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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어렵지만…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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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5월 13일 (수) 20:13:06
최종편집 : 2020년 05월 13일 (수) 23:43:51 [조회수 : 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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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있어 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봄철 농사를 시작할 때, 비가 올 때를 맞춰 농작물을 심는 일은 농부에게 있어 천운과 같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 오기 전날 작물을 심으면 물을 주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 봄처럼 가뭄이 심한 때는  더욱 그렇다. 지난 토요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이미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다양한 작물의 모종을 120여 평 되는 땅에 넉넉하게 심었는데, 제 때 내려주는 비를 흠뻑 맞으면 작물들이 기분좋게 성장하고, 며칠 동안 물주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래서 비온 뒤 밭에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 사이 쑥쑥 자란 작물들을 보면 마음의 풍요가 넘쳐나서 이 맛에 농사를 짓지 않나 싶다.

올해로 8년 째 접어드는 밭일이다. 음성에 내려오기 전까지 농사는 지어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지만 나에게 농사를 거들어 달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으셨다. 그 덕분에 난 중학교 3년 동안 허클베리 핀처럼 이 산 저 산 쏘다니며 나름대로 노는 일을 철없이 즐겼다. 그래서 8년 전 멋모르고 시작한 농사가 나에게는 그저 신기하고 즐거웠다. 반면 내 주위에 나와 같은 환경을 지냈던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은 어릴 적 농사일을 너무 도와줘서 지금은 농사에 농자만 들어도 싫다고 했다. 만약 나도 그때 부모님의 농사를 일찍 접했더라면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오히려 그때 하지 않았었기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쉬이 덤볐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신체의 리듬이 떨어지면서 농사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금 내 마음은 이미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에 심취해 있으나, 몸은 여전히 심는 일에 머물러 있다. 일의 반응, 일의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다. 뭐든 닥치면 하려하고, 뭐든 때가 코앞에 다가와야 그때 일어나 몸을 움직인다. 이번에 밭을 정리한 것도, 트랙터를 배운 것도 그런 성향이 짙게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성향은 학교 다닐 때부터 나타났다. 난 과제를 늦게 하는 편이었다. 매번 마감일 하루 전날 밤새워 타이핑을 했다. 그전까지는 서론 본론 결론을 그리면서, 무엇을 쓸 것인지 진짜 고민만 한다. 참고도서도 이것저것 빌려놓고 쌓아두기만 하지 제대로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벼락치기 과제를 마쳤다. 하루 전날 그렇게 공부할 것을 미리 했더라면 어땠을까? 좀더 심도있는 과제를 내지 못해 흘러간 시간을 후회한 적도 많았다. 반면 나의 동기는 과제가 주어지는 당일 과제를 시작하여 하루 이틀 만에 끝냈다. 그리고 마감까지 룰루랄랄 했다. 마감 하루 전날 그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농부는 대동강이 풀리는 우수부터 농사를 시작한다. 농사라는 과제가 주어지는 그 순간 시작을 하여 제 때 땅을 갈고, 제 때 작물을 심고, 제 때 수확을 한다. 때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들의 곳간이 차고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처럼 날라리 농부는 때를 잘 놓친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비가 오면 비 갠 뒤 하지. 어제 했으니 오늘은 쉬자. 이렇듯 이런저런 핑계로 저절로 어설픈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격이 된다. 그러니 나같은 농부는 작년에 심고 제때 거두지 못한 콩과 고추와 깨에게 거듭 미안하다는 말만 연거푸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나중에 할 것 없으면 농사나 짓지. 이 말은 농사를 몰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의 빈말이다. 또 이 말은 농부와 땅을 모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농부는 백번 이상 허리를 굽히고 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일용할 양식, 한 해의 결실을 얻기 위한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큰지는 직접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농부의 일은 귀하고 거룩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부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다. 누군가를 대신하여 생명을 돌보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들고 고달픈 일의 선봉에 서 있지만 그들을 향한 대우는 매번 뒷전이다. 그러니 나중에 할 것 없으면 농사나 짓겠다는 소리는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해의 농사도 어렵게 다가온다. 농사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더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올해도 비가 오는 때를 맞춰 작물 심는 시기를 잘 맞춰 농사를 시작하였지만 앞으로 수확 때까지 얼마나 많은 농사일이 나를 시험할 것인지, 그리고 나는 그 과제를 얼마나 잘 견디며 넘길 것인지는 과제 마감일에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돌이켜보면 매해 어려운 과제를 잘 넘기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땅과 하늘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쬐끔은 알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나의 아버지가 농부이시니 자녀인 나도 농부로서 조금씩 배우고 익히며 성장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다. 그래서 이번해도 힘들고 어려운 농사라고 투덜거려도 시작했다. 툴툴거려도 기쁘고 즐겁게…. 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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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석 (220.85.171.138)
2020-05-14 15: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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