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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40년, 광야 40년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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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5월 16일 (토) 23:00:03 [조회수 : 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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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습니다. 그리스도교회에서는 40년이란 세월을 흔히 광야의 시간으로 비유하는데 익숙합니다. 1980년 오월이후 흘러간 40년은 우리 민족에게 그야말로 광야의 역사였습니다. 요즘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다를 것이라고 진단하는데, 이미 5.18은 한국현대사에서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기점이었습니다.

  얼마 전 MBC 뉴스데스크 5.18관련 영상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감리교본부에서 함께 일했던 이은재 목사가 다큐멘타리의 증인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20사단에 속한 소대장으로 양평에서 광주로 급파된 계엄군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현장의 상황을 신음소리처럼 증언하였습니다. “군인이 저러면 안 되는데...”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괴로워했던 양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주항쟁 당시 갓 20대에 접어든 우리 세대는 광주를 기준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였습니다. 오월과 광주는 현대사의 주인공을 몇몇 인물에서 학생과 청년세대 더 나아가 구체적인 민(民)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국에 대한 우호적 생각과 태도를 비판적으로 교정시켰고, 한반도 분단문제도 민주화과정에서 끌어안도록 인식의 품을 넓혔습니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1980년 오월이 낳은 것입니다. 불편한 기억들이 종종 잠자는 양심을 일깨워준 덕분입니다.
 
  김포지방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하던 때 교역자회의에서 호남 어느 섬으로 수련회를 추진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목회자 단체여행은 아주 조심스러웠습니다. 김포는 대부분 농촌지역이기에 먼저 농번기를 피하였고, 시국의 불안함도 주저했던 핑계거리였습니다. 더군다나 5월 봄나들이는 금기어였습니다. 누구보다 젊은 전도사 몇몇이 핏대를 올렸습니다.

  이런 시시비비를 피하려고 감리사와 선배들이 냈던 지혜로운 타협안이 기억납니다. 비록 시국이 엄중하다지만 예정된 행사이니만큼 진행하되, 내려가는 길에 광주에 들러 현장증언을 듣고 가능하면 망월동까지 참배하기로 한 것입니다. 다행히 첫날밤 무등산 광주기도원에서 조비오 신부를 만나 5.18 경험을 나누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튿날 망월동 묘역은 못 갔습니다. 그만큼 ‘광주생각’은 양심의 존재여부를 따지는 시금석이었습니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감리교회는 2004년 8월 27일 광주광역시에서 호남선교대회를 열었습니다. 전국에서 무려 4만 여명이 광주를 찾은 초유의 일입니다. 명색이 광주에서 하는 행사이니 만큼 개회예배에 이어 감독회장을 비롯한 감독들의 망월동 5.18국립묘지 방문과 헌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이미 사전에 국립묘지 측에게 최고의 격식을 갖춘 의전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루 전날 밤에 우리가 약속을 뒤집었습니다. 행사를 최종 점검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정치적이란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였고, 다음 날 행사의 동원과 성공여부를 불안해하던 심리까지 겹쳐 결국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늦은 밤 감독회장은 이런저런 형편을 설명하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본부는 그야말로 의전을 갖추어 국립묘지로 사과용 사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참배일정을 취소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렇듯 광주와 오월은 40년 내내 시빗거리였습니다. 호남선교대회를 결산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주로 4만 명을 불러 모은 것이 한 번의 성공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성공은 우리 교회가 역사 앞에 진실하게 서려는 용기와 겸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1980년 감리교 청년 김의기(형제교회)는 오월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종로5가 기독교방송국에서 투신하였습니다. 서강대학교 학생인 그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청년이었습니다. 광주와 함께 그는 5월 30일에 40주년 기일을 맞습니다. 그 자리에서 열릴 추모행사는 다시 우리의 양심을 들추어보는 역사의 증언대가 될 것입니다.

  광주 40년의 역사는 세월 따라 노래 따라 저절로 흘러온 것이 아닙니다. 자주 물의 흐름을 막고, 바꾸고, 거슬러온 반역과 역류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진실의 시시비비를 겪고, 좌고우면하는 양심과 씨름하면서 여기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시류에 역행하는 걸림돌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한 광야 40년의 결과가 요단강이 아니라 행여 홍해로 향하지 않도록 지금 교회의 발부리를 살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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