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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노래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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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4월 08일 (수) 23:32:11 [조회수 : 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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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유독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백남옥의 ‘사월의 노래’다. 가사가 매우 서정적이다. 감성이 풍부했던 시절에 이 노래는 눈을 감고 불러야 제 맛을 느끼게 했다. 목련꽃, 베르테르 편지, 항구, 휘파람, 꿈의 계절, 무지개 등의 시어들은 입에 담고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나를 아주 멀리 상상의 나라, 머나먼 낭만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노랫말의 주인공처럼 어느 항구, 어느 산골에서 편지를 쓰고 편지를 읽는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벌써 35년 전이다. 이웃집에 핀 탐스런 목련을 보면 이 노래가 더욱 가깝게 들린다.

중학교 2학년 때 들었던 이 가곡 덕분에 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베르테르가 누구인지, 베르테르의 편지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당시엔 책의 글 배열이 위에서 아래로가 많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에서 세로로 출판된 책에 글씨는 깨알 같았다. 내 가슴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그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학교 수업 쉬는 시간에도 펼치고, 집에 와 불을 밝히며 새벽 두세 시까지 속도를 내어 읽은 것이 2박 3일이었다. 고작 15살의 나이가 무엇을 알았을까마는, 베르테르의 죽음은 내 가슴에 큰 구멍을 내었다. 가수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란 가요가 그 때 나왔더라면 나의 애창곡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소설이지만 주인공의 아픔과 슬픔에 깊이 동화된 난 한동안 울적했다. 그래서 사월의 노래는 생명의 등불, 빛나는 꿈의 계절이라 노래하지만 나에게는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애틋하다.

우리 마을은 지금 개나리와 진달래에 이어 벚꽃이 만발하고 있다. 집 뒤에 커다란 벚꽃은 작년보다 더 크고 웅장하고 밝게 꽃을 피웠다. 나무 밑동에서 올라온 잔가지 위에도 서너 개의 꽃을 피우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 아래 그늘도 적당하여 이웃집 아이들은 그곳을 놀이터로 삼는다. 자리를 깔고 누워서 가슴 한가득 벚꽃나무를 품는다. 흩날리는 꽃잎을 받으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7살 난 아이가 작은 손바닥에 있는 꽃잎을 보여주며 “목사이모,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뤄진대요.”라고 말하며 신나할 때, 아이의 모습에서 믿음이 느껴졌고, 희망이 보였다. 사월의 노래는 머나먼 이국의 노래도 아니고, 상상의 노래도 아님을 깨달았다. 사월은 아이에게 생명의 등불을 밝히는 힘을 주고, 빛나는 꿈을 꾸게 하는 계절이었다. 그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워 아이와 잠시 포옹을 했다. 사월의 따뜻한 햇살과 바람에 나부끼는 벚꽃이 유난히 환하게 빛났다.

지난 토요일 밭을 정리하면서 겨울을 보낸 쪽파를 이식했다. 쪽파를 캐는 중에 쪽파뿌리와 엉겨있는 민들레도 한웅큼 뽑게 되었다. 옛 어른들은 민들레도 반찬으로 밥상에 올렸다. 여지껏 봄이 되면 지천에 깔린 민들레를 많이 봐 왔지만 먹어본 적은 없었다. 노랗고 하얀 꽃으로 감상만 했지 봄나물로 먹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어쩔수(?)없이 뽑게 된 민들레를 깨끗이 씻어 고추장 양념으로 밥상에 올렸다. 내가 한 것이지만 맛있었다.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민들레의 쌉싸름함이 입맛을 돋운 것이다. 민들레 뿐만 아니라 사월에는 봄나물이 널렸다. 달래, 부추, 쑥, 아욱, 두릅이 내 주변에 널려있다. 모두 향이 강하고 쌉싸름한 맛을 낸다. 무침, 부침, 샐러드, 장아찌로 두루두루 요리하여 먹으면 나갔던 입맛이 돌아온다. 장독대 근처, 뒤안 언저리에 조금씩 심어두면 사월에서 오월까지는 봄철 반찬으로 거뜬하게 해결할 수 있으니 사월은 확실히 생명의 숨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운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찬란하고 쓸쓸한 목련은 지고, 화려하고 고운 개나리와 진달래도 서서히 시간의 뒤안길로 들어서고 있다. 먼발치에서 내가 사는 마을을 바라보니 벚꽃이 유난스럽다. 지난주부터 솟아난 나무의 새순들이 더욱 만발하면서 산 전체를 차차 물들이고 있다. 녹음이 짙어지는 오월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파릇파릇, 푸르스름하고 도톰한 순들이 피어날 때 내 마음도 피어나는 듯 설레어서 좋다. 아직까지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숨결, 생명의 등불, 빛나는 계절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니 서러워말자, 슬퍼말자. 사월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며 묵은 마음, 심심한 일상, 경직된 생활을 일깨워보자. 휘파람이 어려우면 내 입에 쉽게 흥얼거리는 봄노래를 자신에게 선사해보자. 마음속에 구름 꽃이 피어나지 않으랴!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에게 숨과 생명으로 우리 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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