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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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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3월 15일 (일) 15:21:45 [조회수 :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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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장)

 

 

0. 아모스 5장 전반부 요약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이 당할 죽음 같은 절망을 노래한다. ‘애가’ 보다 ‘장송곡’에 가깝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기회를 거부한 이들을 징계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막을 방도가 없다. 아모스는 다 끝난 것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한다.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선지자 요엘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고, 선지자 하박국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증거 했다. 삶에서 만나는 재난과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믿으면' 과연 생명과 구원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모스는 응답한다. 재난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재난을 주관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1. 다른 길은 없다

 

① (1절~3절)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는 이 말을 들으라.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가 없으리로다 주 여호와께서 가사라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 ‘애가(哀歌)’는 문자적으로는 슬픈 노래지만 의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최후를 알리는 비극적인 ‘장송곡(葬送曲)’이다. (계3:7)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사람이 막을 수 없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회복불능이다. 삶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일으킬 자가 없으리로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기사회생을 시도하더라도, 결국 속수무책의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을 단언한다. 이미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그 뜻을 확정하셨다. 천 명 중에 백 명만 남고, 백 명 중에 열 명만 간신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라면 그 뜻을 다 이루실 때까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② (4절~6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을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자가 없을까 하노라”

▶ (메시지성경) ‘나를 찾아라. 그래서 살아라. 베델의 산당 주위를 기웃거리지 말고 길갈에 가보겠다고 시간 낭비하지 마라. 공연히 브엘세바로 내려갈 것도 없다. 길갈은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사라지고 말 것이며, 베델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아라, 그래서 살아라! 너희는 잿더미와 폐허뿐인 채 너희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시면 그 불을 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우상숭배가 행해지던 제단이다. 재난이 찾아오면 중심(믿음)이 드러난다. 자신이 의지하던 헛된 우상(물질 & 명예, 권력 & 사람)에 더 집착하고 매달리지만 아무 소용없다. 인생의 한계를 자각할 때 세 가지 반응으로 나타난다. 자살(허무, 절망), 발광(집착, 완고), 종교(초월)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구원을 줄 순 없다. 삶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비상구, 절망에서 소망으로 나가는 탈출구, 곧 ‘유일한 살 길’을 제시한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선지자 요엘과 동일한 해법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재난을 친히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찾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것을 찾고, 부르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곧 하나님을 삶의 주관자로 의뢰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찾고, 주의 이름을 부른 다’ 주님께 삶을 맡긴다. ‘맡기니까 믿음이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사람은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다. 그뿐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신다. 재난에 순간에 ‘무엇을 믿는지’ 정체가 드러난다. 내가 의지하던 대상이 과연 믿을만한 대상인지 실체가 드러난다.

 

③ (7절~9절)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저는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공법(righteousness)’은 아모스서에서만 등장하는 용어로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다. 정의(正義, justice)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인진’(쑥, wormwood)은 본래적인 가치를 하찮게 변질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다. ‘땅에 던지는 자’는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다. 공법과 정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공법과 정의를 쑥으로 여기고 땅에 던진 것은 삶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며 무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교만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이다. 오늘날 다다익선과 다수결,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과학만능과 물질만능의 기고만장하고 오만방자한 삶의 방식들이다.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 노릇하던’ 우상숭배는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는 신념이다. 참된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지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생명의 한계)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각할 때 누리는 은혜와 감사, 기쁨과 평강이다.

▶ (메시지성경) ‘너희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별들을 흩뿌려 놓으신 우주, 하나님이 아침마다 깨우시고 밤마다 잠들게 하시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대양에서 물을 퍼내어, 땅에 마실 물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다. 손쉽게 만들어 내신 것처럼, 그분은 손쉽게 이 모든 것을 멸하실 수도 있다. 이 거대한 경이를 단숨에 폐허가 되게 하실 수도 있다’ 죽음의 순간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듯 재난의 순간 헛된 우상들과 거짓 신화들이 무너져 내린다. 진짜가 나타나면 진실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 헛된 우상들은 무너지고 허무한 인간의 실존이 드러나게 된다. 빛을 비추면 어둠이 사라지듯 진짜가 나타나면 가짜들은 사라진다. 삶에서 만나는 재난과 위기는 누가 참된 삶의 주관자인지, 누가 참된 세상의 통치자인지, 누가 참된 하나님인지 만천하에 판가름 나는 순간이다. 진실과 거짓이 판가름 나는 순간이다. 재난은 ‘하나님의 손가락’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방편이다. 전염병을 두려워할게 아니라 전염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재난의 순간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을 만날만한 구원의 때다.

 

 

2. 진실은 인기가 없는 법이다

 

① (10절)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 도다”

▶ (메시지성경)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진실은 인기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삶의 주관자시다는 아모스의 주장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무리들의 군중심리는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들의 경고에 청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처음으로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해 12월30일 병원 내 환자들의 위험상황을 SNS를 통해 알렸으나 중국정부는 허위정보를 퍼뜨려 민심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기소했다. 그는 결국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고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말았다.

 

② (11절~12절)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 (메시지성경) ‘너희는 가난한 이들을 악랄하게 짓밟고 그들에게서 빵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결코 너희가 건축한 화려한 집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결코 너희가 재배한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희의 위법이 어느 정도인지 너희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참으로 섬뜩하다. 너희는 의롭게 하는 이들을 괴롭히고 이리저리 뇌물을 받아가며 가난한 이들을 바닥에 내친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앙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열매 맺어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인 공평과 정의, 사랑과 긍휼(용서)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반드시 그들의 악행을 엄중하게 처벌하신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사람의 평판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지를 살펴야한다.

 

③ (13절)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라”

▶ (메시지성경) ‘정의는 패하고 악이 판치는 세상이다. 정직한 이들이 손을 놓아 버린다. 저항하고 꾸짖어 봐야 소용없고, 힘만 허비할 뿐이다’ <망국에 충신이 없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낯선 격언이다.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망하는 나라에는 충신이 없고 간신배들로 가득하다.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충신은 다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충신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충신이 있는 한 실낱같은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는 중의적인 뜻이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했던 아모스, 남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던 예레미야의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들의 본심은 자신들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듣지 않고 배척하며 회개치 않는 이들을 보며 예언대로 이루어져 가는 현실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나라와 교회, 가정과 공동체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죄악의 무거움 때문이 아니다. 예언자들의 진실한 경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는 실망하거나 잠잠해서는 안 된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예언자의 외침은 무너져 내리는 세상에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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