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Patriarch Nikon, 1605-1681, 재위 1652-1666)은 모스크바로 그리스 학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러시아 교회 의식을 그리스식으로 고쳤다는 것들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플 교회 의식의 원본은 없거나, 있더라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니콘이 고쳤다는 교회 의식은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충격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심각한 것들이 아니었다.

예수의 이름을 이수스(Isus)에서 이이수스(Iisus)로 바꾸기, 두 번 부르던 알릴루이야(Alliluia)를 세 번 부르기, 성찬식 빵을 7개에서 5개로 줄이기, 세운 인지와 접은 중지로 성호를 그리지 않고, 엄지와 인지와 중지를 모아서 삼위일체를 나타내며 성호 그리기 등이었다.

1654년과 1656년 니콘은 주교회의를 열고 개혁을 더욱 밀어붙였다. 기도에 사용하던 ‘하나님 아버지’를 콘스탄티노플 교회 의식을 따라 ‘하나님’으로 부르게 했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중 ‘진실되고 생명을 주시는 분’을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고쳤다. 뾰족한 교회의 지붕을 허물고 비잔틴 돔(Dom) 양식을 따라 새로 짓게 했고, 이콘(Icon)을 콘스탄티노플 식으로 그리게 했다. 과거 콘스탄티노플 정교회가 원형이고 바른 것이므로, 러시아 교회의 의식을 모두 고쳐야 한다는 믿음이 가져온 결과였다.

당시 러시아 성직자들은 교육을 잘 받지 못했으므로 그리스식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총대주교가 러시아 전통 의식을 부정하자 러시아인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들어온 못된 서유럽 신학 때문이라고 여겼다.

니콘의 개혁이 슬라브(러시아) 전통을 훼손한다고 여긴 러시아인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사제장 아바쿰(하박국, Archpriest Avvakum Petrovich, 1620-1682)을 비롯한 성직자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변질된 신앙과 이교적인 의식 때문에 벌을 받아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저주 받은 콘스탄티노플 교회로 돌아가란 말인가?” 이들은 교회 의식을 고치라는 총대주교의 명령을 거부했다. 성직자들도 니콘의 개혁을 지지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로 갈렸다.

개혁은 신앙의 변절이라는 비난이 거센데도, 니콘은 뜻을 굽히기는커녕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압박했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들을 파문하고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개혁을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불어나기만 했다.

니콘은 핀란드 농민 출신이었다. 혼인하고 사제가 됐는데, 세 자녀가 죽자 1634년부터 12년을 참회하며 수도원에서 은둔했다. 차르(황제) 알렉세이 1세(Alex of Moscow, 1629-1676)는 니콘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652년 알렉세이 1세는 니콘에게 총대주교직을 수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니콘은, 차르가 자신을 신앙의 아버지로 섬기고 교회 개혁을 지지한다는 조건으로 총대주교직을 수락했다. 니콘은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1658년 총대주교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니콘은 황제와 함께 러시아를 통치했다. 니콘은 대주권자(the Great Sovereign)로 불렸고, 모든 문서와 편지에 이 명칭을 사용했다. 1657년 차르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싸우러 전장에 나갔을 때 니콘은 모스크바에 남아서 나라를 다스릴 정도였다. 총대주교와 차르는 해와 달로 비유됐다.

그러나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된 알렉세이 1세는 차르 위에서 큰 영향을 행사하는 니콘이 못마땅했다. 함께 추진한 개혁이었지만, 니콘의 권위가 자신의 권위를 압도한다고 여겼다.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너무 커지자, 알렉세이 1세는 니콘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였다.

차르와 총대주교의 사이는 멀어졌다. 니콘은 실망했다. 1658년 그는 총대주교직을 내려놓고 수도원에 칩거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총대주교가 없는 상황에 교회는 혼란스러워지고, 동란이 다시 일어날 조짐에 러시아 사회는 어수선했다.

1666년에 이르러서야 차르는 모스크바 주교회의를 열었다. 공의회에 버금가는 주교회의였다.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시리아 안디옥 총대주교가 회의에 참석했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과 예루살렘에서 총대주교를 대신한 주교들이 참석했다. 회의에 모인 동방 정교회 주교들은 니콘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결정했으면서도, 니콘을 총대주교에서 폐위시켰다. 차르의 뜻이었다.

