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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전하는 하나님의 행정명령” (아모스 6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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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3월 30일 (월) 14:01:05 [조회수 :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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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전하는 하나님의 행정명령” (아모스 6장)

 

 

1. 흉한 날이 멀다하여

 

① (1절~2절) “화 있을찐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 ‘화 있을찐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라는 말씀은 앞서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암5:18)와 대비된다. 임박한 종말로 미혹 하는 자들 보다 ‘(3절)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세속적인 신앙인들의 상태가 더 심각하다. ‘시온에서 안일한 자’는 남유다 왕 웃시야를 가리키고,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는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을 가리킨다. 웃시야 왕의 시대는 남 유다가 가장 강성한 때였다.(대하26:15~16) 강성하게 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했다.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는 영토확장과 부국강병으로 41년간의 태평성대를 누렸다.(왕하 14:26~27) ‘곧 열국 중에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 축복과 번영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에 빠져 기고만장하여 자아도취에 빠져 사는 이들을 통칭한다. 실패와 고난으로 시험에 드는 사람이 열에 하나라면, 열에 아홉은 번영과 성공으로 인해 시험에 든다. ‘갈레’는 앗수르에 정복된 도시이고 ‘하맛’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2세에 의해 정벌된 성읍이다. (왕하14:25), ‘가드’는 남유다 왕 웃시야의 의해 정복된 곳이다.(대하 26:6) 그들이 힘이 없어서 망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너희 손에 붙이신 것이듯, 이제 너희도 그들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멸하실 것을 증거 한다.

 

② (3절~6절)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누구도 예외 없는 심판의 날을 애써 외면하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세상에 빠져 사는 이들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참된 종말신앙은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한다. 흉한 날을 멀다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상아 상과 기지개’는 사치와 태만이다. 안 해도 될 일에 허비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에는 게으르다. ‘어린 양과 송아지를 취하여’ 먹는 것은 필요이상의 탐욕을 구하는 지나친 과욕을 뜻한다. (메시지성경) ‘그저 자신의 오늘만 즐길 뿐 다른 사람의 내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비파에 맞춰 헛된 노래,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는 겉으로는 다윗의 모습을 핑계로 속으로는 ‘자기를 위하여’ 노래하고 악기를 제조하는 자기과시를 말한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는 폭음과 과음, 과식과 과로, 무절제한 과소비를 은유적으로 전한다. ‘요셉의 환난’은 7년 풍년으로 7년 기근을 대비했던 요셉의 지혜를 망각한 채, 지금 당장의 번영에만 눈이 어두워 장차 올 극심한 환란과 기근을 대비하지 않는 삶을 가리킨다.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 욕심을 채우는 일에 허비하는 오늘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③ (7절)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 (메시지성경) ‘그러나 정말로 다가오고 있는 일은 이렇다. 그들은 줄지어 낯선 타향으로 끌려갈 것이다. 넝마 차림의 비참한 무리가 되어 그들은 애처로이 울며 조국을 떠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결국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분산정책에 의해 열국에 흩어지는 비극적인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코로나19 재난 앞에서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잘 대비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많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장기화로 인한 가을철 제2차 대유행이 벌어질 것을 예측하고 있다.

 

 

2. 하나님의 행정명령, 디아스포라

 

① (8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들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북이스라엘에 내리는 재앙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이기에 반드시 ‘대적에게 붙이실 것’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증하신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향해 왜 이런 극약처방을 결정하셨을까? 사랑과 긍휼이 없어서가 아니라 완고함과 오만함으로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문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이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교만’이다. 북이스라엘의 자기영광과 자기자랑, 자기과시와 자기자랑을 철저하게 굴복시키신다. 언제까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까지다.

 

② (9절~10절)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 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 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 재난이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을 경고한다. 장례를 치르지 못할 만큼 끊임없는 죽음의 행렬 앞에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의사 율리안 우르반은 고백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죽음을 맞이하러 집으로 보내져야 하는지를 결정해 라벨을 분류하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2주 전까지 나와 나의 동료들은 무신론자였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의 부모님이 교회에 가는 것을 비웃었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지식과 능력을 의지하며 완고하던 이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까지 계속될 것을 증거 한다.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 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속단해서 떠들지 말 것을 경고한다.

 

③ (11절)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 재난에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 이번 재난을 통해 한국교회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행정명령은 분명하다. ‘디아스포라’다. ‘흩어지라’,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부흥과 성장을 명목으로 모이기에 힘을 쏟았다. 이제 바벨탑 쌓기를 그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겸손하게 돌이킬 것을 명하신다. 재난에 대처해서 일시적인 온라인예배나 가정예배는 온전한 응답이 아니다. 미자립상가월세교회들에게 3개월 분 월세를 나눠줄 게 아니라 월세를 감당할 교인들을 파송해야 한다. 구체적인 해법은 이미 나왔다. 분당의 한 대형교회 목회자가 주창한대로 ‘일만성도 파송운동’을 실행에 옮길 때가 바로 지금이다. 행정명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만일 하나님의 행정명령을 실행하지 않으면 북이스라엘 몰락의 다음순서가 남 유다가 된 것처럼 대표적인 대형교회 가운데서 이단 신천지와 같은 집단발병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집단감염의 핵심요인은 예배 자체가 아니라 통제 불능의 다수가 모이는 ‘밀집예배’인 까닭이다.

 

 

3. 우리의 뿔은 우리 힘인가

 

① (12절)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며”

▶ 바위 위에서 말이 달리고 소가 밭을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말이 달리고 소가 밭을 갈려면 먼저 거치는 바위를 치워야 한다. 지금 당장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공법과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 신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은 회개와 성찰인데, 회개 없이 성찰 없이 다시 정상적으로 해결되고 복구되길 바라는 건 불가능한 헛된 망상일 뿐이다. 지름길 NO!!

 

② (13절)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

▶ 뿔은 ‘사람의 영광’(물질, 명예, 권력, 업적)이다. ‘우리의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내 노력으로 쟁취한 정당한 보상으로 여기는 건 ‘착각’이고 ‘오만’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선물)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것을’ 바로잡으신다.(공법과 정의) 내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 두고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 죽음의 순간, 재난의 순간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고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③ (14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앗수르는 하나님의 막대기일 뿐이다. 재난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재난을 주관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10:28~33)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참새보다 귀하니라” 지금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놀라운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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