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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감리교회를 통해 세우려고 했던 “한국적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의 “실제적인 한국교회”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3)
곽일석  |  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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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6월 07일 (일) 23:46:35
최종편집 : 2020년 06월 08일 (월) 00:10:22 [조회수 :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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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최근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특별히 안양군포지역과 교회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오는 6월 15일(월) 오후2시, 수원성교회에서 개최하려던 2030 메소디스트 포럼(Methodist Forum) 제8차 정기모임은 불가피하게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추후 행사 일정이 다시 의논되어지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조선감리교회는 미국감리교회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된 교회가 아니라 자치하는(autonomous) 교회였습니다. 당시 피셔(J. E. Fisher)선교사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독립보다는 자치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인력과 경제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계속 미국교회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는 자치교회를 택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선교보조비의 운영과 선교사 수급 등을 담당하는 중앙협의회(Central Council)를 설치하였고, 그 영향력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또한 조선감리교회의 독립성 결여로 비판받고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당시의 조선감리교인들이 완전 독립보다는 미국교회와 조직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자치교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중요한 이유가 숨어있었습니다. 1930년, 그러니까 만주사변을 코앞에 두고 조선의 완전고립과 착취를 더해가던 일제의 지배아래서 홀로 독립된 교회가 생길 때, 박수를 치는 쪽은 일제였기 때문입니다. 창립준비를 위한 전권위원회의 모임에도 일제의 경찰이 감시원으로 따라다니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감리교회 전권위원 중 한사람이었던 하웰양의 보고는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대표자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인들은 아주 빠르게 고립되고 있다. 우리들은 세계의 중요 회의나 국가들의 회의에 대표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국제적인 모임이 조선인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교회가 제공하는 국제적인 접촉마저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완전히 고립될 것이다.’”

즉, 조선 민족의 독립이나 미래를 위해서도 현 상황에서는 독립교회보다는 자치하는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더 낮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감리교회와 관련하여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교회”(Mother church)개념입니다. 당시 선교사나 조선인이나 모두 미국교회를 어머니교회요, 조선교회를 자식교회(?)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모교회’는 당시 선교국교회와 피선교국교회사이의 관계와 위치를 나타내는 데 쓰고 있던 개념인데, 두 교회 사이의 주고받는 현실적인 사정을 가만하더라도 의식적인 차원에서 꼭 극복했어야 할 한계였습니다. 신학적으로, 세상에서 그 어떤 교회도 또 다른 교회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요, 인간들은 오직 그 심부름꾼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신적이고 물질적으로 정성을 기울였다고 하더라도 일단 새 교회가 출현하면,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서 형제나 자매교회의 평등한 관계로 서게 됩니다. 따라서 어딘지 불평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모교회보다는 당시 저 옆에서 가끔씩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던 “상호”공경과 사랑의 형제교회 개념을 의식적으로 사용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의 “실제적인 한국교회”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의 교회로서 감리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주체적으로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몰려드는 외세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조선을 세우겠다는 의지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파하며 새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던 감리교회였지만, 이제는 한국 신앙인의 주체의식을 감리교회의 신앙과 예배와 교리와 신학과 정체면에서 공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었습니다. 미국감리교회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유기적 관련을 맺는 자치하는 조선감리교회를 세우면서,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 해 “한국적”인 교회를 형성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노병선, 전덕기, 최병헌 등에 의해 초기부터 개척되었던 주체적인 한국 신앙인이 갈 수 있는 길을 걷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조선감리교회를 통해 세우려고 했던 한국적인 교회의 모습은 무엇이고, 그 실현정도는 과연 얼마 만큼이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토착 교회"를 추구하였습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조선에서 남.북감리교회가 처하고 있던 1920년대의 시대 상황은 3.1 운동의 여파로 열린 문회정치의 틈을 타고 식민지 조선에 문화적인 민족의식이 팽배해갈 때였습니다. 또한 양주삼, 신흥우 등이 참석했던 제 2회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의 노력에서도 들어났듯이, 세계교회적으로도 당시에 강하게 일어나고 있던 민족주의의 발흥을 목격하고 선교국 교회와 피선교국 교회의 관계를 주체적인 토착의식을 발현시키는 방향에서 새롭게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와 의식이 조선감리교회를 설계했던 전권의원들과 총회대표자들에게서 토착 교회의 추구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처할 수밖에 없는 기독교의 “역사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많은 시대와 많은 지역에 걸쳐 구원과 진리의 보편성과 우주성을 추구해 온 기독교회였지만, 그러한 보편적인 구원의 효력은 구체적으로 한 시대와 지역을 통해 형성되어 표현되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조선감리교회 역시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기독교회를 지향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당시 특정한 조선에서 조선인과 조선사회를 구원하기에 적절한 실제로 한국적인 교회가 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고금을 통하여 전래한 바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예배에나 치리에나 규칙에 잘 이용하되 조선의 문화와 풍속과 습관에 조화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어느 시대나 어느 지방을 물론하고 통용하기에 편리하고 적합하나 어떤 것은 지방적이오 잠시적인 것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권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김영섭은 당시에 보편적이었던 시대정신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양복을 그대로 갖다 입으면 맞지 아니하는 것같이 우리 체격에 맞게 만들어서 입어야 되니까. 이와 같이 우리 생활에 맞춰서 그리스도의 이상을 실현시켜야 되겠다.

