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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선거는 우리를 영적 파충류로 만들었다아름다운 선례를 만드는 남부연회 평신도 단체들을 응원하며
남재영  |  goodpas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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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5월 14일 (목) 19:37:52
최종편집 : 2020년 05월 20일 (수) 16:57:21 [조회수 :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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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선거 그리고 최고지도력이 낙마한 참사

벌써 23년 전에 일이다. 당시 나는 남부연회신문 편집국장으로 연회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그 무렵 감독선거가 끝나고 난 다음, 선거로 골이 생긴 연회를 다시 하나로 마음을 모으자는 취지에서 남부연회지도자대회를 열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말머리를 잡는다.

1997년 5월28일부터 그 다음 날까지 남부연회 장단기발전위원회 주최로 남부연회 지도자대회가 유성 아드리아호텔에서 열렸다. 남부연회 지도자대회는 지난 해 두 사람이 출마하여 과열된 감독선거로 인하여 생긴 서로의 반목을 풀고 연회가 다시 하나가 되자는 의미로 마련된 자리였다. 둘째 날 대토론회 시간에-이제는 은퇴하신-변선규 목사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변 목사는 감독선거 이후 자신을 찾아온 어느 장로가-지난 감독선거에서 두 후보 모두 자신에게 돈 봉투를 주었는데-한 후보가 100만원을 줬고, 다른 후보가 300만원을 줬다고 했다. 1년 농사보다 감독선거 한번 하는 것이 더 났다는 말까지 변 목사는 전했다. 그리고 변 목사는 말했다. 지난 선거에 후보가 둘이었다. 둘 가운데 누가 100만원을 주고 누가 300만원을 줬느냐며, “단합을 이야기하기 전에 참회부터 해야 한다”고 회개를 촉구했다. 벌써 20여년이 더 지났으나 나는 변선규 목사의 그 발언을 잊을 수 없다. 그 당시 이미,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성직매매의 범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변 목사님을 잘 모른다. 위의 일이 있기 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랬다. 당시는 남부연회와 충청연회가 갈라지기 전이라 같은 연회에 있었던 연고로 인사를 올리는 정도였다. 그분과 같은 선배요 어른이 있었던 그 시절 감리교회는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다시 감독선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감리교회의 감독선거는 매번 감리교회공동체를 참 우울하게 해왔다. 특별히 지난 해 있었던 뉴스엔조이 2019년 2월13일에 기사는 감독선거의 허물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제32회 감독회장 선거가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6년 감독회장 선거 당시 금품이 오갔고, 선거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월 13일 전명구 목사의 감독회장 당선이 무효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전 목사가 선거운동 기간 유권자들에게 여러 차례 금품을 제공했다고 했다. 전 목사의 선거 참모 오 아무개 장로가 작성한 자료가 증거로 인정됐다. 자료에는 유권자 170여 명에게 30~100만 원에 이르는 돈을 준 것으로 나와 있다. 법원은 이 자료를 전명구 목사의 실제 선거비용 지출 내역으로 판단했다.

지난 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의해 금권선거로 인해 퇴출된 전명구 감독회장사태는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했다. 법원의 선거부정 판결로 감리교회 최고지도력이 낙마한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참사였다. 기독교의 영성사의 빛으로 보자면-이 참사의 당사자는 그가 하나님 앞에 살아온 삶을 들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막의 기도자가 되었어야 마땅했다. 누구든지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넘어진 자는 그 넘어진 자리에서 넘어진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봐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보면서 영적여정을 갔던 이들이 사막의 기도자들이었다.

