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7. 월요일

아침에 테라스에 않아 있다가 지나가는 임신한 길고양이를 보고 갑자기 넬리아 가정이 생각나 괜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니 먹고 살 것도 없으면서 왜 애는 그렇게 많이 낳는 거야!'

남편도 없는 젊은 여자가 아무 남자한테나 아이가 생겨 벌써 열한 번째 아이를 낳고, 자식 먹여 살리느라 바빠 지난번엔 해산 후 다음날도 바로 일터로 나가지 않았던가!

비가 줄줄 새는 지붕도 고치고 쌀도 좀 사라고 금일봉을 주었더니 남은 돈으로 베니어판을 사다가 좁은 공간을 나눠 방을 만들었더군요. 아마 새 남자와 지낼 방인가봅니다.

오랜만에 갔더니 그렇게 함께 지내던 술주정뱅이도 지가 만든 아이가 두 살도 되기 전에 떠나가고, 어미는 돈 벌러 나가고 어린것들이 아기를 돌보며 집을 지키고 있었지요. 짐꾼을 데리고 가져간 쌀 30kg과 과자로 아이들을 위로하고 잠시 놀아주고 왔던 기억이, 임신한 길고양이를 쳐다보자마자 갑자기 나의 뇌리에 오버랩 되어 화를 돋우게 된 것입니다.

이 녀석 역시 집도 없고 주인도 없는 주제에 배는 남산만큼 불러서 배가 고프다고 울고 다니니 차마 그냥 볼 수가 있어야지요. 수놈은 아주 무책임합니다. 한 달 전 내가 보는 앞에서 봉고차 밑에서 임신만 시켜 놓고, 자기 본능만 충족시키고 나선 설래 설래 돌아다니더니 요사인 나타나지도 않아요. 출산을 할 때가 다 된 암고양이가 힘이 없어 사냥이나 동냥도 못하고 쩔쩔매는데 수놈은 전혀 상관하지 않아요. 만일 새끼를 낳으면 어떻게 요기를 하고, 어떻게 새끼에게 젖을 먹여야 할지 내가 걱정인데 수놈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요!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유지하는데 암컷의 공은 참으로 지대합니다. 모든 수컷들은 창조의 대행자인 암컷에게 항상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어요.

처음엔 타일러도 봤지요.

"난 새끼를 받아 본 경험도 없고, 그리고 너를 키울만한 공간도 없고, 얼마 안 있으면 연회가 있어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만 의지하다간 굶어 죽는 수가 있어. 그러니 야생성을 버리지 말고 사냥을 좀 해봐! 아니면, 어디 다른 부잣집을 좀 찾아보든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내 말을 듣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아무리 찾아 봐도 마땅한 데가 없는가 봐요.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찾아와 배고프다고 울어 댑니다. 놈이 안타까워 고양이 사료를 사러 가보니 내 형편으론 너무 비싸요. 그래도 그냥 올 수 없어 한 봉지 사와서 아무것도 줄 것이 없을 때만 조금씩 아껴 줍니다. 누구한테 물어 보니 생선 싼 것을 사다가 쌀과 함께 삶아 주면 그게 돈이 덜 든다 해서 그것도 시도하고 있는 중이구요. 그런데 먹이보다 시급한 것은 그 녀석이 새기 낳을 집을 마련하는 겁니다. 며칠 전부터 무엇으로 집을 만들까 궁리하다가. "구하라,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기도하며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뭐 고양이 집이 될 만한 게 없을까 하고 마을주변에 찾아다니다가, 우리 집 옆에 얼마 전에 이사 가고 비어 있는 집에 뭔가 쓸 만한 게 있을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니 버린 짐들 중에 녹슨 큰 새장이 하나 보여요. 얼른 가져와서 세척을 하고 고양이 집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기도하기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더니 기도하고 난 후 그게 보였어요. 새로 생겨난 게 아니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안보였던 게 보이게 된 것이지요.

열심히 철사로 조이고, 박스를 뜯어 바닥을 꾸미고, 오물처리 부분을 깨끗이 세척하는 등 고양이 집을 꾸미다가 내 엄지손가락을 다치기도 하며 근사하게 집을 꾸몄지요. 그런데 이놈이 낯설고 무서운지 들어가려 하질 않아 비싸게 사 온 사료를 한 줌 넣어 주고 달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