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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의 교회개혁 실패 (3)
박효원  |  hyo1956@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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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2월 07일 (금) 02:21:46 [조회수 : 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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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자신은 경건했다. 그러나 성격이 불 같아서, 자신의 개혁을 반대하는 자와 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자비가 없었다.

차르(황제)는 교회 개혁을 시작한 장본인이었건만, 개혁의 실패를 예견하자 니콘에게 혐의를 씌웠다. 니콘이 대주권자(the Great Sovereign) 칭호를 사용함이 합당한지, 차르가 모스크바에 없을 때 무슨 행동을 했는지 들춰냈다. 교회 개혁을 위해서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던 그리스인들도 니콘에게 등돌리고 차르에게 붙었다.

1666년 니콘은 주교회의에서 파문됐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북으로 600킬로미터 떨어진 호숫가(Lake Beloye) 벨로제르스크(Belozersk) 수도원으로 추방됐다. 십 년 후 알렉세이 1세(Alex of Moscow, 1629-1676)가 죽고, 그의 아들 표도르 3세(Feodor III of Russia, 1661-1682)가 뒤를 이었다. 니콘은 어린 차르의 부름을 받고 모스크바로 가던 중 객사했다.

니콘과 개혁 지지자들은 러시아 사회의 변동을 자각하지 못했다. 사회는 급격히 변하는데, 교회 의식을 고치는 데만 집중했다. 교회를 개혁하면 힘이 생길 것이라 희망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문제가 그릇된 교회의 의식에 있었을까? 문제는 교회 지도자들의 기득권과 부유함에 있었다. 변화무쌍한 21세기가 스무 해를 넘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배부른 우리 교회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지배층과 민중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개혁하고,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해결하지 못하자, 풀지 못한 문제들은 오랜 기간 러시아인 의식에 뿌리를 내렸다.

이반 4세(뇌제)에서 비롯된 차르의 무자비한 통치와 니콘의 교회 개혁 실패가 러시아인의 성격을 형성했다고, 모두 환원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연결되는 점은 있다. 러시아인에게는 자기 것과 남의 것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러시아 역사에서 비롯된 이 특성은 오랜 세월 극복되지 않는 앙금과도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러시아에도 개혁과 혁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위에서 한 것들이다. 아래는 잠잠했고 피동적이었다. 세계를 흔들었던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뒤집었다고 보는 것은 겉만 보는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은 플로레타리아트(무산계급)가 아래에서 일으킨 혁명이 아니라 공산당원들이 위에서 일으킨 혁명이다.

러시아 사회가 혼란하면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 나라는 강력한 자가 통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 지배자와 민중이 하나되는 일은 없다. 거기에는 ‘위에서 밀어붙이는 개혁’과 ‘아래에서 느끼는 공포’가 한 다발로 묶여 있다. 사람들이 공포에서 벗어나 생존하려면 한 가지, 남의 것과 내 것을 철저하게 갈라 놓아야 한다.

러시아인을 북극곰이나 불곰에 비유하는 것은 맞지 않다. 러시아인만큼 예절을 잘 지키는 사람도 없다. 공연장에 가면 모두 한껏 멋을 내고 예의를 지킨다. 어떤 잔치든 순배를 들며 차례로 멋진 말을 나눈다. 음률을 살려 시를 읊고, 단조로 된 러시아 노래를 구성지게 합창한다. 식사 후 함께 추는 춤도 빠지지 않는다. 공산주의 시절 유행했던 ‘따바리쉬’(동지) 호칭마저 정겹다.

공공교통인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조용하고 예의가 넘친다. 연장자, 여자, 아이들에게 자리를 늘 양보한다. 연장자도 서 있기 힘들지언정 눈에 불을 켜고 자리를 찾지 않는다. 남을 무시하고 함부로 앉지도 않는다. 이런 예절이 설사 공산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훌륭하고 멋지다. 예절이란 본래 만들어지는 것 아니던가?

그러나 밀폐된 자기 공간에서는 전혀 다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러시아인은 자기 밖에 모른다. 다같이 일정하게 차를 몰아야 흐름이 빨라질 텐데도 내 차만 우선이다. 자연히 체증이 심하고 접촉 사고가 많다.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면 보통 두세 건씩 사고를 목격한다.

허름해 보이는 아파트가, 내부도 허름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겉보기에 낡은 아파트지만 실내는 잘 꾸며놓는다. 아파트 바깥은 남의 것이지만 안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은 있어도 아파트 자치회는 없다. 공공의 일은 통치자가 할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공공 의식이 희박할 수 밖에 없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잘 도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뚝뚝하게 선을 긋는다. 나는 이런 태도가 생존을 위한 것임을 아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 총대주교인 키릴(Patriarch Kirill of Moscow and all Rus)은 2009년 선출됐다. 그는 현재 대통령과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총대주교 키릴과 대통령 푸틴의 관계는 17세기 니콘과 알렉세이 1세의 관계와 비슷하다. 차르가 대통령으로 바뀐 것뿐이다.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하고, 군대 사열을 받고, 대통령을 교회로 불러 축복을 내린다. 그는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제네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러시아 정교회 대표였다.

키릴이 본받으려는 모델은 니콘이다. 그가 총대주교좌에 오르고 곧 착수한 것이 ‘새 예루살렘 수도원’(또는 ‘부활 수도원’) 수리였다. 모스크바에서 70킬로미터 북서쪽 이스트라(Istra) 강가에 있는 이 수도원은, 총대주교 니콘이 1656년에 세웠다. 이곳은 성지(Holy Land)로 선택된 곳이다. 이스트라 강은 요단 강을 상징한다.

니콘은 이 수도원을 러시아인이 아닌 수도사들로 채웠다. 이곳이 세상 모든 정교회의 중심임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키릴이 총대주교가 되고서, 가장 먼저 ‘새 예루살렘 수도원’을 복원하고 수리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정부의 협조와 재정지원으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2005년 인터뷰에서 키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교회 국가는 대대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다. 유스티누스 법에는 그것을 ‘조화로운 짜임’(symphony)으로 명시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선물로, 사람들을 돌보는 동등한 두 기관이다.”

키릴은 현재 러시아 국가와 정교회의 관계가, 비잔틴 시절처럼 ‘심포니’에 가까워진 것으로 본다. 국가와 교회가 조화롭게 짜인 ‘심포니’는 18세기 피터 대제 때 깨졌다. 공산주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 통치자에 이르러 바른 관계로 회복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후 계속 제기된 문제는 ‘러시아의 선택’이다. 이것은 ‘러시아가 어떤 체제로 가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는 러시아 500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니콘의 교회 개혁 실패로 생긴 교회 분열과 사회 갈등,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심한 균열, 서구 사상과 반서구화 사상 즉 슬라브(러시아) 사상의 충돌, 공산주의가 끝난 후의 혼란 등.

이 물음과 논쟁은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지식인들은 논쟁했는데 민중은 어땠을까? 잠잠했다. 지금도 잠잠하다. 민중은 지배계층과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푸틴의 체제에서 ‘러시아 선택’의 답은 나온 것 같다. 그것은 17세기에 실패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권력자 입장에서는 정교회를 매개로 권력을 강화할 것이고, 정교회 입장에서는 국가를 통치하는 또 다른 힘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국가와 동등한 힘을 가진 교회’ 말이다. 교회와 권력자가 함께 러시아 국가를 통치하는 해와 달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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