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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퇴물 목사가 말하는 참 신앙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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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6월 01일 (월) 03:21:20
최종편집 : 2020년 06월 14일 (일) 12:25:40 [조회수 :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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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음의 의미

 

지금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기름 부은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 못 봤다’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기름 부은 종을 섭섭케 하면 하나님이 보고만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일부 목사들 입에서 나온 말이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며 목사의 말에 맹종하는 사람들이 되뇌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나 순종은 목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목사에게도 순종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때에 한한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데도 목사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름 부은 종이란 목사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기름 부은 종, 주의 종이라면 목사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따로 있던 구약시대의 개념이지 만인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인 지금으로서는 맞는 말이 아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기름 부은 종이고 주의 종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름 붓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구약시대에는 사물이나 사람에게 실제로 기름을 부었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성별(聖別)의 의미로 그에 기름을 부었다. 하나님의 일에 성스럽게 쓰기 위해 기름을 부었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제사장이나 선지자, 또는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는데,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 구별되게 일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실제로 기름을 붓는 의식은 행하지 않는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다만 신자들은 성령에 의해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으로 여긴다. 성령을 받은 그 자체도 기름 부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결국 같은 말이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믿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의 종은, 기름 부은 종은 목사만이 아니다. 믿는 사람 모두가 주의 종이요 기름 부은 종이다. 모두가, 그러니까 만인이 다 제사장, 그것도 왕 같은 제사장인 것이다. 어떻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 알지만 문제는 머리로만 알뿐 실제의 의식은 목사만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목사를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자는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성별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자는 것이다. 성별은 속세로부터의 구별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살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세상과 자신이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잘 융화되어 살면서 세속이 자신을 오염 시키지 못하게 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고 그의 향기를 내며 그의 소금으로 녹아져 살맛나는 세상으로 하는 데에 작지만 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름 부음을 받은 성별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성별은 성(聖)과 속(俗)의 전자 즉 ‘거룩’한 길로의 구별을 뜻한다. 이를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우리의 몸을 제물로 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삶이 산제사이고 진정한 예배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렇게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롬12:1-2 참조)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그들과 구별되게 살라는 말이다.

 

종에게는 인격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란 어떤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선 예수께서 친히 대답하신다.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라고. 우리는 각각 자신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데, 그 착한 행실이 우리 자신의 빛을 사람에게 비추는 것이라고 예수는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우리에게는 빛이 없다. 참 빛이신 예수를 주인으로 안에 모시고 살므로 그분께서 나를 통하여 빛을 내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우리를 향하여 “내 안에 거하라” 말씀하시고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자신의 안에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종들이다. 종이니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할뿐이다. 그냥 무조건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말하자면 순종 아닌 맹종인 것이다.

종에게는 인격도 없다. 주인의 뜻이 내 뜻이고 그것이 나의 인격이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고귀한 인격인가. 예수의 뜻을 내 뜻으로 하여 그것이 나의 인격이 되다니 가슴 벅찬 일 아닌가.

우리를 향하신 우리의 주인 예수의 뜻은 성삼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되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다(롬14:8 참조). 성삼위 하나님을 기쁘고 감사함으로, 온몸과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모노레일이 아니다. 두 가닥 철도이다. 한 가닥은 성삼위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한 가닥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2:5)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거짓이라는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 사랑은 기혼자라면 부부간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 이는 물결이 사랑이라면, 돌이 떨어진 그 중심에 이는 물결이 부부간의 사랑이다. 그로부터 자식과 양가의 부모, 형제자매, 일가친척 순으로 사랑의 물결은 퍼져 간다. 그리고 친구와 친지, 모든 아는 사람들이 다 사랑의 대상이고, 삶의 현장에서 잠시잠깐 만나는 사람, 스치는 사람들도 사랑의 대상이다. 매스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부간의 사랑이 그저 그러면서 타를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이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아는 사람이 다 사랑의 대상이라 했는데, 호불호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미움의 대상은 없다는 말이다. “너희 원수를 사랑”(마5:44)하라고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니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수월스러운 일이 아니다. 죽게 되면 죽는다는 각오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각오로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렇다고 겁낼 것은 없다. 각오하고 결단하여 시행하는 데까지가 어려운 것이다. 아이가 뒤에서 받쳐주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뒤로 넘어지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다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30)

문제는 욕심의 짐을 잔뜩 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물욕, 출세욕, 명예욕 같은 욕심을 내려놓기가 어려운 것이다. 죽게 되면 죽는다는 각오 없이는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욕심이다. 그러나 이 또한 각오하고 결단만 하면 끝난다. 욕심을 부린다고 그대로 얻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물질이 됐건, 출세가 됐건, 명예가 됐건, 무엇이 됐건 욕심 아닌 사명감으로 하면 성과는 더 클 수 있다. 그게 그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니다. 무엇을 하건 하는 그 일 자체보다 그 일을 하려는 목적이,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한다면 무엇이 됐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 된다.

바보야, 문제는 마음가짐이야! 각오와 결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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