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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비유를 좋아하셨는가?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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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7월 02일 (목) 09:25:57
최종편집 : 2020년 09월 14일 (월) 21:38:20 [조회수 :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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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님이 비유를 좋아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겨자씨 비유, 열 처녀 비유, 누룩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비롯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나는 생명수이다’ 등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비유가 부지기수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무려 삼분의 일 이상이 비유로 되어 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이 특히 천국을 설명할 때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이렇게 비유를 좋아하셨을까?

문학작품에 나오는 비유법에서 대표적인 것은 직유와 은유인데, 이 비유법에서는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직유는 ‘앵두 같은 그대의 입술’에서처럼 앵두와 입술을 나란히 놓고 ‘같은’이라는 단어로 그 두 단어를 연결해서 앵두가 지닌 특성을 입술에 연관시킨다. 그리고 은유는 ‘당신은 한 송이 장미’에서처럼 당신과 장미를 일치시킴으로써 장미의 속성을 당신에게 연관시킨다.

직유나 은유 같은 비유법에서는 어느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서 우리가 평소 잘 알고 있는 것을 그 대상과 연관시킨다. 앞에서는 ‘앵두’나 ‘장미’같이 우리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과 묘사하려는 ‘입술’이나 ‘당신’의 공통점을 부각시켰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대상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그 대상의 상태가 구체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앵두 같은 그대의 입술’이라고 말하면, ‘당신의 빨간 입술이 예쁘네요’라고 말할 때와 달리 그 입술의 붉은 정도와 입술의 탱탱하고 부드러운 상태가 눈앞에 선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가 빨갛게 익은 앵두의 색과 모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한 송이 장미’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당신은 아주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면 아름다운 정도가 막연하다. 그러나 당신을 장미와 일치시켜서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장미의 아름다움을 잘 알기 때문에, 당신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전달된다. 예수님이 비유를 좋아하신 것은 비유가 지닌 이런 효과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유적 이야기를 통해서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것을 단지 몇 마디로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셨다. 하나님이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효과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본 일이 없는 천국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관련시켜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단지 몇 마디로 천국을 가르치셨다.

천국이 얼마나 귀중한 곳인지 그리고 그 천국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설명하려고 한다면, 천국은 아름다운 곳, 황금보석으로 꾸며진 곳이라는 말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걱정과 근심이 없고, 배고픔과 헐벗음도 없고, 질병과 죽음도 없고, 사기꾼이나 악한 사람도 없고, 착한 사람들이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곳이다. 따라서 이 천국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가려고 노력할 만한 곳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우리가 본 일이 없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미사여구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천국을 보화 혹은 좋은 진주에 비유하셨다. 그리고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비유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그 천국에 가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간략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실감 나게 전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여러 가지 역사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탈출시키시고 광야에서 그들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언급할 것이다.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을 세워서 여러 부족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인도하신 예들을 거론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이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악에 빠졌을 때 채찍과 당근으로 그들을 지도하신 것을 열거할 것이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그런 불충한 인간들을 버리지 않고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의 피를 통해 구원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장황한 이야기가 듣는 사람에게 진한 감동을 줄지는 의문이다. 이런 역사적 예들은 그 설명을 듣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별로 실감이 나지는 않게 마련이다. 실상 사랑은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면서 설명하시지 않고, 비유적 이야기를 통해서 그 사랑을 가슴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전하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경험한 그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빌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버리고 나간 아들을 밤낮으로 걱정하다가 그가 거지꼴로 돌아오자 뛰어나가 그를 끌어안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쉽게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그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주 짧게 그리고 생생하게 전하셨다.

그리고 이 비유 이야기에서는 큰아들의 태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드러나기도 한다. 탕자의 비유는 양날을 가진 칼인 셈이다. 그런데 비유가 아니고서는 그 두 가지를 이렇게 동시에 그리고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만약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천국이나 하나님 사랑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그 이야기는 역사강의나 신학강의처럼 지루했을 것이다. 강의가 지루해지면 학생들은 하품을 하거나 졸기 마련인데, 예수님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학점의 부담이 없는 사람들이 성인 남자만 4, 5천 명씩 자발적으로 몰려들었겠는가!


예수님이 이렇게 재미있고 실감 나는 명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유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문학적 재능을 지니셨기 때문이다. 힐리어 스트라톤은 예수님의 비유를 극찬하면서 모든 문학과 예술 중에서 어느 것도 예수님의 비유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로버트 스타인도 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나는 예술적 특성과 천재성을 언급하면서 그분은 빼어난 이야기꾼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분명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분이었다. 예수님이 비유를 좋아하신 것은 비유를 통해서 당신의 복음을 쉽고 재미있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문학적 소양을 길러서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할 수는 없을까?

(그런데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 구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는 필자가 <당당뉴스>에 올린 ‘막 4:12을 반어법으로 풀어보면 어떨까?’(2017-01-11)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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