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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잃은 소금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아모스 2장6절~15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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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2월 16일 (일) 20:28:08
최종편집 : 2020년 02월 16일 (일) 20:28:40 [조회수 :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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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잃은 소금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아모스 2장6절~15절

 

 

북이스라엘의 죄와 벌

① (6절a)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죄짓는데 전혀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한마디로 ‘맛을 잃은 소금’이었다. 이스라엘의 죄악의 핵심은 ‘이웃’, 곧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죄‘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신앙의 생활화’를 실천하지 않았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살인, 도적질, 강도와 같은 크고 눈에 띄는 죄가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것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다.

 

② (6절b)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타락상을 고발한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은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롯 유다처럼 ‘먼저 그의 나라가’ 아니라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했다. 옳고 그름보다 이익이냐 손해냐를 먼저 생각하는 풍조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처럼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축복, 미래적 가치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채우기에 급급한했다.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것이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며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③ (7절a)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는 작은 자, 약한 자, 병든 자 등 사회적인 약자를 통칭한다. 사회적인 약자들의 살 길을 가로막는 행위를 가리킨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풍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의한 골목상권 위협하고 대형교회가 작은 교회들의 교인을 가로채는 수평이동현상이다.

 

 

2.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신앙생활

 

① (7절b)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 사회적인 타락은 종교적인 타락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타락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롬2:24)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 종교적인 타락상을 세 가지로 기록한다.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메시지성경) ‘형이고 아우고 할 것 없이 다들 신성한 매춘부와 동침하며‘ (호4:14)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희생 제사를 드리면서 신전창기와 즐기는 행위다.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세상적인 재미도 즐기는 행위다. (자기부인 VS 자기과시, 자기만족, 자아실현) 교회가 선교의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본래적인 목적을 상실한 채 세속적인 공간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 교회의 본래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다. 복음으로 진검 승부를 해야지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② (8절a)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예배를 안 드린 게 아니다. 예배를 드렸지만 본래적인 정신을 훼손한 채 잘못 드린 것이다. (말1:8~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도다’ 예배의 타락, 헛된 제사와 눈먼 희생이다.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메시지성경) ‘그들이 가난한 이들로부터 강탈한 물건이 신의 신당에 수북히 쌓여 있다’ 제물을 안 드린 게 아니라 ‘강탈한 물건’(더러운 제물)을 드렸다.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처럼 종교적인 명목으로 착취하고 착복을 일삼았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렸다.

 

③ (8절b)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라’ (메시지성경) ‘그들은 그곳에 둘러 앉아 사기 쳐 빼앗은 포도주를 들이 킨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벌어진 장소는 ‘저희 신의 전’ 곧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세운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벌어진 일이다. ‘전제(포도주)’는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것인데 중세로마카톨릭이 저지른 면죄부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정축제를 저질렀다. 엘리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가 저지른 죄악이다. (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어떻게 하나님의 전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멸시했기 때문이다.

 

 

3. 세 가지 큰 죄

 

① (9절~10절)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 앞서 언급한 사회적인 부패와 종교적인 타락이 열매라면 그런 열매를 맺게 한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고발한다. 가나안 땅의 본래주인은 아모리 족속(헷 족속), 10명의 정탐꾼이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했던 크고 장대한 아낙자손들을 가리킨다. 아모스는 약속의 땅에 들어오던 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아모리 족속을 몰아내시고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것이다. 주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망각’과 나의 공로라고 여기는 ‘착각’이었다. (신8:17~20)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② (11절~12절)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선지자와 나실인)

▶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의 뿌리는 선지자를 멸시하여 그 말에 청종치 않은 죄악이다. 아모스 3장7절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을 특별하게 선택해서 삶의 모범(모델)로 세우셨다. ‘나실인’은 머리에 삯도, 시체와 접촉 불가, 포도주와 독주금지다.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일반인들에게 음주자체가 죄악은 아니다. 경건생활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호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자기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놀부 심보다. 자기만 망가지만 되는데 다른 사람도 망가지게 한다.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였다. 심지어 독생자까지, 왜 그랬을까. 죄의 본질은 자기 멋대로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다.

 

③ (13절)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 이스라엘의 죄악은 ‘과욕’이다. ‘용량을 초과하여 짐을 실은 마차처럼’ 지나친 과욕으로 저지르는 죄악이다.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과적을 감추기 위한 평형수 제거로 인한 복원력 상실이다. 안정성보다 경제성을 추구한 결과다. 한마디로 지나친 과욕이 부른 재앙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역시 과욕으로 인한 자업자득이다. 개인의 삶에서는 ‘과로’(over work, 過勞)다. (출31: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안식일의 정신은 ‘노예 같은 삶에 쉼을 허하라’ 쉬지 않고 일하면 생산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결국 죽음에 이른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주신 날이다.

 

④ (14절~16절) “빨리 달음박질 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 매에 장사가 없듯이 피로에도 장사가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스라엘의 멸망은 과욕(지나친 탐욕)으로 인한 자업자득이다.(욕심-죄-죽음 VS 말씀-의-생명) ‘달음질, 강한 자, 용사’ 건강과 젊음, 재력과 재능을 의지하며 난 괜찮아 자부하는 그 누구도, ‘욕심-죄-죽음’으로 이어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활을 가진 자, 발이 빠른 자, 말 타는 자, 용사 중에 굳센 자’ 제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량을 펼쳐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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