차르 알렉세이 1세와 총대주교 니콘의 관계가 멀어지자, 개혁 반대자들은 분리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차르의 심한 박해가 다시 시작됐다. 처형되거나 추방되면서도 이들은 끝까지 반대했다. 개혁도 주교회의의 결정도 모두 악마의 행위라고 저주했다. 그리고 이전에 행하던 러시아 전통과 의식을 스스로 지키기로 결의했다.

개혁 반대자들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조차 인정하지 않고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차르의 박해를 피해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의 숲이나 북쪽 추운 지역의 숲으로 피신해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나라 밖으로 피신한 자들도 있었다.

차르는 집요했다. 군사를 보내 이들을 찾아내서 화형시켰다. 이들은 기꺼이 화형을 받아들였다. 스무 해 동안 2만 명이 화형을 당했거나 스스로 불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농민들도 개혁 반대자들에게 동조했다. 분리 운동을 차르와 농노제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옛 러시아 의식을 고집하고 옛 신앙을 옹호한다고 해서, 이들은 ‘스타로오브랴트체스트보’(구교도, Old Believers)라고 불렸다. 정부는 이들의 분열을 라스콜(Raskol)이라고 했고, 이들을 ‘분리파’라는 뜻으로 ‘라스콜니키’(Raskolniki)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라스콜니키’는 저주와 박해의 대명사가 됐다.

저항의 상징은 사제장 아바쿰이었다. 아바쿰은 처음부터 니콘의 개혁을 반대하다가 여러 번 투옥됐다. 그리고 시베리아로 쫓겨났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1666년 알렉세이 1세가 모스크바에서 소집한 주교회의에 참석했지만, 이어진 박해로 멀리 북극해안(Pustozyorsk)으로 귀형갔다가 1682년 거기서 화형 당해 죽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작품을 이해하려면 분리파 ‘라스콜니키’를 알아야 한다. 19세기 슬라브주의자들은 ‘라스콜니키’를 작품에 불러냈다. 분리파에 대한 박해가 러시아 정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철회된 것은 1971년 모스크바 주교회의에서였다.

구교도, 즉 분리파의 저항은 종말 신앙과 연결된다. 동란이 잦고 사회가 극도로 불안하면 이런 신앙이 자라기 마련이다. 이들을 불 속으로 뛰어들게 한 것도 종말에 대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왕국은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다. 동로마제국이 그랬다. 지금 총대주교가 있는 나라들 중에서 황제가 있는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 모스크바는 ‘제3 로마’이며 거룩한 마지막 신정왕국이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 황제는 러시아 정교회의 ‘보호자’가 아니다. 왕국이 위태롭다. ‘제4 로마’는 없다. 종말이 가까이 왔다.

러시아에서는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이 없었다.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기 시작한 서유럽과 다르게, 17세기 러시아는 종교에 편향된 사회였다. 그러나 러시아에도 국가(차르)와 종교(총대주교) 사이에 긴장이 있었다. 차르와 총대주교 모두 교회 개혁을 원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영토에 통합시키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종교인 로마 가톨릭에 맞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구한 목표는 달랐다. 차르 알렉세이 1세는 ‘제3 로마’인 신정왕국의 황제가 되려고 했다. 모스크바의 황제는 러시아 정교회뿐 아니라 모든 정교회의 황제로 군림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교회 의식을 그리스식으로 통일해야 했다.

총대주교 니콘은 다르게 생각했다. 모든 정교회, 특히 우크라이나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교회 의식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회를 개혁하면, 교회가 차르의 권력에서 독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총대주교가 차르의 위에 서면 교회의 위상도 커질 수 있을 것이었다.

총대주교 니콘은, 모스크바가 ‘제3 로마’라는 종말론적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제3 로마’에서는 황제가 유일한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차르는 교회를 개혁해서 차르 중심으로 권력을 강화하려고 했고, 총대주교는 교회를 개혁해서 교회를 차르의 권력에서 독립시키려고 했다.

교회와 사회는 어땠는가? 동란이 일어나고 사회가 불안했던 시대에 정교회는 와해된 상태였다. 교회 지도자는 교회 의식을 개혁해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현실 외면이었다. 교회 개혁은 압제와 동란으로 힘든 삶을 사는 민중에게 물어야 했다. 황제 주변에 있는 성직자들이 이미 민중과 떨어져 부유함을 누리는 판에, 교회의 의식을 바꾼다고 사람들이 따라오겠는가? 분열이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예나 제나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