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방문해 볼만한 수많은 도시들이 있다. 로마, 피렌체, 베니스, 나폴리 등, 여러 매체들을 통해 수없이 소개되고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가보지 못했는데도 마치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방문해 봄직한 수많은 도시들이 넘치는 이탈리아 중에서도 영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도시를 한 번 말해보라 하면,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평원지대 한 가운데 위치한 소도시 아시시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바꿔 인용하고 싶다. “페루지아 아시시야 너는 이탈리아 중에 작을 지라도 큰 영성가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주님을 향한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할 만큼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로마 카톨릭 교회를 넘어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친 그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다. 아시시를 말할 때 이 사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1180년에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중세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에 태어나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들처럼 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페루지아와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고, 석방되어 돌아온 후로 1년 동안 병석에서 지내면서 그의 삶이 바뀌게 되었다.

전쟁과 질병의 경험 속에서 인생의 빛을 잃은 프란치스코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수심에 가득 차 아시시를 거닐며 주님께 물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그때 주님은 “아시시로 가라. 그곳에서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줄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는 아시시의 무너져 가는 작은 성당인 산 다미아노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네가 보듯 무너져 가는 내 집을 다시 세우라.” 이후 그는 이 말씀이 보이는 교회뿐 아니라 당시 영적으로 무너져 가던 교회를 다시 세우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프란치스코가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13세기의 중세교회는 찬란한 절정을 향해 내달린 후 서서히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꽃이 활짝 피고 완전히 다 자란 나무처럼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은 열매를 맺었으나 이제 시들고 경직되고 있었다.

모든 정점에서는 명과 암 또한 극대화 되어 위태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중세를 지배하던 로마 카톨릭 교회 또한 겉으로 비춰지는 찬란함만큼 내적인 어둠, 즉 영적 침체는 심각했다. 종교개혁이 그때 일어났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시대였다.

프란치스코는 세속의 찬란함에 빠져 영적으로 깊은 나락에 빠져들고 있을 때, 자발적 가난과 청빈,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영성의 헌신적 실천으로 중세와 로마 카톨릭 교회, 나아가 주님의 교회를 건져냈다. 그로 인해 종교개혁은 적어도 200여 년 이상 늦춰졌다.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책 <중세의 시대>에서 ‘저물어 가지만 마지막으로 그 아름다운 붉은 석양을 남기는 가을처럼 아름다운 시대’로 중세를 묘사했는데, 아시시만큼 그의 유명한 문장에 은유적으로나 직유적으로나 딱 들어맞는 곳이 있을까?

유럽의 여러 대도시들과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유명관광지를 돌아본 후에 아시시를 방문한 이들이 중세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고즈넉함에 찬사를 보낸다. 또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명성이 가져다주는 청정한 영성으로 인해 영적 평온함을 경험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은 중세의 찬란함 속에서 영적으로 무너져 가던 주님의 교회를 다시 세우려는 영적 투쟁이 그 어떤 곳보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곳 아니던가? 아시시는 영적 전쟁터였다.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고요한 청정도량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 하위징아의 말을 빌리자면, 부패한 종교의 악취와 이를 정화하는 맑은 영성의 향기가 뒤섞여있음에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아시시다.

신태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