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많은 이탈리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밀라노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도시는 아니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관광수도의 역할을 맡고 있다면 밀라노는 경제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밀라노에 대하여 이탈리아 작가 ‘지아니 데 마르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밀라노의 거리는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있는 목가적, 역사적 분위기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 도시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대도시로 발전한 거리로써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모던하면서 전통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밀라노의 특징이다.”

▲ 두오모 옥탑에서 바라 본 밀라노

즉 밀라노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방대한 이탈리아의 역사 속에 묻히거나 발목 잡히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의미다. 로마나 피렌체가 역사를 즐기는 도시, 나폴리나 시칠리아는 태양과 바다를 즐기는 도시라면 밀라노는 과거가 아닌 현대의 이탈리아를 만끽할 수 있는 도시다.

▲ 밀라노 두오모 광장 풍경

이렇게 현재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거의 모든 여행자들의 관심과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여행의 우선순위에서는 항상 밀리는 곳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이탈리아에 들어가기 위해 잠시 지나는 곳으로 여겼다. 귀에는 익숙하지만 눈에는 익숙하지 않은 도시라고 하면 딱 맞을 밀라노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먼저 밀라노 두오모로 가라. 밀라노 두오모는 세계적인 고딕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성당으로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50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지어지면서 고딕양식 외에도 다양한 건축양식 및 시대별로 변화된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높은 첨탑이 인상적인 밀라노 대성당은 135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많은 조각품으로 채워져 있다.

▲ 밀라노 두오모 첨탑들

유럽에서 매 도시마다 빠지지 않고 성당을 방문하게 되는데, 계속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밀라노 두오모에서는 비록 비용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꼭 성당 위로 올라가 보라. 유럽의 수많은 성당들을 올랐지만 밀라노 두오모는 단연 최고다. 그곳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밀라노도, 저 멀리 알프스 산맥도 보인다.

▲ 밀라노 두오모 옥상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산들을 찾으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기념 국립 과학기술 박물관>에는 그가 발명한 기구의 디자인과 모델 등,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찌에 성당>에서는 <최후의 만찬>을 볼 수 있다. 걸작을 즐기는 일은 충분히 가치 있지만 꼭 예약하고 가라. 적어도 석 달 전에는.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찌에 성당

마지막으로 성 암브로시우스의 흔적들이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본래 밀라노의 총독이었다. 그는 니케아파와 아리우스파가 밀라노 교회 감독 선임으로 첨예하게 대립하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연설했는데, 뛰어난 연설로 청중들을 움직인 그는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라는 외침에 의해 총독에서 감독직에 오르게 된다.

암브로시우스의 업적(?)은 소위 교황의 수위권 확립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그는 당시 동과 서로 분열되었던 로마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신실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데살로니가 주민들의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하자 황제를 상대로 참회할 것과 허락이 있을 때까지 교회 출입을 금한다고 선언했고,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황제의 참회와 사과로 일단락되었다.

세상의 통치자가 주교 앞에 무릎 꿇고 참회했던 이 사건은 훗날 후대 교황들이 세상 통치자들을 향해 수위권을 주장하는 단초가 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승리에 앙금이 남지 않는 경우가 있겠는가? 암브로시우스의 순수한 신앙적 의도와는 달리 이후에는 교황과 세상 통치자들 중에 누가 더 힘이 있는가를 겨루는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살다보면, 혹은 목회하다보면 어느 한편의 일방적이고 속 시원한 승리는 해결이 아니라 갈등의 불씨만 되는 경우를 본다. 암브로시우스가 일대일로 신앙적 권면을 황제에게 했다면 이후 역사에서 벌어진 권력다툼은 덜했을 것이고 상호승리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밀라노 두오모의 역대 주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고, 그가 목회했던 <성 암브로시우스 성당>에서 목양의 지혜와 갈등 해결의 지혜를 구해보면 어떨까?

▲ 성 암브로시우스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