 줄여졌고 책 제목도 『귀일신학』으로 바궈졌다. 『다석강의』가 말하려는 것이 결국 『귀일신학』이란 신학적 판단 때문이다. 이 시대에 학문적이고 영성적인 책이다.

 

다석 유영모의『 귀일신학』을 펴내며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

 

   
 

이 책은 다석학회에서 펴낸『 다석강의』(현암사, 1990)를 필자 나름대로 읽고 재정리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다석강의』의 목차를 따라 서술했지만 본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43강의 전체 제목을 조직신학적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구어체로 쓰인 본래 내용이 단순 명료화되었고 필자의 생각이 보태지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900쪽에 이르는『 다석강의』가 그 절반의 양으로 줄여졌고 책 제목도『 귀일신학』(歸一神學)으로 바꿔졌다.『 다석강의』가 말하려는 것이 결국『 귀일신학』이란 신학적 판단 때문이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다석 사상의 핵심을 서구와 변별된 차원에서‘ 귀일’이란 말에서 찾곤 했으나 아직까지 이 주제를 사용한 책이 출판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다석이 구술한『 다석강의』가『 귀일신학』이란 이차적 언어를 갖고서 재탄생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물론‘ 귀일’이란 말도 다석이 즐겨 쓰던 용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귀일신학』이란 제목은 필자가 처음 사용하는 것이리라.『 귀일신학』 속에 실린 두 편의 논문을 통해 필자는 다석 사상의 출처 및 세계사적 의미를 밝혔고 귀일신학의 핵심을 서술했다. 이는 오로지『 다석강의』를 엮어 펴냈던 다석학회 회원들, 특히 앞서 다석의 생각을 밝혀준 박영호 선생님, 정양모 신부님의 덕분이다.

 

그동안 필자는 다석 사상을 연구하여 두 권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모시는 사람들, 2009)과『 빈팅한데 맞혀놀이』(동연, 2011)가 그것이다. 물론 이들보다 앞서 김흥호 선생님과 함께 펴낸 책도 있었다. 여러 학자들의 글 모음집이었던『 다석 유영모의 동양사상과 신학』(솔출판사, 2002)이 그것이다. 다석을 연구한 필자의 처음 글이 실렸고 선생님과 함께 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필자의 연구서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앞선 두 책이 필자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책 제목들 또한 모두 다석 고유한 언어에서 비롯했다. 앞의 책에서 필자는 다석 사상을 서구의 종교다원주의 사조와 대면시켰고 다석을『 천부경』(天符經)을 매개로 동학과 연결했으며 함석헌, 김흥호로 이어지는 다석 학파의 기독교 이해를 일본 교토학파의 그것과 견주고자 했다. 나중 책에서는 다석사상을 통해 서구의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물과 대화하되 그 한계를 밝혔으며 유불선을 회통한 귀일신학의 골격과 본질을 연구했고 그리고 동서 생명사상의 틀에서 다석을 재조명했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금번 『다석강의』를‘ 귀일’(歸一)개념에 근거하여 독해했고 이에 방점을 둔 채 논지를 펼쳤다. 이 과정을 통해『 귀일신학』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는 다석의 생각이자 그분 직계 제자들로부터 배운 것일 뿐 그 이상일 수 없다. 신학교에서 30년 토착화 신학을 가르친 학자로서 다석 사상을 신학적 언어로 개념화시킨 작은 공헌만이 필자의 몫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다석강의』를 본격적으로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었다. 대학을 명예퇴직한 이후 다석 유영모란 인물이 학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붙들고 씨름해야 될 영성의 사람으로 다가왔던 까닭이다. 그를 알수록 동서를 막론한 이 시대 최고의 영성가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애시당초 필자는 이 책을 읽고 저서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기 위한 갈급한 상태에서 다시 손에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읽어 가면서 값진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았고 그를 종종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머리에서가 아니라 가슴에서 터져 나온 욕망으로서 그것은 오직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였다. 간혹 페이스북에 글을 옮겼을 때 제법 많은 이들이 다석이 내리치는 죽비에 정신 차렸다는 답 글을 올려주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글이 모아졌고 오늘 이 시점에 이르렀다. 다석의 글은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결코 읽히지 않았다. 때론 글을 위한 글을 쓰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리 쓰인 글들은 흡족지 않았고 폐기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다석강의』를 읽고 정리하는 동안 모처럼 직업적 종교인(신학자)이 아닌 신앙인, 구도자의 마음으로 살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다석을 가르쳐 주신 김흥호 선생님을 많이 생각했다. 살아계실 때 년 초에 세배를 가곤 했었다. 정월 초하루였음에도 선생님은『 다석일지』를 풀고 계셨다. 팔순을 넘긴 연세였지만 스승의 구술 언어를 글로 재탄생 시키는 모습이 지금도 경이롭게 기억된다. 생명과도 같은 자신의 시간을 바칠 만큼 스승의 말씀이 귀했던 까닭이다. 지난 2년의 삶에서 김흥호 선생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축복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 책『 귀일신학』을 두 해 전 탄생 백 주년을 맞았던 김흥호 선생님께 바치고자 한다.

