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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요나1장10절~17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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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6월 23일 (화) 20:26:14 [조회수 :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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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요나1장10절~17절

 

 

1. 누구 때문에

 

① (11절)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 고대 세계 여러 민족들은 풍랑을 잔잔케 하거나 재앙을 피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일삼았다.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의 제물로 희생된 심청과 같은 인신제사다. 오늘날에도 타인을 희생시켜 위기를 모면하려는 이들이 많다.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정당화하며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기유익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다.

 

② (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 ‘나의 연고인줄 내가 아노라’ 요나의 자백이다. 자기의 허물과 죄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배움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비움에서 시작된다. 누가 깨끗한 사람이냐, 자신의 더러움을 인정하고 자주 씻는 사람이 진정 깨끗한 사람이다. 누가 의인이냐,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한 사람이다. 용서받지 못하는 유일한 죄는 회개하지 않는 죄다. (요일1:8~9)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③ (13절)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 지라”

▶ 한 배를 탄 선원들의 인간적인 방법과 노력은 아무 소용없었다. 죄를 씻는 길은 회개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사람의 공로나 선행 따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메시지성경) ‘그러나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이방인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요나를 희생시키기보다 함께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강자가 약자를 희생양삼거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일이다. 재앙과 재난 앞에서 ‘남의 탓’만 하기보다 ‘내 탓이오’가 성숙한 태도다.

 

 

2. 주의 뜻대로

 

① (14절)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 (메시지성경)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오직 하나님 이자가 살아온 삶 때문에 우리를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이 자를 죽인다고 해서 우리를 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는 하나님이시니, 주께서 가장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해주십시오’ 이방인 선원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행했던 하나님의 사람 요나와 대조적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유대인(히브리인)’, ‘예언자(하나님의 사람)’ 요나와 달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선원들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이들의 삶의 태도는 대조적이다. 이방인만도 못한 유대인, 선원들만도 못한 선지자, 불신자만도 못한 신앙인들을 통해 스스로 믿음 좋다고 자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준행하지 않는 신앙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②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 (메시지성경) ‘그들은 요나를 들어 배 밖으로 던졌다. 그러자 즉시 바다가 잠잠해졌다. 선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 대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했고, 제물을 바치고 서약을 했다’ 결국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이방인 선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

 

 

3. 제 삼일에

 

① (16절)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 요나를 위해 예비 된 큰 물고기는 미리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증거 한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 끝장날 때 신묘막측(神妙莫測, 신령하고 기묘하여 감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신비한 능력)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하신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질 때 곧 요나의 죽음(희생, 자백)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다. 풍랑과 죽음의 진정한 목적이 드러난다. 인생의 풍랑과 재난은 망하고 죽이려는 게 아니라 회개와 성찰, 회복과 영광이다. 죽음으로 사는 삶이다.

▶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호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메시지성경) ‘우리가 이틀 내에 회복되고 사흘째에는 주께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해주실 것이다’ 점진적인 구원의 완성을 기록한다. 이틀과 삼일은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다. ‘오늘’은 우리의 시간이다. 오늘 우리가 회개할 때 ‘이틀 후에’ 회복이 시작되고 ‘제 삼일에’ 마침내 완전케 하신다. 제 삼일의 완전한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 오늘 우리의 회개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요 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는 말씀이다. 부활의 역사는 우리가 오늘 성전을 헐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나님 앞에서 죽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신다. 우리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하나님께서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 예배의 본질은 희생이고 기도의 본질은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기부인이다. ‘주께서 가장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해주십시오’라는 선원들의 기도는 예수께서 하신 겟세마네의 기도와 일맥상통한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진정한 기도는 내 뜻을 내려놓고 더 크고 높으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옛 자아가 죽을 때 내 안에 주님이 사신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이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삶의 자세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요3:28~29) ‘너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전도와 기도로 한국교회 쇠퇴를 극복하고 다시 일으키겠다는 건 스스로 그리스도를 자처하는 오만방자한 태도일 뿐이다. 불의한 방법을 써서라도 감독에 당선 되면 훗날 감리교회를 정의롭게 개혁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무에 올라 고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불의한 제도를 유지하며 입술로만 공정한 감독선거를 외치며 눈 가리고 아웅 할 때가 아니라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감독선거의 방식을 회개하고 거룩하게 바꿔내야 할 때다. 남 얘기하기보다 삶의 위기와 재난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철저한 회개와 성찰이다. 하나님의 선처를 인내하며 기다릴 뿐이다. 다시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건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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