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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 그날이 오면” 요엘 3장 9절~21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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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28일 (화) 06:09:43 [조회수 :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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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 그날이 오면” 요엘 3장 9절~21절

 

1. 심판의 날을 예비하라

 

① (9절~10절)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찌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찌어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찌어다”

▶ ‘너희는’ 압제당하고 있던 유다백성들, ‘너희는’ 약속의 땅을 침탈한 이방열강들을 각각 가리킨다. 유다백성들에게 열방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전포고’를 명하신다. 하나님과 열방의 최후의 결전을 선포한다. 엘리야 때처럼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를 겨루는 최후의 전쟁이다.

▶ ‘너희는 보습(쟁기)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 빨래방망이가 몽둥이가 되고 빗자루가 무서운 회초리로 변하듯이 보잘 것 없던 농기구가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의 도구가 된다. 양을 치던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과 같다. 인간이 쌓아올린 바벨탑인 핵발전소와 핵무기, 인간의 탐욕으로 고갈시킨 지구생태계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부메랑 같은 역습이 될 것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찌어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심판하시는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예고한다.

 

② (11절~12절)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찌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 열국들의 연합과 회합은 탐욕과 교만을 통한 이합집산을 가리킨다. 인간의 만용으로 하늘에 닿으려했던 바벨탑사건 때처럼 천군천사를 통해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암몬과 모압을 멸절시키신 것처럼 ‘주의 용사들’을 보내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대적들의 오만을 심판하신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대적해서 당할 자 누구랴, 죽음의 순간 물질과 업적, 명예와 권세도 아무 소용없다.

 

③ (13절)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찌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 ‘너희는’ 주의 용사들을 가리킨다. 천군과 천사들에게 내리신 심판의 명령이다. 추수할 곡식과 포도즙을 짜는 모습은 대표적인 심판의 상징이다. (계14:15~20)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추수할 곡식은 알곡과 가라지(의인과 악인, 경외하는 자와 무시하는 자)를 구별하신다. (렘25: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2.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

 

① (14절)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 ‘판결골짜기’는 하나님의 심판대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심판대는 타작의 골짜기(사41:15 암1:3), 하몬곡 골짜기(겔39:11), 므깃도 골짜기(슥12:11), 아마겟돈(계16:16)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된다. 열국에 대한 심판의 날 뿐만 아니라, 인생이 마치는 날, 세상의 종말, 삶에서 만나는 위기를 의미한다. ‘사람이 많음이여’ 무론대소(누구나, 무엇이나 예외없이)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계20:12)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모든 나라와 민족, 모든 인생도 예외가 없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곧 오신다. 항상 깨어있으라. 심판의 날을 연장하시는 이유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한 은혜다. 은혜를 멸시하지 말고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한다.

 

② (15절~16절)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 ‘그러나’ 심판의 날은 절망의 날이자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임종의 순간은 세상의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자 동시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은 세상 믿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자 동시에 믿음의 공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이다. 그 날을 예비하며 살았던 사람과 그 날이 없는 것처럼 흥청망청 살던 사람 간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차이다.

 

③ (17절)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 심판의 최종적인 목적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 것이라’ 지금 세상에서는 물질이 왕 노릇하고, 사람의 머릿수, 힘과 권세가 왕 노릇한다. 그래서 착각하거나 불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날에(심판의 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알게 된다.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왕이 지나는 길이다. 세상을 주도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던 것들이 다시는 왕 노릇하지 못하리라. 마침내 주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리라.

 

 

3. 최후에 웃는 얼굴

① (18절)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 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 싯딤 골짜기(아카시아 가시나무 숲)는 사해 북동쪽에 위치한 황무한 성읍이다. 성소에서 물이 나와 메마른 곳에 생명을 주고 회복시키리라. 에스겔의 환상처럼 성소에서 물이 나와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을 공급한다. 삶(생명, LIFE)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② (19절)“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 애굽은 풍요의 상징이다. 싯딤 골짜기는 회복되고 풍요로운 애굽은 멸절하리라. 그날에 인생역전의 대반전이 벌어질 것을 선언한다. (눅6:24~25)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지금 웃는 자들은 울게 되고 지금 우는 자들은 웃게 되리라’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그 실 예로 드셨다. (눅16: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부자와 거지나사로처럼 전화위복의 역사를 이루신다. 최후에 웃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

▶ ‘에돔(에서)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그 날에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데 심판의 기준은 ‘이웃(타인)’이다. (창18장,19장) 아브라함이 거하던 가나안 땅과 롯이 거하던 소돔과 고모라가 엇갈린 운명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 사람의 나그네에게 아브라함은 환대했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폭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원인은 이웃에 대한 환대가 아닌 적대였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 전하는 죄악의 본질이고 멸망의 원인이다. (마25:44~45)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진실로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③ (20절~21절)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 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

▶ ‘전에는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하나님께서 의에 최후승리로 심판하실 것을 확실하게 증거 한다. 지금 환란 중에 있다고 결코 낙심하지 말라, 지금 잘 나간다고 오만방자하지 말라. ‘마침내, 때가 이르면’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실 것이기에 소망을 품고 인내하라. 그리고 겸손하게 예비하라.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대를 두려워하며 살아라. 요엘은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지혜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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