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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배는 어쩌다가 언덕에 올랐을까?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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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6월 20일 (토) 00:33:36
최종편집 : 2020년 06월 20일 (토) 00:36:30 [조회수 : 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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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을 부르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바로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라는 후렴구 때문입니다. 창파(滄波)는 ‘넓은 바다 푸른 물결’이란 뜻으로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의 한 복판을 지칭하지만 막상 용기 있게 그곳으로 나아가면 성령의 바람이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창파에 믿음의 배를 띄워야 하는 것은 대충 알겠는데 믿음의 배는 도대체 어쩌다가 언덕에 올라가 버린 것일까요? 이 찬송가를 지금까지 수 백 번은 불러봤을 텐데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따라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한 이 때에 가볍게 환기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배가 언덕에 오른 이유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1. 당연히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다. 다만 배를 타고 떠나야 할 사람이 언덕에 살고 있거나 언덕에서 먼 바다를 바라만 보다가 믿음을 가지고 언덕을 떠나는 것이다. 또는 언덕은 어서 빨리 떠나야 할 고난의 언덕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배가 아니라 사람이 언덕에 있으며 어느 순간 믿음을 덧입어 항구로 내달려 배를 띄워 항해를 떠나는 것이다.

2. 이 배는 노아의 방주와 같이 세상을 구원하는 배다. 홍수를 앞두고 언덕에서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배일수도 있고 세상의 홍수 속에서 항해를 하다가 지금 아라랏 산과 같은 언덕에 걸려 있을 수도 있다. 이 배는 언젠가 다시금 언덕을 떠나 창파로 나아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3.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배에는 많은 사공이 타고 있어서 창파로 가지 못하고 산으로 갔고 지금 언덕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3번 의견에 제일 많은 애착이 갑니다. 올 해 감독 및 감독회장 선거를 앞둔 이 때와 맞물려 교단적으로나 개교회적으로나 교회의 사공을 자처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사공이 많아 믿음의 배가 언덕으로 올라가버렸다는 터무니없는 해석을 해도 이 가벼운 농담이 진담으로 들릴 것만 같은 이 농담 같은 현실이 참으로 쓰라립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의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께서 직접 걸어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 생명의 길을 따라 오늘도 믿음의 항해를 떠나야합니다. 처음에는 두렵지만 그 항해는 무조건 성공하는 항해가 될 것입니다. 1절 가사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 보다 깊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품은 바다 보다 더 넓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가의 4절 가사는 원래 다음과 같습니다.

자! 배를 띄워 이 드넓은 바다로 항해를 시작 합시다
구원의 은혜가 가득 넘실대는 그 바다로
주님의 충만하심을 우리 잘 알기에
그 위에서 표류한들 은혜 가운데 있을 뿐입니다

깊은 바다를 향해 배를 띄웁시다
익숙한 땅을 저 멀리멀리 보내가며
거룩한 바다로 나아갑시다
구원의 은혜가 가득 넘실대는 그 바다로!

그나저나 이 배는 어쩌다가 언덕에 있는 것일까요?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정답은 선택지에 없습니다. 그나마 1번이 제일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배는 지금 언덕 위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산과 같은 언덕이 아니라 진수식(進水式)을 앞두고 있는 배가 경사진 높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번역의 한계와 운율 때문에 그 위치와 상황을 짧게 ‘언덕’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배의 진수식에는 빠질 수 없는 세레머니가 있습니다. 여성 진수자(Sponsor)가 뱃머리에 샴페인 병을 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는 세례식입니다. 또한 도끼를 가지고 진수대와 함정 간 연결된 줄을 자르는데 이것은 항해의 삶으로 나아가는 배의 탯줄을 자르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말 1절 가사에서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가보라’라는 표현은 정박해 있던 배의 줄을 푸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과감하게 배의 탯줄을 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Launch out in the deep, cut away the shoreline"

배의 진수식에는 이와 같은 영적인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시인은 분명 어딘가에서 배의 진수식을 직접 봤을 것이고 그 장엄한 장면을 모티브 삼아 이 찬송시를 지은 것입니다.

요즘에는 수중 도크를 이용하거나 최신 운반 기술을 사용해서 서서히 배를 물위에 띄워 놓고 진수식을 하지만 과거에는 보다 화끈한 진수식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전통을 고수하는 조선소들이 있습니다. 작은 배는 언덕에 있는 배 앞에 통나무를 깔고 앞으로 굴려서 진수하지만 커다란 배는 옆으로 기울여서 바다로 띄웁니다. 위험한 과정이긴 하지만 배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시작부터 몸 사리지 않고 이 험난한 과정을 마주해서 이겨 냈으니 이 배는 이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위험에도 용감하게 맞설 것이고 이 배가 지나는 곳 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가에 얽힌 이러한 이미지를 생각하며 302장을 힘차게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이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이루어지는 모험처럼 느껴지고 희망과 용기가 불끈 불끈 솟아나실 것입니다. 평화의 반대말이 안전이라고 합니다. 얕은 물가에 머물며 안전을 추구할 때 우리는 참 자유와 참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자! 우리도 힘차게 두려움의 줄을 끊어버리고 세상 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출항(Launch out)합시다! 우리 모두의 믿음의 항해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arcQZdA88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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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석 (220.85.171.7)
2020-06-20 22:01:05
세상의 결정권 = "돈" = 세상 고통.

설교 뒤에 '돈내라' -> 기독교방송 뒤에 '돈내라' -> 은혜를 깨는게 '돈내라'

옛날에 교회 문 앞에 연보내고 예배 드린게 은혜로웠다.(고향 목사님은 예배 때 돈이야기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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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석 (220.85.171.7)
2020-06-20 22:10:22
목사도 장로도 기도가 = "주시옵소서"

주신게 차고 넘친다 --> 이 눈먼자들아.

지시하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 저 여기 있나이다 명령만 내리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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