 

『다석강의』를 꼼꼼히 읽으며 새삼 발견한 것은 첫 강과 마지막 강의인 43강이 모두 사생관, 죽음의 문제를 다뤘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다석에게 죽음의 문제가 중요했던 것이리라. 각 강의의 제목이‘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이다’와‘ 알몸이 아니라 얼맘으로 살라’로 되어 있다. 필자는 이를『 귀일신학』에서 다석의 사생관과 성령의 삶이란 말로 바꿔 달았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가 있고 죽었으되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뜻을 보태면서 말이다. 종교란 결국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석은 죽음 이후의 몸 적 소생이라는 인습적 부활신앙을 다루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을 믿었을 뿐이다. 죽음을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몸이 아니라 얼로 사는 삶이다. 얼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삶 속의 부활은 너무도 자명하다. 우리들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의 부활도 없다고 믿었던 고린도서 저자의 고백과도 상통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삶이겠다. 하지만 기독교, 불교를 막론하고 종교들이 죽음장사를 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장례식 이후 낯선 공간으로의 이주를 믿으라 권하며 정작 삶 속의 부활을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죽음을 삶 속에서 초월(극복)하고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 믿는 것이 다석이 말하는 부활인 것을 유념하면 좋겠다.

 

다석의『 귀일신학』이 인습화된 기독교에 던지는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목도하며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뉴 노말’ (New Normal)을 요구받고 있는 중이다. 종교, 특히 기독교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타 성에 젖은 신앙양식으로는 코로나 이후의 교회를 이끌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의 오만과 성직자의 무능을 목도했다. 종교로서의 기독교 역할에 회의를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위한 교회인지 안식일을 위한 교회인지 되묻기 시작한 까닭이다.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 사람을 도구로 여겼던 종교의 자기반성이 통렬히 이뤄져야만 한다. 축복신앙이 무너졌고 절대라 여겼던 가치가 실종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종교는 무너질 것이나 영성으로서의 종교는 영원할 것을 의심

치 않는다. 물론 제도 없는 영성도 위태로울 수 있겠다. 하지만 제도를 최소화시키고 영성을 깊게 하는 일이 더없이 필요하다. 안식일의 종교화가 아니라 일상의 영성화가 더 화급한 현실이 된 까닭이다. 일상이 없는 종교는 죄책감을 가중시켜 교회만을 살찌울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교회의 본래 이름인‘ 에클레시아’ 즉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을 과감하게 부활시켜야 옳다. 평신도,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독생자의 길을 걷도록 종교가 새로운 관점을 가르쳐야만 할 것이다. 만인 사제직을 입이 아니라 삶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신독(愼獨), 즉 어떤 시공간 속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있다는 확신 하에 자기 삶을 성찰하는 이들을 양육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만 옳다는 배타성도 자연스레 옅어질 수 있겠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만 바라봤듯, 한국 개신교도 지금껏 미국 교회만을 쳐다봤고 서구 기독교에서 답을 구해왔다. 하지만 그들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고 알았다. 코로나 사태로 허둥대는 기독교 서구 문명의 허약성을 목도한 탓이다. 이 점에서 본 책『 귀일신학』은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사는 기독교인, 아니 종교인들 모두에게‘ 새로운 규칙’을 제시할 수 있다. 생각하는 종교인들을 위해 본 책이 기여할 바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는 정년을 4년 6개월 앞두고 학교를 떠났다. 이제 그 시간이 다 지났고 마침내 은퇴시점에 이르렀다.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은퇴자로 살지 않았고 나름 더 열심히 글을 썼으며 땅을 일궜고 현장을 찾고자 했다. 김흥호 선생님께 헌정한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정식으로 은퇴의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 해야 할 작업이 산적해 있다. 모든 일을 잘 마친 후 여유를 갖고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염려하며 주변을 더 열심히 살피면서 살아가고 싶다. 필자가 쓴 다석의 글을 읽고 그때마다 마음을 나누고 평해 주신 여러분들이 기억난다. 이은선 교수를 비롯하여 석준복 감독님, 하중조 장로님, 박정규 교수님, 이면주 목사님, 조용훈 장로님, 김선주 목사님 등이다. 이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필자의 글을 소개해준 인터넷신문‘ 에큐메니안’의 이정훈 선생의 수고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신앙과지성사’에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일전의『 수도원 독서』에 이어 연거푸 두 번째이다. 본 책의 독자가 얼마나 될지 염려하면서도 출판을 결정해준 최병천 장로께 많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교정을 보아준 권오무 목사님과 직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바라기는 이 책을 갖고 이곳저곳에서 다석 강독회 모임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모임이 만들어지면 만사제치고 달려가 함께 토론할 생각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다석을 좀 더 체화시켜 멋진(?) 토착화 신학의 골격을 만들어 낼 뜻도 마음에 품고 있다. 다시 한번 말을 주신 다석 선생님과『 다석강의』를 펴낸 다석학회 회원들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길을 가다 길이 되라 했으니 애써 이분들이 가신 길에 발을 올려놓은 채 달려가고 싶다. 말에 삶이 실려야 힘 있게 출발할 수 있으리라.