 

교권매매시장이 된 감독선거-대참사는 계속 될 것이다

“어디든지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의 악취가 없을 수 있나. 교회라고 별건가. 감리교회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똥도 밟는 거지 뭐.” 도저히 사람의 말 같지 않은 이런 파충류적인 논리에는 화가 나지만, 그래도 충분하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똥을 밟았다면 그 똥을 밟은 자는 냄새가 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똥을 밟고 문대다 못해 사방천지를 그 발로 밟고 다니면서 똥칠을 하는 지경이라면, 그의 껍데기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 속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 파충류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족하여 때때로 넘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거룩함을 박탈해 가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 자신 안에 최소한 파충류가 아닌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 정도는 배우고 얼어서야만-그나마 부족한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 않겠는가. 대참사를 겪게 만들고 난 다음에도 구린내 나는 발로 본부 어디어디를 마구 짓밟고 다닌다는 소식은 정말 ‘오호통재(嗚呼痛哉)’이다. 교권에 눈이 멀면 교회도 하나님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파충류가 되는 것이다. 감리교회의 금권선거는 고질적이고 뿌리가 깊다. 추측키로, 아마도 처음에는 권력에 눈먼 목사들이 장로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매표를 했을 것이다. 그 때 순진한 장로들은 목사가 찔러준 돈을 엉거주춤하게 받고는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목사님이 이래도 되나? 아마 그랬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매번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감독선거는 교권매매시장이 된 것이다. 원래 나쁜 짓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발전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형성된 교권매매시장의 판세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역전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감독후보가 갑(甲)이었지만 이제는 갑이 달라졌다. 그래서 감독선거의 계절이 되면 정치적으로 세력화되고, 감독선거 전문 집단으로 진화된 장로들이 대놓고 갑질을 한다. ‘감독시켜 줄게 뭐 줄래?’ 교권에 눈먼 목사들은 돈과 자리를 놓고 그들과 표를 거래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권력에 눈먼 목사들이 금권선거의 마개를 열었지만, 금권선거가 감독선거의 정석(定石)이 되게 만든 것은 정치적으로 오염된 장로들이었다. 나는 모든 장로들이 정치 세력화되어 있다는 말도 아니고, 건강하게 감리교회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장로들이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반면 정치적으로 오염된 장로들도 적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미 오래된 이런 풍토에서 지난 해 감독회장의 낙마라는 대참사는 감리교회공동체가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할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미 늦었지만 만약 이쯤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아마도 이런 대참사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필연의 법칙을 감리교회공동체는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들어야만 한다. 교단의 법과 제도가 비록 형식적으로 금권선거를 규제해 왔음에도 감리교회는 오랜 세월 금권선거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 왔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조차도 스스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내려놓고 진영논리에 따라 좌고우면했었다. 이렇게 금권선거를 용인하면서, 부화뇌동해온 우리들은 무죄한가? 이 사람들 대부분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금권선거를 방조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조장하면서 서로 야합해 왔었다.

 

시스템이 무너진 감리교회-만연한 ‘악의 평범성’

이 글을 써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지난 5월 12일 서울남연회 로고스교회 전준구목사의 성범죄에 관한 MBC PD수첩이 방영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TV를 안본지 20년이 넘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PD수첩’과 ‘전준구 목사’가 갑자기 오르내리는 그날 밤 집에서 홀로 늦은 시간 유튜브로 보면서-또 다른 올 것이-마침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하게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이런 꼴로 공중파를 탔다는 사실이 나는 절통하지 않다. 절통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자정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PD수첩에서 어느 피해자의 항변처럼 “피해자가 아픔을 호소하는데도 가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은 오늘 안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감리교회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칼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감리교회의 대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교권매매시장판이 되어버린 감독선거도 마찬가지 아닌가. 수십 년 동안 돈 봉투로 표를 사고, 감독선거를 수익모델로 삼아 신앙과 영적 양심을 팔아온 그 사람들이 감리교회를 이끌었고, 결국 감리교회의 영적자산을 다 탕진하도록 만들었다. 만약 감리교회공동체가 깨어있었다면, 불의한 금권선거의 현실 앞에서 “이건 아니야!” 라고 함께 소리를 쳤더라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반드시 거룩한 영적 순결성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더라면, 지낸 해처럼 감리교최고지도력이라는 감독회장이 중도 추락하는 대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감독선거 유권자들은 모두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대부분이 그릇된 현실을 용인해 왔고, 잘못된 관행을 계속 유지하면서 문제를 크게 키워왔다. 이러한 현상들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 감리교회의 감독선거 시스템이 되어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고 난 다음 한나 아렌트가 쓴 낸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수없는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살인 업무를 담당했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가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을 때-재판정의 아이히만은 옆집 선한 아저씨 같았다. 재판정에서 그는 항변했다. 자신은 국가가 자신에게 맡겨준 공무를 성실하게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아이히만에 대해서 아렌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아이히만은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파충류과였다는 말이다.

