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년 04월 17일 (금) 23:47:51 최종편집 : 2020년 04월 17일 (금) 23:48:39 [조회수 : 4686]
지난 주중에 부활절 예배를 위한 특송을 요청 받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성가대의 부활절 칸타타가 울려 퍼져야 했을 날인데 성가대가 몇 주째 자리를 비운상태에서 부활절 예배마저 특별 찬양 없이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귀하고 영광스런 초청이었지만 솔직히 많은 부담감이 몰려왔습니다. 새로 부임한 교회에서 첫 번째로 드리는 특송이고 코로나19로 인한 특별한 상황 속의 부활절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곱 시 반 1부 예배부터 열 한 시 3부 예배까지 특송을 세 번 해야 하는 경우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성악가들을 볼 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멋진 노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석에서 처음 만난 개그맨에게 한번 웃겨 달라고 부탁하는 것만큼 큰 오해입니다. 테크니션 성악가들은 연주를 앞두고 1주일 넘게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악가와 목회자의 삶은 정 반대의 생활 패턴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특송은 늘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부딪힘 때문인지, 남들 앞에서 서는 게 여전히 불편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목사가 다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솔직히 이렇게 글을 쓰거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성악가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납니다. 연주회는 보통 저녁시간에 열립니다. 보통 9시가 넘어 음악회가 끝나면 비로소 긴장을 풀고 동료들과 어울려 횡격막 호흡을 위해 비워뒀던 위장을 채웁니다. 긴장하여 준비하고 감정을 끌어 모으기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다량 분비되어 연주 후에는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잠들어 8시간 이상 자야 몸이 회복됩니다. 사실, 성악가가 살이 쉽게 찌는 이유는 성량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삶의 패턴 속에서 섭취하는 야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목회자는 우선 잠을 제대로 못잡니다. 이어지는 예배와 만남 가운데 말을 많이 해야 하며 설교를 위한 고민과 영적 번민도 많이 합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부목입니다! 성악가의 삶과 상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지휘하는 성가대를 대표해서 부활절 예배에서 찬양을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은혜입니다.
찬양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지만 이번 만큼은 온전한 예배에 갈급하고 코로나19가 몰고 온 사망권세에 신음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를 노래에 실어 전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대학시절 자주 불렀던 고형원 작사 작곡의 ‘나사로야 나오라’가 떠올랐습니다. 때마침 몇 주 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는 오래된 기독교 백화점에서 득템한 박종호 악보집에 그 곡이 실려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이번 찬양을 위해 예비 된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 피아노를 치며 다시금 불러보니 참으로 명곡이었습니다.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영적으로 울림이 있는 한편의 드라마를 끌어내고 사망의 신음과, 부활의 신비와, 생명의 환희와, 예수의 눈물과, 예수의 사랑이 서린 음악을 입혔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겨버렸습니다. 연습할 때마다 마지막 가사에 이르게 되면 눈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망 아래에서 신음하는 생명들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바라보시고 눈물 흘리신 주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큰일입니다.
사망의 문은 닫히고 빛 한 조각 없는 어둠
생명의 호흡은 떠나 영원한 침묵에 누워
구원의 소망도 없이 끝없이 내리는 절망
슬픔과 눈물의 바다 영원한 어둠의 나라
그때 나는 들었네 거역할 수 없는 생명의 부름
그때 나는 들었네 애통히 부르시는 음성
나사로야 나오라 죽음에서 일어나 생명의 대지에
나사로야 나오라 어둠에서 일어나 새하늘 새땅에
나사로야 나오라 사망권세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께
이제 나는 보네 두 눈에 눈물 가득
우시며 나를 부르신 사랑의 구주 예수님
연주자는 무대에서 감정적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찬양 곡, 특히 예수님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찬양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해제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예배이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했습니다.
판소리도 아니고 1부 예배에서는 정신없는 틈에 간신히 완창(?)을 했지만 결국 2부 예배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찬양 중간부터 권사님들이 한분씩 눈치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십니다. 게다가 서로간의 2미터 간격을 지켜 앉으시는 바람에 한 분 한 분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결국 마지막 소절을 부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반주만 감상하다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예배를 혼란스럽게 할 수 없어서 3부 예배 때는 가지고 있는 MR로 ‘내가 영으로 예배 하리’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참으로 인상 깊었던 부활절예배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으로 가서 이불을 덮고 다시금 ‘빛 한 조각 없는 어둠’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활예수와 함께 있노라니 어둠도 더 이상 어둠이 아니었습니다. 몸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부활예수의 인사를 받은 듯 영혼은 어느 때 보다 평안했습니다. 떼제 공동체의 노래 한 구절이 영혼의 언저리를 맴돕니다.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La ténèbre n'est point ténèbre devant toi:
la nuit comme le jour est lumiè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