우리의 생활,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풍습과 정신 속에서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생활을 따라서 조선감리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의 정서와 생명에 맞도록.“

양주삼도 또한 합동하는 교회의 정신과 조직을 토착 교회의 관점에서 설계하고 있었는데, 당시 조선인들의 생각을 이렇게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좁은 의미에서 민족교회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독교회는 어느 곳에 세워졌든지 국제적이고 우주적인 정신과 성격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햬 조직된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민족은 그만의 톡특한 요구들을 갖고 있으며, 모든 민족은 조직을 통해 그만의 고유성(genius)을 표현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 민족의 고유한 것이어야 하고, 교회의 피는 그 민족의 피이어야 하며, 교회의 생활도 그 민족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감리교회는 조선인들과는 다른 요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조직된 규칙과 법칙 위에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감리교회는 조선인의 구원과 복지를 위해 조선인의 특별한 요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좀 더 조선적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조선의 토착교회를 세우려는 그들의 의도는 새 교회의 조직과 직제와 교리 등에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창립과정에 특선위원으로 참여했던 베이커 감독은 “새 교회는 이름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적이다. 만약 세상 어디에 ‘토착적’인 교회가 있다면, 여기에 그 교회가 있다. 한국인의 생활에 뿌리내리고, 한국인의 환경과 요구에 응답하고, 한국인의 포부와 목적을 표현하고 있는 교회가”라고 평가했습니다.

