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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등급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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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30일 (목) 00:19:02 [조회수 : 4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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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는 5등급에 속한다. 2004년 식의 경유차니 요즘 서울이나 수도권 입장에서 보면 불량차량임에 틀림없다. 겉도 멀쩡 속도 멀쩡하니 시동만 켜면 잘 굴러가는 차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책에 따라 죄인 딱지가 붙게 된 차가 되었다. 게다가 내 차의 색이 붉은 색이니 미세먼지의 주범이 되는 주홍글씨를 폐차 직전까지는 붙이고 다니는 꼴이 된 셈이다.

내 차가 5등급인지 누가 알겠냐마는 그래도 알 만한 사람은 눈치를 챌 수 있다. 그것은 차 모델이 구형이고 초록색 번호판을 달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차의 연식과 번호판 색과 주유 종류에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농촌에서 큰 차가 갖는 장점을 많이 부각하며 다녔다. 그런데 올해부터 졸지에 큰 차가 부담이 되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차에 대한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일까? 얼마 전 접촉 사고가 나는 꿈을 꿨다. 그 꿈 이후 차를 몰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 이웃에 사는 K 사모님을 일터까지 모셔다 드릴 일이 있었다. 일터까지 30여 분 걸리는 거리여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여 시속 80Km로 달렸다. 차가 여느 때와는 달리 드르륵드르륵 거리며 뭔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도중에 머릿속은 계속 소리의 진원을 찾으려 애썼다. 내가 애쓴들 알 턱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내가 아는 차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미션에 이상이 있나?” “타이어가 문제 있나?” “브레이크가 잘못 됐나?” 등등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무실로 들어와 몇 가지 일을 본 뒤 다시 K 사모님을 모시러 가려고 차 시동을 걸었다. 어라! 차 후진이 안된다. 차 아래에서 무언가가 차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묵직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살짝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예상을 하고 있었다지만 당장 차 없이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는 농촌 오지(?)에 사는 사람은 다 안다. 그나마 전진 주행은 되었기에 마을 공터까지 가서 억지로 차를 돌렸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가 사는 동네는 큰 길 도로까지 가려면 1킬로가 되는 경사길을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사용하면서 내려가야 한다. 이런 경사진 길에서 악셀을 밟지 않았는데 차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차! 싶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은 가장 위험한 순간, 죽음이 코앞에 다가올 때 자신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도 인생 전체가 다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 순간이 아니었나 보다. 아직 갈 때가 아니었는지 인생 파노라마는 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똥차게 순발력을 발휘하여 발은 풋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고, 손은 핸드 브레이크를 P에 놓으면서 시동을 껐다. 차는 전봇대 앞에서 섰다. 견인하여 카센타에 가니 다행히 브레이크만 손보면 되었다. 이참에 브레이크 이외 다른 여러 곳도 손을 봐 달라했다. 이리저리 살폈으나 생각보다 적은 수리비에 마음이 가뿐해졌다. 5등급 차량이나 아직은 탈 만하다는 카센타 주인의 말도 큰 위로가 됐다.

이번 위기는 오래전부터 예감된 일이었다. 달리는 도중 브레이크 제동거리가 길어 곧 수리를 받으러 가야지 했던 것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결국 이번 년 초에 사달이 난 것이다. 대부분 일어나는 일들이 비슷하다. 유비무환이라는 사자성어를 마음에 품고 다니지만 실행까지 가는 것은 매번 일이 터진 다음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지난해 오십 문턱에 서서 내 몸도 5등급이 되었다. 여름을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몸무게로 평소에 입었던 옷이 맞지 않을뿐더러 조금만 먹어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처음 경험하였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음식 조절도 하고, 그 좋아하는 저녁을 굶는 것으로 나름 꽤 애를 썼으나 어째 0.1킬로 줄이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평소 조금씩 움직였다면 쉬웠을 것을 꼭 몰아서 한꺼번에 하려니 이래저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좋은 경험이다. 비록 차는 5등급이어서 차를 바꾸지 않는 이상 등업을 할 수 없겠으나, 몸과 마음은 하루에 하나씩 혹은 평소에 조금씩 움직이면 5등급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올해는 등업을 하자는 결심이 섰다. 중간 어딘가에서 작심삼일의 넘어짐으로 멈춰 설 요량이 있지만 그때마다 몸과 마음을 다스려 유비무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줄이도록 해야 하겠다. 올해는 작심삼일의 고개를 넘어 볼까나. (20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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