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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국 속 오프라인예배의 한시적 중단에 대한 성경적 근거예배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인애를 행하는 것
김경호  |  xari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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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3월 18일 (수) 20:45:10 [조회수 : 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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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국내에 들어온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단 신천지를 통해 국내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정부와 방역당국에서는 종교집회의 한시적 중단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와 불교는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종교 집회를 중단하고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고 오프라인예배를 강행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우려하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는데 그것은 주일예배를 강행한 성남 은혜의강교회에서 50명이 넘는 신도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이 행정당국에 교회에서의 예배를 강제로 막아달라는 촉구를 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오프라인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예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종교적 신앙심입니다. 또한 "모이기를 힘쓰라"(행 2:46;히 10:25)는 성경 말씀도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편협한 신앙관입니다. 과연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국에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교회에서 예배 등의 집회를 가지는 것과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위의 표준이기 때문이지요.

 

  성경에는 나병 같은 악성 피부병 등 전염의 위험이 있는 병에 걸린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레위기 13-14장에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제사장은 악성 피부병이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칠일 동안 격리하고 칠일 후에도 환부가 변하지 않으면 칠일을 더 격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가 보기에 그 환부가 변하지 아니하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이레 동안을 가두어둘 것이며"(레 13:4-5).

 

  "만일 제사장이 보기에 그 옴의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검은 털이 없으면 제사장은 그 옴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이레 만에 제사장은 그 환부를 진찰할지니 그 옴이 퍼지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누르스름한 털이 없고 피부보다 우묵하지 아니하면 그는 모발을 밀되 환부는 밀지 말 것이요 제사장은 옴 환자를 또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레 13:31-33).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하여금 악성 피부병이 의심되는 사람을 격리하게 하신 것은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악성 피부병이 의심되는 사람의 격리기간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처음 격리기간은 7일이지만 환부의 상태에 따라 7일을 더 추가하여 14일 동안 격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은 안식일 성회에 전혀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날로 치면 교회의 예배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덧붙여 격리기간 동안에 증상이 나은 사람은 정결례를 행한 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나병으로 판명된 사람은 영구적으로 진영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감염의 위험 때문이지요.

 

  이 규례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이 규례는 하나님이 감염의 위험이 있는 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안식일 성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모세율법 가운데 의식법에 해당되는 것은 오늘날에는 사문화된 규정이지만 감염의 위험이 있는 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격리 조치는 의식법의 여부와 관계없이 현대사회에서도 취해지고 있는 조치입니다.

 

  우리는 이 의식법에서 지금처럼 모임을 통해 전염병이 확산될 우려가 클 경우에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오프라인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예배로 대체하는 것의 정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배하는 것 못지 않게 사람들의 건강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분이시라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국에 교회에서의 오프라인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타당함을 증거하는 말씀으로는 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는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이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신약성경에는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제사', '번제'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예배를 원하지 아니하며 예배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될 것입니다. 인애와 제사는 하나님이 모두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패역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바르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삶과 신앙이 바르지 못한 예배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사야 1장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1-15).

 

  이 말씀은 코로나19의 감염과 확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예배를 강행하는 이들이 정말 새겨들어야 할,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예배를 받으시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시고 예배법까지 제정해서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께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사를 뿌리치시고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성회까지 가증히 여기신다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사와 성회를 가증히 여긴다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그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하나님이 즐거이 예배를 받으실 만큼 바로 서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초대교회는 온 백성의 칭송을 들었다고 하는데(행 2:47) 지금의 한국교회는 한국민들에게 이러한 칭송을 듣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올해(2020년) 2월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에 대한 무종교인들의 신뢰도는 겨우 6.1%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가톨릭교 33%, 불교 23.8%에 비해 엄청난 격차입니다.

 

  코로나19 시국에서 전염병 감염과 확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예배를 강행하고 있는 개신교회의 모습은 기윤실의 여론조사에서 개신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신뢰도가 왜 이렇게 처참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사보다는 인애를, 번제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하찮게 여기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예배도 원하시고 인애도 원하시고 당신을 아는 것도 원하십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인애를 행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예배보다 선행(先行)되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시국에 오프라인에서의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애를 행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천지의 경우처럼 교회를 통해 지역사회에 전염병이 확산된다면 이것은 인애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코로나19 시국 속 오프라인예배의 한시적 중단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 보았습니다. 저의 이 견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을 삶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양심에 따라 작성한 것입니다.

