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 김기석 설교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당당뉴스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5월 24일 (일) 13:05:04
최종편집 : 2020년 05월 24일 (일) 13:06:20 [조회수 : 31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엡 3:14-19
(2020/05/24, 부활절 제7주,웨슬리 회심 기념주일)
음성으로 듣기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18세기 영국 상황과 웨슬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회심 28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감리교인들은 웨슬리에 대해 더러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다른 교파에서 신앙생활을 한 분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루터나 칼뱅 못지않게 깊은 사상가이자 목회자였습니다. 1703년에 태어나 179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거의 18세기를 다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18세기 영국을 가리켜 ‘이성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론이 전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는 말입니다.

18세기에 영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지브롤터 해협과 미노르카를 점거하면서 서지중해의 중요 해상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식민지 개척에도 나섰습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면직 산업으로 국가적인 부가 쌓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수한 가내수공업 공장이 문을 닫았고, 수공업자들은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습니다. 막대한 부를 획득한 신흥 자산가들이 농민들의 땅을 사들이자, 농민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에 따라 범죄가 늘었고, 정부는 가혹한 처벌을 하곤 했지만 사회 혼란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웨슬리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실천은 바로 그런 시대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교구 목사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난 존 웨슬리는 1724년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학문적 역량이 매우 뛰어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이듬해 부제서품을 받은 후, 아버지가 목회하던 Lincolnshire의 Epworth에 가서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얼마 후 옥스포드의 연구 교수로 초대를 받아서 모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동생인 찰스 웨슬리를 중심으로 모이던 ‘Holy Club’에 합류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기독교 고전을 읽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이 규칙 혹은 질서를 엄격하게 지킨다 하여 얻은 별명이 바로 ‘메쏘디스트’(Methodist)입니다. 감리교회를 칭하는 명칭이 이때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그 모임에 다른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1730년부터 활발하게 사회봉사 활동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죄수를 방문하여 위로하고,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빚에 몰린 이들을 대신하여 빚을 갚아주고, 직업을 알선하기까지 했습니다. 구빈원을 만들어 빈민들에게 음식, 의복, 약, 책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사회선교 전통은 그때부터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런 활동은 헤른후트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해 더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영혼에 드리운 어둠 그리고 빛
1735년 4월에 그의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인트 앤드루 St. Andrew 교회에서 38년 동안 목회하던 아버지 사무엘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웨슬리의 마음에 이상한 공허함이 깃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해 식민지 개척자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친구의 권유에 따라 미국 조지아의 서배너(Savannah)로 이주합니다. 동생 찰스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선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신실하게 섬겼지만 자유분방한 식민지 사람들은 엄격한 고교회적 태도를 견지하는 웨슬리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 역시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지성인이었던 웨슬리의 마음은 깊은 상실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로 하여금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만든 사건이 벌어집니다.

서배너 최고 행정관의 조카인 18살의 소피아 홉키(Sophia C. Hopkey)와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리의 벗들은 소피아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면서 둘의 사귐을 만류합니다. 고민하던 웨슬리는 제비뽑기로 결정하겠다는 기상천외한 결심을 한 후 결국 소피아와 헤어집니다. 상처를 입은 소피아는 얼마 안 되어 다른 이와 결혼합니다. 소피아는 결혼 후에도 웨슬리가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웠던 웨슬리는 어느 날 소피아에게 성찬 주는 것을 거절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것은 법에 위반되는 일이었습니다. 웨슬리는 결국 야반도주하듯 미국을 떠나 상처만 안고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때가 1738년 2월 1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살아온 그 고단한 세월이 공허함으로 귀결된 것 같았습니다. 영국에 돌아와서도 그는 뭔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장래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무렵, 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가에서 열린 한 기도 모임에 참여합니다. 어떤 사람이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 서문을 낭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마음의 변화를 말하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그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습니다.강렬하고 극적인 체험은 아닙니다. 가슴에 뭔가 뭉근한 감동이 밀려든 것입니다. 그때의 느낌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바로 내 죄까지도 씻어주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 안에서 생겼다.”

이 경험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심 경험임이 분명했는데, 흔히 사람들이 간증하는 기쁨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경험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쨌든 그 날 이후 그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날을 계기로 하여 웨슬리의 지적인 확신이 개인적 체험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변화를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남긴 찬양시편들은 그 경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온 것인지를 짐작할 단초를 제공합니다.

