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김명섭 목사의 말씀학교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오바댜1장10절~16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5월 25일 (월) 20:18:36
최종편집 : 2020년 05월 25일 (월) 20:19:05 [조회수 : 34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오바댜1장10절~16절

 

1, 또 다른 이름의 이웃

 

① (10절)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 아브라함의 장손이던 에돔족속이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를 기록한다. (현대인의 성경) ‘에돔아 왜 네가 그런 일을 겪게 되었느냐? 네가 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인과 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에돔은 동족이며 이웃이던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 악행을 저질렀다. 에돔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마지막 날 우리를 향한 심판의 기준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내 형제 곧 이웃에게 행한 대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웃에는 원수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원수는 또 다른 이름의 이웃이다.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라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② (11절~12절)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제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에 한 사람 같았으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 에돔이 이스라엘에 행한 악행을 구체적으로 증거한다. (메시지성경) ‘그날, 너는 팔짱을 낀 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낯선 자들이 네 형제의 군대를 붙잡아 끌고 가는데도, 사악한 외적들이 예루살렘을 공습하여 약탈하는데도, 그저 수수방관했다. 너도 그들 못지않게 악질이다. 자기 형제가 얻어맞고 있는데 고소해하다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유다의 아들들이 진창에 처박히는 것을 보고 깔깔 웃다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고생하고 있는 그들에게 큰소리를 해대다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몰락을 강 건너 불 보듯이 수수방관했다. 타인의 고통을 방관의 죄,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죄를 가리켜 생략의 죄(sins of omission)라고 부른다. 사랑하지 않은 죄, 용서하지 않은 죄, 강도만난 이웃을 돕지 않은 죄다. ‘너도 그들 중에 한 사람 같았으니라’ 생략의 죄는 행동으로 저지른 죄와 동일한 무게다.

 

③ (13절~14절)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제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서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 (메시지성경) ‘삶이 파탄 난 그들을 되래 이용하다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들의 고난,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웃고 떠들다니 다른 민족은 몰라도 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진 그들의 옷을 벗겨 가다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길 끝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피난민의 길을 막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것을 잃고 목숨만 건진 무력한 생존자들에게 등을 돌리다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에돔은 타인의 실패를 이용해서 도리어 자신을 위한 성공의 기회로 삼는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함부로 정죄하거나 알량한 훈계는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함께 울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남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2. 부메랑처럼 행한 그대로 돌려받는다

 

① (15절)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이 왔나니 너의 행 한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 (메시지성경) ‘네가 행한 그대로 네게도 이루어질 것이다. 네가 행한 일이 부메랑이 되어 네 머리를 칠 것이다’ 네가 한 것과 똑같이 이제 네가 당할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동해복수법의 정신은 무시무시한 복수가 아니다. 생명의 등가성이다. 내 생명이 소중하면 타인의 생명이 소중한 것을 알라는 데 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날이지만 내일은 만국을 벌하는 날 곧 나도 심판을 면할 수 없는 날이 온다. 심판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내가 ‘오늘’ 심은 대로 하나님께서 ‘내일’ 거두게 하신다. 내가 ‘이웃’에게 행한대로, 그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나에게 보응하신다.

 

② (16절)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셋 강이 마르면 큰 강도 마를 수밖에 없다. 가정과 교회를 넘어 온 인류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한 몸이기 때문에 부끄럼도 함께 받는다. 한 몸 곧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은 내 가족과 내 교회를 넘고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전 인류와 전 지구적인 생태계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코로나재난의 원인은 인류의 무차별적인 자연훼손으로 인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대자연의 역습이다.

 

③ (갈5:14~15)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창1:28)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의 본뜻은 독재자 같은 폭정이 아니다. 맡기신 분의 뜻대로 관리하는 선한 청지기로서의 역할과 책임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가정의 청지기, 교회의 청지기, 나라의 청지기, 지구의 청지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웃을 위한 청지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사실 가인은 그 아우 아벨을 지키는 사명을 맡았으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도리어 그 아우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힘과 지식, 넘치는 물질과 재능을 주신 목적은 만끽하고 남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타인을 돌보고 지키는데 선용하라고 위임하신 것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이기적인 에돔의 후예로 산다. 무분별한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정과 교회, 국가와 온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 고통 받는 이웃들과 전지구적인 환경파괴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선한 청지기의 출현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공생과 공존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명섭 (211.35.164.157)
2020-05-25 20:47:02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황지우의 시에서 인용)
내가 먼저 대접(待接)받기를 바라지 않았어!
그러나, 하루라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다시 이쪽을 바라보기 위해
나를 대안(對岸)으로 데려가려 하는
환장하는 내 바바리 돛폭.
만약 내가 없다면
이 강을 나는 건널 수 있으리.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황지우
리플달기
0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