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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이야기’가 3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를 통해 매주 화요일에 선을 보인 꽃 칼럼은 모두 151회나 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고맙게도 약속을 끈끈히 지켜준 작가 덕분입니다. 문자로만 구성하는 단순한 칼럼과 달리 이야기와 사진이 함께하니 화요일마다 작은 풍경차림이 좋았습니다.
3년 전 시동을 걸 때 동행하였습니다. 첫 경험은 구례 화엄사에 핀 흑매 출사(出寫)였습니다. 붉은 매화가 너무 짙어 홍매(紅梅)가 아닌 흑매(黑梅)라 불렸는데, 이날의 장관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화엄사는 흑매나무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이백 여명의 카메라맨들이 줄지어 꽃나무를 에워쌌습니다. 심지어 드론을 띄우고, 낮은 담장 밖 언덕 위에서 망원카메라로 조준했습니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흑매순례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흑매는 들꽃이 아니기에 연재에 담으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날 찍은 매화는 한옥의 지붕과 어울려 한국의 멋을 드러냈기에 연합뉴스와 네이버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3년 동안 들꽃 이야기 연재로 이어져 온 바탕과 저력이 된 셈입니다. 그날 오후에 방문한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 풍경으로 들꽃 시리즈는 빠끔히 문을 열었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늘면서 들꽃출사 현장은 전국이 좁다는 듯 방방곡곡으로 이어졌습니다. 들꽃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안 것도 작가 덕분입니다. 산야에 흔천한 것이 들꽃이지만, 산하 곳곳에 숨어있는 꽃들도 많았습니다. 동호인들은 꽃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꽃의 생리를 서로 배우면서, 자연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은 물론 지구의 좌표와 심지어 전봇대 일련번호까지 일상의 내비게이션이 모두 동원됩니다.
흔히 생태적 회심(回心)이란 말을 합니다만, 꽃을 살피면서 더 낮아지고, 겸손해 지는 삶을 배우는 모양입니다. 평소 작가는 자신을 내세우는데 미숙해 하고, 또 남 앞에 나서길 원치 않았는데 적어도 들꽃 앞에는 아주 친밀하게 다가갔습니다. 작디작은 들꽃을 찍기 위해 무릎을 꿇었고, 앵글의 시선을 낮추기 위해 아예 엎드리는 일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세상에서 눈에 띄지 않고, 또 인심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들꽃 중에 이름 없는 꽃은 없었습니다. 시리즈 중 금강초롱, 백일홍, 엉겅퀴, 진달래는 예나지금이나 예쁘고 다정한 이웃들입니다. 싸리, 탱자나무, 칡, 겨우살이는 친밀하지는 않지만 민간의 쓸모로 여겨져 손 가까이에 존재합니다. 낯설지만 큰개불알풀(개), 꼭지연잎꿩의다리(꿩), 금괭이눈(고양이), 범꼬리(범), 닭의장풀(닭), 여우구슬(여우)조차도 필시 자연의 좋은 동무임에 틀림없습니다.
부활주일 후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시작할 때 동행했듯이 마무리도 동행한 것입니다. 목적지는 주말에 큰 눈이 내려 4월의 진풍경을 연출한 만항재입니다. 만항재는 해발 1,330미터로 영월, 정선, 태백의 경계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동서를 오가는 가장 높은 고개입니다. 멀리 첩첩이 또 겹겹이 펼쳐진 산악은 아직 겨울풍경 그 자체였습니다.
흰 눈 속에서 고개를 내민 꽃의 모습은 상상한 만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봄볕에 적당히 녹은 줄 알았는데, 아직 눈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산의 비탈면을 헤매며 미끄러지길 여러 차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던 길에 그루터기의 썩은 등걸 위에 사뿐히 앉은 노란 선괭이를 만난 것은 환호성 그 자체였습니다. 여세를 몰아 영월 쌍용과 단양 어성천 사이 얕은 언덕에서 자라는 넓은잎제비꽃도 찾아냈습니다. 50여 종의 제비꽃 중에서 고향의 이름을 붙인 영월제비꽃이 그 주인공입니다.
몇 해 전에 만난 원로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카메라 한 대면 중년여성의 우울증은 문제가 없습니다.” 평소 감정노동을 일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내다보는 앵글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그 때 배웠습니다. 때론 마음을 환하게 반사하고, 때론 묵직하게 심상을 조율하며, 작고 깊은 그곳에 또 가까운 일상 한 복판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꽃과 친구가 된 이야기의 작가는 바로 아내 류은경입니다. 그렇게 웃음꽃을 활짝 피우는 중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