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날개 십자가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3월 22일 (일) 00:04:24 [조회수 : 344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공동체가 있다. 다음 달에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 지하에 예배공간을 마련하여 정식으로 간판을 내건다고 한다. 예배당에 걸 십자가를 의논해 왔다.

  그래서 먼저 필리핀에 연락해서 향수를 느낄만한 나무를 공수해 오라고 부탁하였다. 필리핀에는 ‘나라’라고 불리는 필리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소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 나무를 반듯하게 자른 송판 두 개가 빛의 속도로 한국에 도착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양양공항 세관에 걸렸는데, 이틀 후 겨우 사정 이야기 끝에 돌려받았다. 십자가에 쓸 재목이란 변명이 통했을까?

  평범한 송판 두 개를 눈앞에 두고 생각을 거듭하였다. 십자가를 만들기에 소나무 송판은 너무나 평범하였다. 게다가 말끔히 다듬어서 필리핀 출신이란 정체성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결국 두 개의 송판을 양 날개처럼 재단하여 한국산 참죽나무 기둥 양쪽에 끼워서 십자가를 만들도록 주문하였다.

  참죽나무는 한자어로 ‘춘’(椿)이라고 부르는데, ‘참죽나무 춘’, ‘아버지 춘’이라고 읊는다. ‘춘’자는 춘부장(椿府丈), 곧 남의 아버지를 높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십자가에 아버지란 의미의 참죽나무를 세로 기둥으로 하고, ‘나라’라는 필리핀 고향나무를 가로의 양편날개로 하였다. 한국과 필리핀 협력품이다.

  십자가 이름을 ‘날개 십자가’라고 붙였다. ‘날개 십자가’(룻 2:12)는 이 땅에 나그네로 온 필리핀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고, 친절한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공적으로 보호받기를 소망하고 있다. “자기 이웃에게 자비로운 자는 누구든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다”(탈무드).

  사실 날개 십자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의 경우에도 150여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 흩어져 나그네로 살았다. 재외동포의 숫자가 현재 750만 명에 이른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는 너무 기회가 적었고 위험했으며,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차별적이었다.

  해방 이전에는 가난과 식민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 하와이와 멕시코, 일본과 동남아로 유랑민처럼 조국을 떠났다면, 해방과 독립을 맞은 후 분단과 전쟁 또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60-70년대에는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로 독일로, 농장 개척을 위해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또 풍요를 꿈꾸며 미국과 캐나다,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어느 새 4, 5세대에 이른다.

  이런 시도는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는 말로 비유된다. 일찍이 조선에 온 선교사 헐버트는 “조선인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다”고 하였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인조선인 서경식은 “디아스포라로 산다는 것은 깨어지지 않는 유리벽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독일 이주민공동체에서 목회를 한 적이 있다. 독일 루르 탄광지대의 중심에 있는 복흠한인교회 한인동포 1세대 교회였다. 올해에 창립 50주년을 맞는다니, 그곳을 떠난 지 엊그제 같은데 참 뿌리가 깊고 오래다.

  독일교민 중에 이민으로 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1960년 대 초 광부와 간호사로 왔다가 남았다. 그들에게는 가난을 면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고, 고향에 있는 대식구를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하였다. 젊은 그들은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미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디아스포라는 ‘씨앗’(스포라)을 ‘뿌리다’(디아)란 뜻이다. 씨앗이 스스로 자라나는 과정은 저마다 독립운동과 다름없다. 사람이 옮겨 사는 일은 마치 생나무를 옮겨 심는 일처럼 그만큼 고달픈 일이다. 제대로 정착하려면 죽기 살기로 몸부림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옮겨 심은 나무가 생기를 잃은 모습을 ‘주접떤다’고 한다.

  남의 땅에 옮겨 심은 나무가 생기를 잃고 주접을 떨 듯이, 이주민의 삶은 불안하고, 취약하며, 혼란스럽다. 삶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이 원주민의 친절에 의지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 친절은 개인의 도움이고, 사회적 보호이며, 국가적 시스템이다.

  평소에도 외국살이가 힘들지만, 요즘 코로나19 재난을 맞아 외국인의 인생살이는 더욱 힘겨워졌다. 당장 외국인이 공적마스크를 구입하려면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건강보험 가입자격이 없는 난민 신청자, 국내 체류 기간이 6개월 미만인 외국인은 그나마 마스크 살 기회조차 없다. 바이러스가 국적과 인종, 내국인과 이주민을 가릴 리는 없을 것이다.

  유엔 총회는 1966년에 해마다 3월 21일을 ‘국제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정하였다. 사실 이주민은 삶의 자리에서 뿌리 뽑힌 경험을 한 사람이지만, 그런 실존적 처지 때문에 가장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불운을 딛고 미래의 문을 무모하게 연 대가를 치루는 셈이다. 그들의 삶에도 ‘날개 아래’가 필요한 이유다.

 

송병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최웅석 (221.149.169.106)
2020-03-22 07:34:30
1. 흩어진다.!!!

2. 처음으로.(학원 유명 강사스타일 준비)

3. 개척정신으로 = 소상공인 유형.
리플달기
0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