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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교회의 예배, 예수라면 어떻게 할까?”
박경양  |  kmpeac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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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2월 26일 (수) 22:10:00
최종편집 : 2020년 05월 14일 (목) 12:01:39 [조회수 : 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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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의 광풍이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의학전문가와 정부는 밀집된 실내공간에서의 집회가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성을 높인다며 다중이 모이는 실내 집회를 가급적 중지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구와 부산, 서울에 있는 일부 교회와 성당들이 예배와 미사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전쟁 중에도 예배를 중단한 적이 없다며 예배 중단이 마치 신앙 없는 자들의 불 신앙적 행위이거나, 하나님보다 코로나19를 더 두려워하는 용기 없는 행위라며 비판합니다. 광화문의 전광훈은 다른 것은 몰라도 주일예배만은 광장에서 드리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과연 신앙적인 주장일까? 또 예수라면 어떻게 할까? 이 물음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안식일과 관련한 마테복음서12장의 일화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속의 일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한 안식일에 예수 일행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중에 배가 고팠던 예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파 사람이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배고팠던 다윗과 그 일행이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제단의 빵을 먹은 사실을 지적하며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어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또 회당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두고 예수를 고발하려는 의도로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는 것이 옳듯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양보다 귀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에 괜찮다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또 마가복음서 2:27에서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로드리고 신부는 배교하라는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의 설득을 거부하고 순교를 다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배교하지 않는 한 배교하고도 고문당하는 신자들이 죽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순교함으로 신앙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배교함으로 신자들을 살릴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집니다. 존경하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도 같은 이유로 배교했음을 안 로드리고는 결국 배교를 결심합니다.

다음날 새벽, 배교의 의미로 동판에 새겨진 예수의 얼굴을 밟던 로드리고는 발에 전해오는 격렬한 통증을 느낍니다. 순간 로드리고는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알고 있다. 밟아라. 나는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듣습니다. 또 자신을 찾아와 용서를 구하는 자신을 밀고했던 키치지로의 얼굴에서 ‘나는 침묵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너희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배교가 순교보다 괴롭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를 발견합니다. 결국 로드리고는 진실한 예수의 가르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신이 최후로 일본에 남은 사제임을 자각합니다.

코로나19로 신자와 이웃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의 예배 강행 여부는 형식과 교리를 근거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신자와 이웃들을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빠트릴 것인가 아니면 예수의 가르침의 참 뜻과 의미를 근거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신자와 이웃들을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과 안식일 규정을 비롯한 장로들의 전통을 가장 엄격하게 해석하고 철저히 지켰습니다. 예수는 이런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위선자라며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가복음서 12:31)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웃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와 이웃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상황에서 예배의 중지 여부에 대한 예수의 생각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신자와 이웃들을 코로나19의 위험에 몰아넣을지라도 형식과 교리에 매여 예배를 강행해야 한다는 당신, 바리새파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입니까?”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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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2-27 08:42:35
영화 Silence(沈默, 2016年作) 관련하여... 각자의 배교에 대한 이해심을 넘어 배교 그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할 순 없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영화를 본 소감은 “소설 원작보다도 더 생생한 감명!”

背敎냐 殉敎냐의 갈림길에서 배교를 선택한 자의 고뇌를 잘 표현하였습니다. 배교를 선택한 자를 폄하할 마음은 없습니다. 고심 끝에 선택한 고뇌의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드리교類의 배교 때문에 기독교가 번창한 것이 아니고 김대건類의 순교 때문에 기독교가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배교를 택한 일본에서의 포교활동 결과 일본은 인구의 1%가 기독교인입니다. 김대건 신부 등이 순교한 한국은 인구의 30%가 기독교인입니다.

배교를 선택한 자의 고뇌를 존중하는 것과 배교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자신이 배교함으로써 자기를 따르는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한 건 사실이나 장기적인 목표인 일본의 기독교화에 실패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드리고의 배교행위에 대해 “그래, 이해 못할 선택은 아니었다!”라고 하는 납득 수준을 넘어 그의 배교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까지는 무리입니다. 그의 배교행위를 정당화시키면 순교한 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순교한 분들은 로드리고처럼 고뇌가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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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2-27 06:35:39
무한폐렴 불구 예배강행 또는 무한폐렴 굴복 예배중지에 관하여
박경양 칼럼니스트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배격하는 것은 아니나 다음의 이유로 무한폐렴 불구 예배강행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무한폐렴 굴복 예배중지를 주장하는 측에서 무한폐렴 불구 예배강행을 주장하는 측을 ‘바리새파’로 찍어 벌떼로 공격하는 건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의 발로이다. 예배에 대한 自律性은 존중되어야한다.

미국독감으로 이번 겨울에 16,000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데 독감 때문에 미국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들리는지?

무한폐렴의 경우 환자對比사망 비율이 미국독감보다 현저하게 낮은 걸로 나와 있다. 즉 노약자나 基底환자의 경우에는 사망률이 상당히 높아지기는 하나 건강한 사람은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2~3주 지나면 회복된다고 한다.

무한폐렴으로 인해 비기독교인 사이에서는 기독교예배 자체가 터부시되고 있다. 길게 보면 이럴수록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선교(포교)하는 첩경이라고 본다. 로마시민이 로마화재를 이유로 기독교인을 마녀 사냥할 때 마술로 로마시민을 유혹한다고 백안시 되어오던 기독교인이 이에 겁을 먹고 후퇴하였다면 결코 기독교인의 로마정복은 없었으리라. 무한폐렴이 종식된 후에는 비기독교인 사이에서 “와~~ 기독교인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예배를 드리는구나! 도대체 예수교가 뭣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하구나! 이들이 열심히 예배를 드려 무한폐렴이 퇴치된 것은 아닐까?”하며 急 反轉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최고의 선교요, 포교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이 네로황제를 흉내 내어 무한폐렴 창궐을 일부 기독교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비기독교인은 신천지나 온천교회나 구별하지 않는다. 기독교인 사이에서나 이단이니 삼단이니 할 뿐이지... 이번 사태로 신천지가 쓰러지면 얼핏 보면 정통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短見이다. 이단이 쓰러지면 그 다음은 이른바 정통의 차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 상태에서 무조건 예배를 중지하는 건 문재인-네로황제에게 굴복하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것만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일제시대 일본천황에게 고개 숙인 기독교가 문재인-네로황제에게 또 다시 고개 숙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위 두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예배를 강행하고자 하는 교회는 예배를 드리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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