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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아모스3장 1절~8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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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2월 23일 (일) 17:47:23 [조회수 :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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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아모스3장 1절~8절

 

1. 예언자적 설교

 

① (1절a)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축복의 말씀만 하시지 않고 책망과 경고의 말씀도 하신다. 다윗은 시편23편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Your rod & Your staff, they comfort me)’을 고백한다. 보호용 지팡이뿐만 아니라 징계용 막대기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삼하7:14~15)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책망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겸손이 지혜다. 교만한 자가 패망하는 이유는 책망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쇠락하는 결정적인 사유 가운데 하나는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예언자적인 설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언자적인 설교는 소위 ‘치는 설교’나 ‘저격설교’와 유사해보이지만, 마치 강도의 살인용 칼과 의사의 수술용 메스만큼이나 그 목적과 동기가 전혀 다르다. 예언자적 설교는 사랑을 전제로 온유하게, 죽이는 ‘비난(blame)’이 아니라 살리는 ‘비판(criticism)’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딤후2: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② (1절b)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 하나님께서 경고하시고 책망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문자 자체에 매몰되지 말고 문자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표층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지만 심층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들을 일컫는다. 아모스의 예언은 수천 년 전의 것이고 특정한 한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것이지만 성경의 기사가 다 그런 것 같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모든 시대와 상황에 동일하게 읽혀지고 적용된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한 한국교회, 우리교회, 오늘 나를 향한 경고와 책망의 말씀이다.

 

③ (2절)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 ‘너희만 알았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일편단심으로 사랑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한쪽만 상대편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짝사랑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 하나님의 선택이란 언약을 통한 특권과 사명(권리와 의무)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과 지위를 맡았지만 권리와 권한은 누리면서 그에 따르는 마땅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았다. (메시지성경) ‘지상의 모든 족속 중에서 내가 특별히 너희를 골라내었다. 지금 내가 너희 모든 죄에 대해 심문하는 것은 너희가 받은 이 특별한 부름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랑과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은사, 재능, 물질)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축복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 직분을 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행하지 않은 죄다. 이런 죄를 저지른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망각과 자신의 공로로 얻었다는 착각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해 바로잡으시고 깨닫게 하신다.

 

 

2. 징계의 필연성

 

① (3절)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손바닥도 혼자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다. (메시지성경)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고 있으면, 둘이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 아니냐?’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고 우상과 짝하며 동행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다.

 

② (4절~5절)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

▶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까?’라는 속담처럼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우연히 벌어진 게 아니라 죄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임을 드러낸다. 죄로 인해 멸망에 이른 이스라엘의 형편을 맹수의 먹이가 되어 사로잡힌 짐승에 비유한다. ‘창애’는 짐승이나 주로 새를 잡기 위한 덫이나 올무로 쓰이는 사냥도구다. 죄의 속성은 덫이나 올무와 같다. ‘욕심-죄-사망 VS 말씀-의-생명’의 법칙은 필연적이며 예외가 없다. (시124:7) ‘우리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예수께서 친히 삶으로 보이신 생명의 길은 올무 같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 죄로 인한 사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회개다. 탕자의 비유는 진정한 회개의 자세를 가르쳐준다. (눅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 하겠나이다’ 죄를 저질렀으면 죄 값을 달게 받고 죄 값을 치러야 마땅하다. 그래야 뉘우쳐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과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는’ 용서와 긍휼은 진정한 회개를 향해 아버지가 베푸는 은혜다.

 

③ (6절)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와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하나님의 막대기일 뿐이다.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재앙 자체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서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마10: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스라엘의 멸망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필연’이다. 사단이 욥을 시험할 때 한 말에 주목해야 한다. (욥1: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산울로 두르신다는 사실을 사단은 잘 알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고 산다. 결국 삶에서 만나는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평상시에 산울로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다.

 

 

3. 예언자의 역할과 사명

 

① (7절~8절)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단, 모든 선지자의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거짓선지자를 분별해야 한다. (겔13:2~3)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있을찐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멍에를 매고 남유다의 바벨론 포로를 예언했던 예레미야의 멍에를 부수고 남유다의 번영을 예언했던 하나냐와 같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해야 한다. (마7:15~20)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② (에스겔 2장 4절~6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은 줄을 알찌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선지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안 되고 오직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의무와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 이토록 예언자에게 신신당부하시는 이유는 뭘까? 예언자 가운데 말씀을 왜곡하고 변질시키거나 침묵하고 방기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경고와 책망)을 듣기 싫어하고 배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옥에 가뒀고 이사야는 톱으로 켜서 죽였다. 2007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대회(평양 대부흥운동을 어게인 1907)가 열렸다. 설교자로 나선 옥한흠 목사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은 감당할 뿐 책망과 경고를 전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외면해 왔다고 자신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회개를 촉구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양적인 부흥과 성장이면에 질적인 타락과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강단에서 예언자적인 설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가시와 찔레,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예언자적인 사명을 두려움 없이 감당하는 목회자들의 출현에 달려 있다.

 

③ (8절) “사자가 부르짖은 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 C. 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백수의 왕 사자로 묘사했다. 예언자는 왕 되신 하나님의 명령을 대언하여 그대로 전달하는 메신저의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자기 말이나 판단이 아니라 오직 보내신 분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 값을 예언자에게서 찾으신다. 동시에 만일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해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예언자의 말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음성으로 경외하며 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감동적인 예화나 쉽고 편한 주제설교가 아니라, 어렵고 무거운 강해설교를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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