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6)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 예수

이 영화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즉 눈을 돌려 굳이 보려고 하지 않으면 전혀 보이지 않지만 막상 눈을 돌리는 수고를 하고 나면 너무나 많아 놀라고 마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택배기사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당신은 고용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겁니다.” “우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고용 기사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가 되죠.” “개인사업자 가맹주가 되는 겁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죠.” 우리는 당신을 고용한 것이 아니다, 당신과 우리는 동등한 사업자인 셈이다, 당신은 개인사업자, 즉 일인 사장님이다. 택배회사의 지역 매니저는 새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의 고용인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사장님이라고. 이 말이 존중과 인정의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택배기사들을 향해, 배달대행기사들을 향해, 야쿠르트 외판원들을 향해, AS기사들을 향해, 학습지 교사들을 향해 최강의 갑인 기업들이 당신은 개인사업자요 사장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존중과 인정이 아니라 그 어떤 부담과 책임도 없이 값싸게 노동력을 부리겠다는 기업의 순수한 탐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매니저의 너스레를 주인공은 순진하게 받아들인다. “네, 괜찮은 것 같네요.” 그리고 이 말과 함께 주인공의 위태롭던 삶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가난했지만 비교적 단란했던 4인 가족은 이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파국을 향해 미끄러져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난하지만 행복한’이라는 말이 형용모순이 되어버린 현실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냉정한 민낯을 우리 면전에 들이민다. 몇 해 전 켄 로치(Ken Loach) 감독은 평생 성실히 일한 죄밖에 없는 한 노년의 노동자가 철저하게 자신의 존엄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라는 영화를 통하여 그려냈었다. 그리고 그 감독은 이제 성실과 열심만으로는 결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단순하고도 슬픈 진리를 중년의 노동자를 통하여 보여준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주인공 리키. 개인사업자 택배기사인 우리의 리키는 고군분투하며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가족들은 저마다의 비틀어져가는 삶 속에서 각자 나름대로 발버둥치지만 끝내 불행은 이들을 피해가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영화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이어서 슬프다.

‘미안해요, 리키’로 번역된 영화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이다. ‘당신을 놓쳐서 유감이다, 미안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표현은 택배기사들의 메모장에 인쇄된 말이다. 택배수령인의 부재 시 택배기사들은 저 말이 인쇄된 쪽지에 메모를 남겨놓는다. 택배는 당신이 지정한 곳에 잘 놓아두었다는 말을 적는 쪽지에 인쇄된 말을 감독은 이 비극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 제목은 우리 모두의 죄스런 고백처럼 들린다. “당신을 놓쳐서 미안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리키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면서 그 모든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끝난다. 마치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자, 그러니 이제 넌 어떻게 할래?” 갑작스럽게 끝을 내며 던지는 송곳 같은 질문에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마땅한 무거움이요 마땅한 혼란스러움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