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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명성가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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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31일 (금) 19:12:36
최종편집 : 2020년 01월 31일 (금) 19:15:49 [조회수 : 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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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방을 방문할 일이 있으면 그 지역의 오래된 음식점이나 빵집, 그리고 기독교 백화점을 찾아갑니다. 제 경험상 그 지역의 가장 중심지로 가서 한 두 번 물어 보면 오래된 건물 2~3층에서 과거 이 땅에서 기독교가 누렸던 영광의 흔적처럼 남아 있는 기독교 백화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운이 좋으면 절판되었거나 오래된 찬양 악보를 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늘 저의 위시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악보는 80년대 초반 기독교음악사에서 출판된 ‘교회합창’시리즈입니다. 그 시절 한번쯤 성가대에 몸담으셨던 분이라면 가죽을 흉내 낸 표지에 다소 작았던 그 성가 합창곡집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시리즈 별로 색이 조금씩 달랐었지요. 그 안에는 아담스의 ‘거룩한 성’, 김두완의 ‘본향을 향하네’, 나운영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에반스의 ‘축복’ 등 고전적이고 무게감이 있는 명성가들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 명성가라고 칭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교회와 교회음악의 전통에 기반 하여 만들어 지고 오랜 기간 동안 교회에서 사랑 받으며 그 작품성을 검증 받은 성가곡들을 명성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이제는 절판 되어 인터넷은 물론이고 웬만한 서점이나 기독교 백화점에서는 그 책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 아쉬운 것은 그 악보집에 실렸던 주옥같은 명성가들을 교회에서도 듣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요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명성가보다 몇몇 교회음악 전문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내고 있는 최신 성가들을 부릅니다. 시대의 흐름이라 어쩔 수 없는 건지는 몰라도 여러 모로 아쉬운 마음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최신성가들은 미국 교회음악가들이 작곡한 곡들의 판권을 사서 번안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출판사들은 물론이고 교회음악가들과 외국에서 공부한 합창 지휘자들도 한국적인 영성이 담긴 ‘새노래’(시편 96편)나 이 시대의 명성가를 남기려는 노력보다는 서로 경쟁하듯 판권 확보와 번안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몇 주 전 소개 드렸던 송경민의 ‘주의 은혜라’와 같이 예외적으로 좋은 신작 성가합창곡도 있고 요즘 들어 한국 작곡가들의 새로운 곡도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음악적 스타일이 미국교회의 그것과 거의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듣기 편하고 세련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씀 드려 이런 곡들이 나중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명성가가 되어 다음세대 교회 가운데 기억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치 끊임없이 발표되어 나오지만 그 곡이 다 그 곡 같은 아이돌 음악 같다고나 할까요? 이른 나이에 이렇게 꼰대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건가 두렵긴 하지만 고전과 전통에 대한 리스펙트 없이는 진정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예술사가 이야기 하고 있음을 알기에 감히 주제넘은 쓴 소리를 해 봅니다.

사실 지휘자의 가장 큰 능력은 지휘 테크닉이 아니라 레퍼토리입니다. 얼마나 많은 곡을 알고 있으며 그 곡들을 얼마나 깊이 있게 소화하고 있느냐가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지요. 그런 면에서 지휘자에게 가장 골치 아픈 일이 매 주일의 곡선정입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알아서 편집을 해서 묶어 주니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곡 선정 다음으로 중요한 지휘자의 능력이 리허설 테크닉입니다. 한정된 짧은 연습 시간에 매 주일마다 새로운 곡을 올려야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출판된 악보는 저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악보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파트연습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어찌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성가를 연습하다 보니 악보를 보는 능력이 점점 퇴화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인하여 점점 교회 안에서 명성가들은 사라지고 마치 케이팝이 세계를 사로잡듯이 미국 현대 성가곡들이 한국교회의 성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명성가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 받아 온 곡들로 여러 번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습니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지요. 시대의 흐름을 억지로 거스를 순 없지만 바라건대, 교회 성가대를 통해서 곡 별로 1~2년에 한번은 명성가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이천시내에 있는 오래된 기독교 백화점을 찾아갔습니다. 역시나 시내 중심부 오래된 건물 2층에 자리고 있었습니다. 점점 기독교백화점이 사라지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평일 낮임에도 손님들이 꽤 많았습니다. 마치 초교파적 기독교 사랑방에 온 것만 같았습니다. 다행이다 싶습니다. 인터넷 쇼핑이 점령한 요즘 세상에 이렇게 버텨 주고 있어서 고맙게까지 느껴졌습니다. 1985년경에 시작한 아버지 한장로님의 가업을 이어 받아 둘째 아들 한권사님이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그곳에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한쪽 구석에 가로로 쌓여있는 책 더미 가운데서 30년이 훌쩍 넘은 명성가집 3종을 발견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격도 오래전에 책정된 것이라서 지금 물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렴했음에도 권사님은 어차피 찾는 사람이 없다며 또 한 번 에누리를 떼어 주셨습니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아버님 한장로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은퇴하신지가 한참 되셨음에도 가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직도 때마다 나오신다고 합니다. 마치 오랜 노포집의 장인처럼 인자함과 뚝심이 묻어나는 모습에 공손한 인사가 우러나왔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악보를 폅니다. 문득 그 찬양이 제일 먼저 궁금합니다. 499페이지...두껍기도 참 두꺼운 책입니다.

악보에서 음표들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만 같습니다. 피아노 악보인데도 오케스트라 반주가 들립니다. 터벅터벅 거리는 전주에 휑하니 바람소리마저 들리는 듯합니다. 전주가 끝나고 잠시 이어진 적막을 뚫고 베이스의 유니즌 소리가 먼저 들립니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을’ ... 이어서 그 모습을 애타는 마음으로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듯, 남녀 무리들이 이어 부릅니다. ‘지나는 순례자’ ...
 
김두완 작곡의 ‘본향을 향하네’입니다. 이 정도의 명곡이면 미학적인 평가의 단계를 넘어서 우리의 영성을 담은 명성가로서 우리 가운데 있어줘서 ‘고맙다’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Du holde Kunst, ich danke dir dafür!
고귀한 예술이여, 그대에게 감사를!
-슈베르트의 ‘An die Musik 中’

*음악듣기 : 본향을 향하네, 김두완 작곡  https://youtu.be/ZBNUBFpGp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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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20-02-01 08:43:08
악보를 보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있고, 악보보다는 본능에 의지해 노래 잘 부르는 사람도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소문이 있는데, 악보를 전혀 못 보는 것은 아니고 初見(악보를 보고 처음부터 바로 부르거나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최고음을 내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잘 불렀던 것은 본능적으로 음악을 맛있게 부를 수 있도록 선생에게 교육받은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건 그의 음악 스승이었던 에토레 캄포갈리아니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악보를 보지 못하게 하고 피아노 소리를 듣고 감정대로 부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파바로티는 익숙한 오페라는 기막히게 잘 불렀지만 현대 오페라는 부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미넬라 프레니 역시 에토레 캄포갈리아니로부터 음악을 배웠는데 파바로티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미넬라 프레니의 남편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는데, 자신의 아내가 악보를 볼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녀에게 악보를 배우게 하기위해 피아노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녀가 악보에 치중을 해서 노래를 못 부르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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