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김명섭 목사의 말씀학교
“한국교회를 향한 아모스의 절규” 아모스 1장 1절~15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2월 02일 (일) 16:08:22
최종편집 : 2020년 02월 04일 (화) 17:33:39 [조회수 : 43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한국교회를 향한 아모스의 절규” 아모스 1장 1절~15절

 

 

1.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① (1절-a)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 아모스가 전하는 메시지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모스가 예언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전이해가 요구된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웃시야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대하26:15~16) ‘또 예루살렘에서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웃시야의 시대는 남유다가 가장 강성한 시대였다. 강성한 이유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 때문이었다. 웃시아 왕은 나라를 강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악을 행했다. 아모스의 예언이 선포된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던 시대를 향해 잘 나갈 때 조심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10:12)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② (1절-b) “곧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왕하 14:26~27)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13대왕,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동명이인이다. 여로보암 2세 때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고 부국강병으로 41년간 태평성대를 누렸다. 물질적으로 풍요했지만 영적으로는 타락했고 부정부패, 강포와 불법이 가득했던 시대였다. 실패와 고난을 시험이라고 생각하는데 몰라서 하는 소리다. 진짜 시험은 성공과 번영이 계속되고 승승장구하는 때다. 실패와 고난으로 시험에 드는 사람이 열에 하나라면, 열에 아홉은 번영과 성공으로 인해 시험에 빠진다.

 

③ (1절-c) “지진 전 이년에”

▶ (슥14: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스가랴 선지자에 따르면 웃시야 때에 큰 지진이 있었다. (대하26:4~5)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두 말씀을 연결해보면 웃시야 왕은 초창기에는 잘 하다가 말년에 ‘교만’해져서 넘어졌다. 솔로몬처럼 부와 영광을 누리고도 말년에 명예욕으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목회자들, 물욕으로 부끄러운 말년을 보내는 신앙인들이 많다. 믿음의 경주는 마라톤과 같다. 용두사미와 같은 신앙이 아닌 끝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한다.

 

 

2.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① (1절-d) “드고아의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 ‘드고아’는 남유다에 속한 지역이다. 한마디로 아모스는 남유다 사람이다. 남유다 사람이 남의 나라인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모스의 이름의 뜻은 ‘짐을 지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남의 짐을 대신지고 가는 사람’이다. 내 몸 하나 가누기 힘든 현실에서 남의 짐까지 지고 가기란 참으로 부담스럽고 고단한 일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다. 대속의 본질은 타인을 위한 섬김과 남을 위한 헌신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간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기적인 무사안일의 신앙생활이 만연한다. 남이야 어찌 되건 말건 내 안위만, 내 가족만, 내 교회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섬김을 외면하고 희생을 회피하는 ‘부담 없는’ 신앙생활을 추구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이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 열매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근본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교회도 많고, 목사도 많고, 교인도 많지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다.

 

② “드고아의 목자 중 아모스가”

▶ 아모스의 직업은 ‘양을 치던 목자’다. ‘목자경험이 없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유대격언처럼 위대한 영도자 모세와 성군 다윗도 목자출신이었다.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고백한다. 목자출신이라는 말은 제사장(레위인)과 같은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이름 없고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왕이나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일하시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민22:21)하나님은 나귀를 통해서도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③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 남유다 출신의 이름 없는 평민이었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예언할 때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남의 상에 감 놔라 배 놔라’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조롱하며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배척했을 것이다. 오지랖이 넓고 주제 넘는 내정간섭이라 여겼을 것이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언자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였다. 영화의 대사처럼 ‘너나 잘 하세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나부터 잘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나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마치 도미노현상처럼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면 다음은 남유다 차례다. 전 지구적으로 넓게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구체적인 실천을 감당하는 지혜가 요구된다.(Think Globally, Act Locally-Patrick Geddes) 윤동주의 통찰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위해 힘써야 한다. 서로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만이 아니다. 타인은 나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영광도 부끄러움도 함께 받는 공동운명체다. 가정, 교회, 국가, 온 인류는 ‘한 몸’이다. 시내가 마르면 큰 강물도 흐르지 못하듯이 지방의 작은 교회들이 사라지면 대도시의 대형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 이웃이 나와의 공생관계임을 자각하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3. 나는 너를 모른다

 

① (2절)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 아모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의 대상을 ‘시온’과 ‘갈멜산’이라고 분명하게 적시한다. 시온은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남유다를, 갈멜산은 사마리아로 대표되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거룩한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시온과 엘리야에게 임재하신 성지인 갈멜산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외적인 직분이나 신앙연수, 형식적인 몇 가지 율법준수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형식적인 신앙행위에 안주하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준행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의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있다.

 

②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 아모스가 전하는 메시지의 대상은 북이스라엘인데, 특이한 점은1장3절에서 2장3절까지 여섯 족속(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주변나라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기록하고, 이어서 2장 4절~5절에서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2장 6절부터 마지막 9장까지 본격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한다. <주변나라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먼저 전하고 이어서 이스라엘을 심판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민의식에 빠져서 안주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주변 나라,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족속들의 멸망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택하신 선민인 이스라엘(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왕성할 것이라는 무사안일에 빠져있었다. 이방나라의 재앙과 멸망은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런 것’이라고 정죄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안전할 것으로 착각했다.

 

③ (6절,9절,11절,13절,2장1절,4절,6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한두 가지가 아니라 많은 죄를 뜻하는 관용적인 문구다. 한마디로 ‘죄악이 관영’하여 헤아릴 수 없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동일한 구절을 반복하는 데, 여기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하나님을 아는 선민 이스라엘이나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뜻이다.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죄악이 관영한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선민 이스라엘이나 차별 없이 동일하게 심판하신다. ‘몰라서 안 믿는 것’보다 ‘알고도 잘못 믿는 것’이 더 심각한 죄다. 모르고 저지른 죄보다 알고도 저지른 죄가 더 크다.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