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일상의 삶이 더 단조롭게 느껴진다. 평소에도 왕래가 뜸한 농촌생활이 코로나19로 모임이 연기되거나 취소가 되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과 사무실 왕래로 족하게 된다. 집과 사무실이래야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여서 특별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 일상의 반경은 상하좌우 딱 3미터이다. 집 문을 열면 눈앞에 사무실이 보이지만 집과 사무실의 경계를 분명히 짓기 위해 초반부터 9시 출근, 6시 퇴근을 정확히 지켰다. 그럼에도 지각은 종종 있다.

출근을 위해 문을 열면 이른 아침을 먹은 한라와 냥이들과 닭들이 나의 출근을 배웅한다. 배웅의 목적은 하나다. 나에게 뭔가 더 얻어먹으려는 꿍꿍이다. 애처로운 눈빛이 짧은 출근길을 막는다. 기어코 간식거리 하나쯤 얻어먹고 나야 녀석들은 이리 반응을 하는 듯하다. ‘언능 갔다 오소!’ ‘멀리 안 나가리라’ ‘점심은 제 때 챙겨주기오’ 얄밉다. 그 와중에 가장 든든한 녀석은 한라다. 사무실 앞까지 따라와 사무실 앞에 다소곳이 앉는다. 역시 충견이다.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한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껏 내보인다. 그래도 코로나19 덕(?)에 주인이 외출을 하지 않으니 나의 동물 가족들은 훨씬 편안하고 기분좋아 보인다. 덩달아 나도 좋다.

연탄광 앞의 산유화는 어느결에 활짝 피어 있다. 참새들의 놀이터다. 닭에게 모이를 한 대접 뿌려주면 닭은 물론 지붕과 나무에서 쉬고 있던 참새들도 내려와 함께 먹는다. 한번에 스무 마리 이상이 내려와 식사를 할 때가 있다. 참새 사이도 서열이 있는지 아니면 순서를 기다리는지, 어떤 참새들은 앞 참새가 먹이를 물고 올라가면 그때 내려와 먹기도 한다. 암탉과 수탉은 참새들이 내려오면 자리를 피해준다. 해코지를 하는 법이 없다. 너그러운 아량에 감탄을 한다. 이때는 냥이들도 라일락 나무 아래서 자비를 베푼다. 배부른 동물의 여유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만사가 행복하다 하는데, 요즘처럼 따뜻한 기운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으면 동물들의 단조로운 일상은 더 빛을 발하는 거 같다.

며칠 전 이웃의 전도사와 호미를 들고 밭을 나섰다. 봄나물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3월은 냉이의 철이다. 겨울 찬 기운을 맞고 자란 붉은 냉이는 파란 냉이보다 더 맛있다고 한다. 땅이 포슬포슬하여 냉이 캐는 것이 쉬웠다. 30분 정도 몸을 움직였더니 한소쿠리 가득이다. 냉이의 진한 향기는 덤이다. 코로 맡고 입에서 느끼는 향기는 도시의 마트에서 파는 냉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봄이 주는 맛은, 제철이 주는 맛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다. 제철 나물은 딱 먹을 만큼 캔다. 3월엔 냉이와 달래, 4월 쑥, 5월엔 머위 등등 몸만 부지런하면 밥상 위 반찬은 자연이 주는 나물로 족하다. 하루치의 만나는 성서의 텍스트에서 우리 현실의 콘텍스트로 깨쳐 나온다. 그래서 저절로 감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도 연기중이다. 오늘 이웃 전도사의 집 화장실을 수리하는데 내가 다니는 교인의 남편이 일을 봐주고 있다. 해가 떨어지기 전, 가족들이 남편이자 아버지를 응원하러 왔다. 코로나19로 아버지의 일터도 방문하니 보기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아들에게 학교 개학이 늦어져서 심정이 어떠냐고 물으니 집에서 할 일이 없단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힘들다면서 학교에 엄청 가고 싶고, 고등학교 교복을 빨리 입고 싶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코로나19가 학생들의 학구열을 높여주는 재미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찾아온 일상의 단조로움이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 되는 것도 같다. 누군가는 일상의 평범함이 매우 멋지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고 고백하였다. 격리와 분리와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마주하게 된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신앙의 자리, 신앙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 같다. 의도치 않게 다가온 일상의 단조로움이 나를 보게 되고, 이웃을 보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마주하게 하는 어쩌면 이 사순절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의 순간이 아닌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