김경호(목사, 샬롬방 신앙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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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주 (180.83.35.43)
2020-03-20 17:06:10
레위기를 모르는 이 칼럼을 쓴 목사님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레위기를 모르는 이 칼럼을 쓴 목사님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이 레위기에 나와 있는 정결법, 제사법, 음식법은 하나님의 성민을 강조한 것입니다. 구별됨, 거룩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제발 성경 좀 읽으십시오.
민14장2절, 21절 음식도 규제한 이유, 금하시고 부정하다고 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것입니다. 구별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레위기의 정결법을 통해 세상사람들과 다름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구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대안에 대해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구별되어 거룩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정결법 규례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음식법도 제시하신 것입니다.
이 레위기에 있는 음식법도 정결법도 제사법도 예수님이 오셔서 신약에 완성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레위기에 있는 제사법을 통해 제사를 이렇게 드려라고 말씀하셨고, 또 제사장이 드려줘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만인제사장) 예배드리는 것으로 완성된 것이고, 그래서 그 제사법의 의도(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가 중요한 것이고

음식법도 금지시킨 음식은 정결하지 않아서 인데 그 의도는 구별된 성도로 살라는 것이고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율법을 완성시켰고 이제는 그 음식을 먹어도 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 음식법을 제시했던 그 의도(구별된 성도의 삶)를 알고 자유롭게 음식은 먹되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이고

정결법도 부정한 것들에 대해 무조건 격리였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율법을 완성시키고 그 부정한 병들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제시한 부정하지 않게 살라는 의도가 중요한 것이고 정결법은 무조건 격리가 아니라 적극적 치료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약에서 병을 치료하시고 세리, 병자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로 격리하는 것 때문에 이 레위기를 사용하셔서 한시적 예배 중단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율법의 완성된 것은 빼놓고 무조건 격리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중단하라는 것은 레위기서 뿐만 아니라 신약의 본질도 파악 못하는 것입니다.

제발, 칼럼을 쓰더라도 성경을 좀 알고 가르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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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주 (180.83.35.43)
2020-03-19 02:19:11
저는 작금의 사태에서 개인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목사님께서 올려주신 내용은 온라인예배의 근거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걸린 사람 즉, 환자를 대상으로 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악성피부병(짜라아트)입니다. 이것은 정결법에 관한 내용이지 온라인 예배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14일 후에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나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드릴 곳이 없는데 혼자 예배드려야 하나요? 온라인으로? 온라인이 없는 시대에? 이것은 걸린 사람, 즉 환자에 대한 격리조치이지 온라인예배로 대체해야 할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 6:6 말씀도 예배를 온라인예배로 대체해도 될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면서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잘못된 모습을 지적한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제사만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율법적 모습)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56:6-7>
6.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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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3-18 23:43:50
성경 구절로 반박하려다가 그만둔다. 왜냐고? 쓸데없는 논쟁에 성경을 끌어들여 성경을 욕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성경을 달리 해석하는 교파가 개신교만 해도 35,000派나 되므로 어느 일방의 주관적 해석을 다른 교파나 생각을 달리하는 교인에게 강압적으로 강요하지는 말라! 정중하게 권고하는 걸로 족하라! 성경을 독점한 중세시대의 마녀사냥 식 행태는 답습하지는 말라!

집단예배를 不可缺로 여기는 것 역시 성경에 나와 있기에 이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하는 게 성경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예배를 중시하다보니 다른 견지에서 보기에는 답답한 부분이 있을 수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런 식으로 입장이 다른 개신교 교파가 35,000派나 되는 데 그 중 어느 1派만이 성경 해석을 온전하게 하고 있다고 강변한다면 신천지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신천지는 자기들이 성경해석을 가장 올바르게 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교파가 볼 땐 語不成說이라고 하지 않는가.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을 다른 교파에게 무턱대고 강요하는 건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 신천지의 해괴한 해석조차도 따르는 사람이 25만 명이나 된다.

무한폐렴 관련해서는 성경을 떠나서 사회적 논리로 집단예배의 부당성에 대해 논하는 게 오히려 정직하다 또 바람직하다. 집단예배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면 사회법적으로 다루면 된다. 여기에 빼고 더하고 할 것도 없다.

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하는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이재명 지사는 성경구절을 들먹이지도 아니하고 사회법적인 근거에 의해 집단예배를 손보고 있다. 이재명지사가 소형교회의 집단예배 등을 손본다면 그렇게 하면 될 것이고, 이에 불복하는 교인은 폐쇄된 교회 밖에서 길가에 서서 예배를 보면 될 것이다. 이게 깨끗한 해결방법이다. 두말 할 것도 없다.

이때까지 군말 없이 집단예배를 추종하다가 무한폐렴을 구실로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여 집단예배에 대해 침을 뱉기 시작한 교인들은 그 입 다물라! 생각이 다른 교인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성경을 들먹이지 말라! 이재명이가 집단예배 추종자들을 조지는 걸 보면서 박수나 쳐라! 그리고 무한폐렴이 잠잠해지더라도 집단예배로 돌아가지 말고 지금 하는 방식 그대로 하기 바란다. 고작 무한폐렴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하는 걸 부끄러워해라!

불교나 천주교나 김일성주체교나 이슬람교나 일반사회가 뭐란다고 하여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도 신앙생활임에는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불교나 천주교나 김일성주체교나 이슬람교나 일반사회나 非집단예배파가 뭐라고 하던지 간에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신앙생활임에 틀림없다.

非집단예배파가 성경이 아닌 세간의 눈초리를 더 의식하는 것도 신앙생활임에 틀림없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非집단예배파가 상충되는 성경 구절 중 집단예배파에게 불리한 성경 구절만을 쏙 뽑아서 집단예배파를 공격하는 것도 신앙생활임에 틀림없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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