그 재판정의 아이히만 현상에 대해서 한나 아렌트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무능성-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판단의 무능성으로 정리했다. 이 세 가지 무능성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해체시키고, 교회의 교회다음도 붕괴시키는 악의 시스템을 만든다. 감리교회 안에서 스스로 각성하여 자기를 정화하려는 변화의 동력은 이미 소진된 상태이다, 이 상태의 근본 원인은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감리교 목사들과 장로들의 세 가지의 무능성에 그 원인이 있다. 이 세 가지 무능성이 감리교회 안에 만연한 ‘악의 평범성’이다.

감독회장이 돈 봉투를 돌렸다 하여 낙마한 지난 해, 감리교입법의회는 금권선거를 방지하는 제비뽑기 선거법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또 차기 감독회장을 노리는 자들의 정치적인 계산들이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제비뽑기 법안이 입법의회에서 부결된 그 본질과 핵심은, 앞으로도 감리교회는 계속해서 돈 봉투를 주고받는 금권선거로 가자는 ‘감리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암묵적인 합의’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감독선거는 당연히 돈 선거로 치르자는 것이 지난 입법의회에서 감리교회 구성원들의 합의이다. 이후로도 우리 감리교회는 돈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성직매매시장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감독회장이 금권선거로 중도 추락한 참사를 겪고도 배운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비극은 잘못에도 있지만, 잘못을 보고도 잘못이라고 외치지 못해온 감리교회의 목사, 장로들의 무능성이 더 큰 비극이다.

그리고 무너진 시스템을 고치려는 열의를 상실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감독회장의 낙마에도 불구하고 지금 감리교회에는 아렌트가 언급한 세 가지의 무능성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뭘 말하는가. 교권매매시장화 된 감독선거는 감리교회의 영성도, 분별력도, 도덕성도 거의 파충류 수준이라는 말이다. 총체적인 절망감, 이것이 불행하게도 오늘 안으로 붕괴되고 있는 감리교회가 간신히 붙잡고 있는 유일한 끈이다.

 

선관위가 깊이 숙고해주기를

바야흐로 다시 감독선거의 계절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른 연회의 감독선거는 내 알바 아니고. 내가 소속하고 있는 남부연회에서 이번 감독선거는 지난 수십 년 동안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낌새가 있어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남부연회는 오는 9월에 출마할 감독후보자들이 두 명으로 이미 굳어진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실이 이런 가운데 평신도 단체들이 주선하여 두 후보자가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합의하여 선후를 정해서, 이번 선거와 다음선거까지 경쟁하지 않고 선거를 하자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두 후보자도 여기에 동의했다고 한다. 남은 문제는 누가 먼저 할 것인지를 정하면 되는 것이다. 두 후보자들 가운데서 어느 쪽이라도 절대로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감독을 해야 한다는 아집을 부리지 않는다면, 수 십 년 금권선거로 무너지고 있는 감리교회공동체의 감독선거에서 남부연회는 아름다운 모범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남부연회의 지금 이 움직임이 평신도들이 이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바라기는 이 번 만큼은 남부연회가 꼭 감독선거에서 성직매매시장 판을 걷어내는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들리는 말로는 남부연회 선관위가 이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데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예비후보자들도 누차에 걸쳐 단일화에 대한 의사를 표명해 왔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평신도들보다 먼저 두 예비후보자들의 단일화에 대한 뜻을 확인을 했었다. 단일화에 대한 두 사람의 동의가 있었으므로-이왕 단일화를 할 것이라면 감리교개혁이라는 공동 어젠더로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두 예비후보에게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내가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남부연회 평신도단체들도 후보단일화를 강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두 예비후보자들 사이에서 후보단일화를 할 때 양측의 신의와 약속을 보증하는 증인 역할을 하겠다는 건데, 이것은 선관위가 문제 삼을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감독선거에서 선관위의 전횡을 잘 알고 있다. 선관위가 누구를 편들거나, 법을 뛰어 넘어 자의적인 월권으로 지난 선거에서 남부연회가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지 않나. 이번 선관위는 지난 선관위와 같은 지나친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법(法)이란 글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간다는 뜻이다. 무너지고 있는 감리교회를 위하여 정의의 길을 열고 물 흐르듯이 가기를 희망하는 감리교회의 열망을 선관위가 깊이 숙고해주기를 기대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선관위가 장을 열고 집단의 지성과 지혜를 모으기 위한 토론이 필요하다면 나도 거기에 참여하고 싶다. 감독선거를 앞두고-두 예비후보자들의 단일화 의지가 확인 된 이상-지금 평신도단체들의 노고는 칭찬받을 일이지, 제재를 가해야할 사안이 아니다. 감독선거는 그동안 우리를 영적 파충류로 만들어 왔었다. 이쯤에서 우리 모두가 감리교회의 감독선거를 파충류들의 잔치로 만들었던 과오를 우리의 집단 지성과 영성으로 끝장내기를 간절함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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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5-18 02:50:04
금권선거로 가자는 ‘감리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암묵적인 합의’라굽쇼?
구성원 多數가 종래의 관행을 준수하자고 하는 반면 본 회퍼 목사級처럼 보이는 구성원 小數가 ‘성직 매매’, ‘악의 평범성’,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 등을 문제 삼아 구성원 多數를 바보(?)로 만들며 종래의 관행을 혁파하자면서 제비뽑기, 입후보자끼리 돌아가면서 감투 쓰기 등을 代案으로 제시하고 있다.