둘째로, 조선감리교회는 조직과 제도와 운영 면에서 “민주적”인 교회를 추구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무런 차별과 차등 없이 하나 된 신앙인으로서 다같이 참여하고 다같이 권리를 누리며 다같이 책임을 다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회의 설립이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구한 전제정치 밑에서 압제받아오던 한민족이었고, 당시 일제의 식민정치 아래 뼈아픈 고통 속에 살고 있던 조선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새 희망과 꿈을 지니고 출범하는 조선감리교회에서만은 동등한 권리와 자유와 책임을 누리는 “민주정체”를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전권위원 중 한사람은 이런 민주적인 의지를 “전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참된 민주주의 정치를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는 우리 교회 안에서 민주주의를 세우기를 원하고 있다”고 미국교회 전권위원들을 향한 발언 속에서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양주삼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게 하나가 된 기독교인의 동등한 지위라는 신앙적인 관점 에서, 비록 지금은 현실적인 교회가 정치나 사회나 경제 조직보다도 덜 민주적이지만, 새로 설립되는 한국교회만큼은 참으로 민주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로 조선감리교회의 민주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에서 모든 언어와 풍토 속에 사는 사람들이 ‘당신들의 주님인 그리스도가 한 분이요, 당신들은 모두가 다 한 형제이다’라고 부르는 단 하나뿐인 조직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고, 자유인도 종도 없으며, 남성과 여성도 없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다’. 어떤 형태의 조직이나 교회정체를 선택하든지, 기독교회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과거 역사 속에서 교회는 민족 운동의 지도자가 되어왔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의 교회가 그렇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새 감리교회가 조직될 때, 그 안에서는 선교사들이나 조선인 사역자들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기회와...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민주적인 제도(Institution)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민주적인 정신과 원리의 적용은 조선감리교회에서 평신도와 교역자 사이의 근본적이고 존재론적인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방향으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들도 총회대표가 되며, 연회에도 교역자와 똑 같은 비율로 참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신흥우, 김지환, 오화영, 이만규, 신흥식 등은 총리사 후보의 자격에서 평신도에게도 똑같은 기회와 자격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당시의 민주적 분위기는 매우 강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권을 확립하는 데에서는 “혁명적인 민주적 정신”의 표출이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남성과 같이 여성에게도 총회대표자격을 갖게 하고, 여성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주도록 규정하여 ,비록 선교사들이었지만, 1931년에는 세계감리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감리교회에서 여성목사가 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윤치호는 “이점에서 조선 감리교회는 ‘모교회들’보다 3백년이나 앞섰다. 그들이 지금까지 오는 데 2백년이 걸렸고, 오늘날 우리가 취한 행동을 선택하는 데 백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하웰은 여성총대권과 안수제도를 보고 “서구의 감리교회는 동양의 감리교회에 배우러 가야할 것이다. 동양은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데서 우리의 선생이 되었다. 한국 기독교 여성들에게는 영예로운 일이 행해졌으며, 이것은 기독교가 그녀를 위해 한 일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녀는 교회 조직에서 본질적으로 가치를 증명하였다... 조선감리교회는 세상에서 그러한 정책을 택한 최초의 감리교회이다”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조선감리교회의 대표자를 감독제 대신 총리사(General Superintendent) 제도로 선택한 것도 민주의식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전권위원들과 특선위원들이 감독제를 거부했는데, 그 주된 이유가 전제적인 특성과, 감독이라는 한국 명칭이 공사장 감독이나 영화 감독의 뉴앙스가 있다는 것과, 장로교회 등과 이후에 합동될 가능성을 파괴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국교회가 쓰고 있는 감독제를 버리고 4년의 임기와 단 한 번만의 재선 가능성을 조건으로 하여 ‘총리사’를 선출하였습니다.

