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이고 금욕적인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맹렬히 흡수됐다. 반면 지식인이 아닌 민중은 종말론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신앙으로 기울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1760년대를 전후해서 정교회에서 분리해 나왔다는 것과 교회의 조직과 의식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정교회의 상징인 이콘(icon) 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지 않은 참 하나님의 형상’인 신도들에게 입 맞추며 절했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긋든 펴고 긋든, 성호 자체를 거부했다. 예배를 위한 교회 건물도 필요치 않았다. 예배는 개인 집에서 드렸다. 예수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도 구원과 상관없는 상징물로 여겼다. 물세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 세례가 중요하다고 했다. 남자와 여자가 동의해서 하는 결혼식에 사제는 필요 없었다. 모세가 율법에서 말한 대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의 척도로 삼았다.

그들 중에는 채찍파, 거세파, 영혼 씨름꾼, 우유파처럼 단체를 이룬 소종파들도 있었다. 농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흘르이스트(채찍파)는, 채찍으로 자기 몸을 때려서 채찍파로 불렸던 것이 아니다.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뜻으로 흐리스트이(Christy)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발음이 비슷한 ‘채찍’(Chlyst, 흘르이스트)으로 비틀어 불렀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이들은 금욕적이었고, 정교회 의식과 사제직을 거부했으며, 무아지경에서 성령과 직접 소통하려고 했다.

스코프치(Skopch, self-castration, 거세파)는 급진적인 종교집단이었다. 창세기 선악과에서 비롯된 죄의 흔적이 남자에게는 성기에, 여자에게는 유방에 남아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죄의 흔적을 없애고 천사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성기와 유방을 자르고 도려냈다.

두호보르(Dukhobors/Doukhobortsy, Spirit-Wrestlers)는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앙의 내면을 강조했던 이들은, 야곱과 같이 ‘영혼 씨름꾼’임을 자처했다. 정교회에서 분리해 나왔으니 당연히 정교회 의식을 거부했다. 이들은 평화주의자들로서 전쟁을 거부하고 재산을 공유하며 공동생활을 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정부의 눈밖에 났고, 흑해 연안과 카프카스(Caucasus)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두호보르들의 병역 기피는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1898년 정부의 박해가 극심할 때 황제에게 청원해서, 이들이 캐나다 서부와 키프로스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다. 이들은 톨스토이의 신앙과 사상을 받아들인 톨스토이안(Tolstoyan)들이었다. 톨스토이는 두호보르 7500명을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부활’을 썼다.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기로 했던 그가 71살에 마지막으로 쓴 작품은 두호보르를 위한 것이었다.

몰로칸(Molokans, 우유파)은 정교회 신자들과 달리 금식기간에 우유(moloko)를 마셨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들도 정교회의 제도와 형식을 거부하고, 두호보르처럼 영적인 면을 강조했다. 또 성서에만 신앙의 권위를 두고, 사도직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장로를 뽑았다. 이들의 신앙생활은, 의식을 최소화 한 급진적인 개신교파인 퀘이커(Quaker)와 비슷했고, 재세례파 계열인 메노나이트(Mennonite)와도 비슷했다.

몰로칸도 황제의 명령으로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과 코커서스 일대에 이주해 살았다. 같은 지역에 독일계 재세례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몰로칸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끌어들였다. 신앙태도가 서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들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편의 압박으로 유럽에서 밀려나와, 흑해 연안에 정착했다가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세운 교회가 침례교회다. 그러므로 미국 침례교회의 원조는 러시아 남부 침례교도(재세례파)이고, 러시아 남부 침례교도의 원조는 유럽 재세례파(Anabaptist)라고 할 수 있다.

1751년 엘리자베타 여제(황제 표트르의 딸, 재위 1741-1762) 때 러시아 슬라브어 성경이 출간됐다. 그 성경은 급격하게 변화한 사회와 당시 러시아어에 적합한 번역이 아니었다. 19세기 첫 황제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1825)는 신비와 기적에 관심이 많아서 성경을 읽기를 좋아했다. 불어 성경과 러시아 성경을 대조해 읽던 황제는 나폴레옹의 침공이 있던 1812년, 성경 번역을 위해 영국 성서공회(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지부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립하도록 지시했다. 이 일을 위해서 영국에서 러시아로 건너온 초대 책임자가 스코틀랜드 출신 피터슨(John Peterson, 1766-1855)이었다. 피터슨은 선교사로 북유럽 선교와 핀란드 성서공회 설립을 도왔던 인물이다.

성서강독을 최고 가치로 여겼던 몰로칸도 성서공회의 성서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1821년 슬라브어 신약성경이 출판됐다. 1822년에는 성서공회 지부가 57개소로 늘어났고, 26가지 소수 민족어로 된 성경들이 출판됐다. 성서공회는 1826년까지 운영됐다가, 알렉산드르 황제의 죽음과 정교회의 반대로 문을 닫았다.

흥미로운 것은,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러시아어 성서번역이 정교회와 상관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지금 사용하는 러시아어 성경의 기초는, 외국 개신교인들과 정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기독교인들이 놓은 것이다.

18세기 러시아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1703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이고, 다른 하나는 총대주교를 폐지하고 1721년에 설치한 ‘시노드’(Holy Synod, 신성종무원)다. 표트르가 제국을 건설하면서 러시아에 근대화와 중앙집권제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황제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됐다는 뜻이고, 정교회가 힘을 잃고 국가기구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이 현실을 러시아 민중은 어떻게 받아들였던가? 민중은 국가 권력의 도구가 된 정교회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정교회의 전통과 의식을 모두 거부하는 소종파들이었다.

소종파들이 무리를 지어 신앙생활을 한 것이나, 스스로 성서를 해석한 것이나, 재림이 임박했음을 믿으며 종말론적인 삶을 산 것은 일부 개신교파와 비슷하다. 흑해 연안에 살았던 이들이 유럽에서 이주해 온 재세례파들과 접촉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런데 이들이 러시아인의 신앙을 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러시아 정교회의 처지에서 보면, 프리메이슨이나 채찍파, 거세파, 영혼 씨름꾼, 우유파 등의 소종파는 정교회 신앙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없다. 18세기 19세기를 관통하는 정교회 신앙의 맥은 따로 있었다. 그 맥은 정교회 조직에서 멀어진 자들 즉 니콘 때 나온 분리주의자(라스콜)들과, 표트르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고 북해나 시베리아로 흩어져 은둔생활을 한 이들에 의해서 이어졌다. 이들을 ‘스타리에츠’(starets)로 부른다. 18세기 말부터 ‘스타리에츠’의 수도원 부흥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인들의 신앙은 길을 찾기 시작했다.

스타리에츠는 본래 ‘늙은이’라는 뜻이다. 한국어로 번역한 소설에는 ‘장로’로 나오는데, 은둔하는 수도원 원장이나 영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금욕하며 수도하는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소문이 이어지면서, 러시아인들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장로의 은둔처를 찾기 시작했다. 18세기 장로로는 티혼(Tikhon of Zadonsk, 1724-1783)과 파이시(Paisiy Velichkovsky, 1722-1794) 같은 이들이 있다.

19세기를 살았던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에서 들어온 허무주의에 대항하여 장로를 내세웠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무신론자 ‘이반’과 변론하는 ‘조시마’ 장로가 나온다. 조시마 장로의 실제 모델은 옵티마(Optina) 수도원의 장로인 암브로시(Abrose of Optima, 1812-1891)였다. ‘악령’에서는 티혼 자돈스크와 같은 이름인 ‘티혼’이 나온다. 톨스토이 소설에도 장로가 등장한다. 장로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과 정신을 대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