“오랫동안 저 주님을 섬겨 왔나이다.
노력과 수고로움으로 그러나 무익하게.
금식하고, 기도하고, 당신의 말씀을 읽고,
선포되는 것을 들었나이다─헛되이

자주 집회에 참여했고,
당신의 제단에 가까이 나아갔나이다.
경건의 모양 제 모습이었나이다.
경건의 능력 그러나 저는 아는 바 없었나이다.
(존 웨슬리 편집, <웨슬리 찬송시선집>, 나형석 옮김, kmc, 2010, p.172)

이게 옥스포드 출신의 지성인이었던 웨슬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경건의 외양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 그리고 너비는 알아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그는 자기의 무력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지금 어디에 있나이까, 혹은, 이제 무엇을 소망해야 하나이까?
이 연약함으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으리이까?
예수여, 제 영혼 당신만 바라나이다─
이 영혼 당신께서 새롭게 만드셔야겠나이다.“(존 웨슬리, 앞의 책, p.173)

∙빛 안에서 살아가기
실패를 경험했기에, 어둠 속에 침잠됨을 느꼈기에, 자기의 무력감을 절감했기에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그저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혼의 밤이 짙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지 않았기에 그는 마침내 은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하나님께 몇 가지를 간절히 청합니다.

첫째,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십시오.
둘째,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속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셋째, 성도들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넷째,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성도들도 충만하게 해주십시오.

이 기도가 존 웨슬리의 삶에서 그대로 응답된 것 같습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동안 주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과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우리 위해 돌아가셨음을 믿는 우리,
모두 그분이 주시는 알 수 없는 평안을 받았도다.
그리고 그분의 피가 뿌려졌음을 느끼는도다.
우리의 영혼 기쁨으로 일어나고,
짐으로부터 가벼워져,
말할 수 없이 그 마음 부풀어 오르도다.
영광과 하나님으로 가득.

평안, 기쁨, 자유가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슬픔과 눈물과 역경이 없기에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여전히 힘겨웠습니다. 형식에 치우쳤던 교회는 열정적인 웨슬리에게 강대상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설교를 할 수도 성찬을 집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일종의 직무 정지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1739년부터 야외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예배당에서 시행되는 엄격한 의례는 아니었지만 그는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광부들과 노동자들 속에 파고 들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국 성공회가 놓치고 있었던 열정이 감리교 운동 속에 나타났습니다. 병든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곁에 다가가 그들의 삶과 한 덩어리가 되었던 예수 정신이 올곧게 되살아난 것입니다. 웨슬리와 감리교도들은 실직자 구제를 위해 애썼고, 병원을 설립하여 환자들을 돌보았고, 빈민은행을 설치하여 가난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노예제도에 반대했고, 금주운동을 벌여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려 했습니다.

노자는 도의 움직임을 ‘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이라는 말로 드러냈습니다.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바로 그러하고, 감리교회 운동이 그러합니다. 웨슬리는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교회론을 정립할 때 우리가 참고해야 할 아주 좋은 모범입니다.

다시 한 번 그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깊은 일치를 이루었기에 그는 죄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마침내 웨슬리는 평안과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자 말랐던 사랑의 샘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섬기기 시작하자 사랑의 뿌리가 깊어졌습니다. 결국 사랑 실천이 감리교도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터전이 굳게 서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든든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
그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바로 그 사랑, 우리의 마음속에서 발견되도다, 따라서 감히
죽음의 저 무딘 창끝을 맞설 수 있게 되도다.
죽음 혹은 지옥보다 더 강력한 사랑
이 신비한 힘을 우리 증거하도다.
그리고 이 세상의 정복자인, 우리
하늘에 거하도다, 예, 사랑 안에 거하는도다.”
(존 웨슬리, 앞의 책, p.182-183)

사랑에 뿌리를 내리자 죽음의 창끝이 무뎌졌습니다. 더 이상 미움, 질투, 혐오, 두려움이 그를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세상의 정복자입니다. 힘으로 정복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 자체가 승리입니다.

∙감리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존 웨슬리는 뚜렷하게 가리켜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온전히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린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감리교회는 감리교회 정신을 다 잃어버린 채 맛 잃은 소금처럼 되었습니다. 큰 정신은 사라지고 편협한 정신이 활개를 칩니다. 성경적이고 이성적인 신앙이 잦아들고 근본주의적이고 광신적인 신앙인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시민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자정 능력조차 사라졌습니다. 권징과 징계는 사라졌고 비열한 이들의 큰 소리가 난무합니다.

지금은 눈물로 참회해야 할 때입니다.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없이 구하면서도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사회를 성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감리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회복해야 합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고 합니다.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 시대는 우리를 근본의 자리로 되돌려놓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존 웨슬리의 회심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의 권고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12:2) 아멘.

당당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