루터가 교황에게 정의와 도덕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뭐라고 떠든다고 교황이 “아이고, 당신이 옳소!”하면서 굴복했는가? 설사 교황이 마음속으로는 루터의 주장이 옳다고 여길지라도 루터에게 절대 굴복할 수는 없었다. 루터에게 굴복하면, 지금까지 교황이 가르친 모든 것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바가 되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에 “루터는 이단이다!”라고 일갈할 수밖에 없었고, 루터의 낚시질에 낚인 신자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깨문’, ‘박빠’ 따위에게 정의와 도덕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입만 아프듯이 소위 말하는 금권선거에 찌든 목사나 장로를 아무리 씹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목사나 장로는 혼자가 아니다. 휘하에 많은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聖經상으로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성도나 同等하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上下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고, 목사를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동등하다고 여기는 신자가 지천에 깔려있고, 목사나 장로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신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더 많은 신자를 끌어 모을 수 있기에 신자들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신자들의 관심사인 물신숭배를 앞장서서 조장할 수밖에 없고, 겉으로는 아닌척하지만 부자를 우대하고 가난한 자를 박대하고... 이러한 구조가 쌓이고 싸여서 소위 말하는 금권선거, 성직매매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금권선거나 성직매매를 타개하려면 목사와 신도가 聖經상에 나와 있는 그대로 동등해져야 하고,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는 물신숭배를 지양하는 등 기초부터 바꾸어야만 한다. 돈 봉투 좋아하고, 물신숭배에 찌든 신자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목사나 장로가 독야청정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일본천황에게 굴복한 것을 회개했듯이... 한국교회가 물신숭배에 굴복한 것을 회개하지 않는 한 성직매매 타개, 금권선거 파타 따위는 백년하청이다.

도덕심 따위에 호소하여 이미 바위처럼 공고해진 기득권을 깨기는 무척 어렵다. 차라리 루터처럼 딴 살림을 차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딴 살림을 차려서 금권선거나 성직매매 따위 없는 세상을 만들면 기득권도 이에 영항을 받아 흐물흐물 해질 것이다.

이번에 남부연회에서 ‘입후보자끼리 돌아가면서 감투 쓰기’에 대해 衆志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리회 기득권이 한사코 반대한다면 이전에 루터가 걸었던 길을 걸을 수밖에... 루터는 교황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고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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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최웅석 (39.7.51.153)
2020-05-14 19:51:05
파충류는 좀 그렇고, 양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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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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