셋쨰로, 조선감리교회는 사회적 차원에서 “진보적” 방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여기서 “진보적”이라 함은 그들이 인생과 사회와 역사와 우주를 보는 세계관(Weltanschaung)의 특성으로, 세상에는 그 어느 것 하나도 가만히 정체되어 있는 존재가 없다고 인식했습니다.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는 시대를 따라 새롭게 변화하며, 그것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창조적으로 진보한다. 따라서 “산 생명체”인 조선감리교회도 과거의 낡은 틀과 세계관에 얽매여 있을 수가 없으며(불가능한 일), 시대를 따라 이미 변하고 진보한 조선 사회와 그 안에 사는 조선인들을 구원하여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시대에 적합한 진보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의지적인 일)는 것이다.“ 여기에 조선감리교회의 생명적이며 진보적이고 시대적인 특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새롭게 창립되는 “진정한 감리교회는 진보적이므로 생명이 있는 이의 특색을 가졌으니, 곧 그 시대와 지방을 따라 자라기도 하며 변하기도 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현대문명과 과학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변해가고 있는 조선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과거 시대의 낡은 틀과 구속에서 과감히 “탈출”하여 그리스도의 혁신의 정신으로 모험적이고 개척적인 교회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신흥우는 “교리나 신조이든지 조직과 치리방법이 모두 새롭게 또는 시대적 과학문명과 합치되어서 그리스도를 일반에게 소개하는 데에 장애가 없도록 될 것이고, 또는 두 단체가 통합되는 데에서 새로운 용기로 아직 발견치 못한 사상과 사업에 모험성을 발휘시켜 그리스도의 혁신의 정신이 그대로 변화 향상하는 원동력이”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변성옥도 “시대에 순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인류의 문화는 고정적이 아니다. 따라서 각종 사상도 변천되고 인류의 요구도 달라진다. 기독교는 산 종교이다. 산 것은 변화하기를 그치지 아니한다. 기독의 주의와 이상을 가지고 당해 시대의 문화와 지식과 사상과 요구에 순응함이 생활화한 기독교이다”라고 하여, 확고하게 한 시대에 생명력 있게 살아 있는 산 감리교회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조선감리교회의 진보적 특성은 민주적 제도의 추구와 교리적 선언의 채택과 사회신경의 도입과 총리원 사회국의 신설로 나타났으며, 이것은 구태의연한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고 사회주의나 현대 과학사상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던 젊은이들을 의식하고 취해진 결정이기도 하였습니다. 윤치호는 그 결과로 “교육받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조선감리교회나 교리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감리교회의 “진보성”은 조선감리교회의 “청년성”의 지향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넷째로, 조선감리교회의 한국적 특성은 조선에 있는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보편적인 한 “조선기독교회”를 형성해야 한다는 에큐메니칼한 꿈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처음에 감리교회나 장로교회 등 교파 교회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조선인들은 교파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남감리교회나 북감리교회가 두 파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교파’라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나 기독교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서구의 역사경험 속에서 형성된 상대적인 부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조선에서만은 모든 교파가 하나로 만나 “조선기독교회”를 설립하는 편이 좋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변성옥은 이런 관점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원칙상으로 하나가 될지니, 이는 그리스도가 ‘오직 한분이신 구주가‘되시는 까닭이다. 각종 교회의 분리는 각 파의 분립의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의 본의가 아님은 성경의 교훈으로 보아서 확실무이한 것이다. 예수께서 신자가 하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다. 금일에 분리되어 대립한 각 교파는 그리스도의 이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스도교가 조선에 들어올 때에 그리스도의 가차 없는 복음의 진리가 태서 제국인의 호상 연락(聯樂)과 편견으로 인하여 생긴 교파적 자색에 물들어 가지고 들어온 밖에 없는 것은 사세에 여하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조선 신자로서 있어서는 우리의 선조가 깨쳐준 하등의 교파심리의 유전설도 없을 것이고, 또한 서양인의 교파적 감정을 맹목적으로 감수하여 가지고 이것을 조선인 상호간에 운용할 것도 아님은 현명한 신자들이 공인할 바이다. 그래서 남북감리교회의 통합은 금일 그 결실을 얻게 된 것이니 우리는 이로써 조선의 천국 건설에 하나의 신기원을 짓는다고 믿고 기뻐하는 바이다...

기독화한 신교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교파화한 기독교 혹은 서양화한 기독교라는 말과 대조하면 이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 오인은 조선화한 기독교도 불원한다. 다만 기독의 주의와 이상을 조선과 세계에 실현하는 기독화한 신교회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양주삼은 남북감리교회의 합동을 “한국에 있는 모든 교파의 위대한 합동을 향한 한 걸음”으로 바라보기도 하였고, 제 1회 합동총회에서는 감.장 양교회 합동연구위원으로 윤치호, 오기선, 정춘수, 홍에스더, 노블, 하디를 선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감리교회는 남북감리교회만의 통합에서 만족치 않고 더 나아가 장로교회 및 기타 모든 교파들이 한국에서 하나의 조선기독교회를 형성할 날을 밤하늘의 빛난 별처럼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030 메소디스트 포럼(Methodist Forum)

총무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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