2020년 5월 7일

아내 이은선 교수의 63번째 생일 날

부암동 현장 아카데미에서

이정배 두손 모음

 

차례

 

머리글·3

서론 논문 : 다석 유영모의 삶과 사상을 말한다·13

 

다석강의다시 읽다

 

1강 사생관/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 · 31

2강 기도/ 日三省으로 마음 곧게 하는 일 · 41

3강 종교/ (열매)없는 삶을 그치기 위하여 · 49

4강 사람/ 못된 짓 버리고 제 길 가라 · 57

5강 하느님/ 생각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 65

6강 귀일/ 온통 하나가 되는 지혜, 정의의 길 · 73

7강 자유/ 삶을 짐으로 만들지 말라 · 81

8강 빛^^/ ()의 세계를 뚫고 올라야 · 87

9강 하늘 법칙/ 세상의 인과율을 넘어서기 · 97

10강 참 자아/ 밝은 것()에 속지 말기 · 105

11강 진리/ 하나로 돌아갈 때 자유롭다 · 119

12강 기독교/주역을 통해서 본 십자가와 부활 · 129

13강 우주/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 137

14강 예배/ 인간을 위해 하늘이 쳐둔 쥐덫 · 145

15강 시간/ 삶은이제를 사는 것 · 153

16강 정신(신학)/ 아들이 아버지를 낳는 일 · 161

17강 구원/ 체면을 없애는 일 · 171

18강 예수/ 모든 것을 주고하나로 돌아간 이 · 183

19강 독생자/ 하늘 길을 곧이 곧장 가는 사람 · 193

20대학/ 하늘에 이르는 길 · 205

21강 진리파지/ 간디의 가르침 · 215

22강 불이(不二)/ 허공과 마음은 하나다 · 221

23강 말씀/‘ 빈탕한데의 주인 · 237

24강 인생관/ 맛이 아니라 뜻으로 살기 · 251

25강 대속/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약자들의 삶 · 267

26강 하늘/ 혈육이 아닌 정신의 근본 · 283

27강 삶의 목적/ 천국을 침노하는 일 · 293

28강 참말/ 말이 바르면 마음이 편하다 · 307

29강 영()/ 성령과 악령이 있다 · 325

30강 원죄/ 탐내고 미워하고 음란한 것 · 339

31강 상()/ 영원한 하나를 담은 그릇 · 355

32강 신의 속성/ 유일불이, 불이즉무(唯一不二, 不二卽無) · 365

33강 찬양/ 새로운 생각을 낳는 길 · 371

34강 하늘 마음(天心)/ 물건에 마음이 걸리지 않는 상태 · 379

35강 사상/ 강한 신념이 있어야 사상도 있다 · 391

36강 로고스()/ 우리 안에 있는 속알(예수) · 399

37강 영생/ 자신속의 속알을 밝히는(明德) · 405

38강 사랑/ 자신의 덕(곧이)으로 이웃을 이롭게 하라 · 413

39강 자속/‘ 이제를 타고 가며 하나에 이르다 · 419

40강 그리스도()/ 글이 서도록 하는 존재 · 435

41강 예정/ 사람은 누구나 분수(分受)가 있다 · 447

42강 신앙/ 자기 속의 큰 하나(大一)를 찾는 일 · 455

43강 영육/ 알몸보다 얼맘으로 살다 · 465

 

부록 논문 : 다석의 귀일신학에 대하여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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