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는 자기의 집회에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서 여러 번 했다. 한 가지 예로, 밴쿠버의 집회에서는 담임 목사가 김 교수를 강사로 초빙하면서 청중이 소수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정했던 작은 장소 대신 큰 장소로 옮겨서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교회 밖의 학생들이 그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 좋은 공부를 자기들만 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다른 학생들도 초청하기로 했다. 그들은 광고지를 만들어서 김형석 교수의 특강을 알리고 100명 정도의 청중을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300명이 모였었단다.

요즘 교인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교회가 옛 전도방법 대신 새로운 전도방법을 찾으려고 고심하는 때에 김형석 교수의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주목을 끌 만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때에 김 교수의 집회나 성경공부에 젊은이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김 교수가 하듯이 집회를 인도하고 성경을 가르치면 전도에 도움이 될 텐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김 교수의 『예수』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현대를 사는 교회 밖 사람들에게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예수』가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집회나 성경공부 시간에 교회 밖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비결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 책의 표지에서 <성경 행간에 숨어있던 그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렇다면 보통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내용을 중시하는데, 그는 성경의 내면에 숨어 있는 내용까지를 파헤치겠다는 말 아닌가. 혹시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밝히는 것이 그의 비결일까?

『예수』에서 그가 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가 기독교를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지 않고 기독교와 타 종교의 유사점이나 종교 일반에 대한 것을 언급하는 데서는 그의 열린 안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추상적인 계율이나 교리로 수렴하려 하지 않고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에 폭넓게 적용시킨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철저하게 믿는 보수적 신앙인이지만, 보수적 신앙인들이 외면하기 쉬운 현실적 삶을 중시한다. 여기서 믿음과 삶의 양면을 중시하는 그의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그의 경우에 믿음은 생활화된 믿음이어야 한다.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사랑인데, 사랑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인간 사랑과 인간의 이웃 사랑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달리 말해서, 그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현실적 삶에 두 다리를 굳건히 딛고 서 있다. 종교적 신앙에 관심이 있는 교회 밖 사람들이나 가나안 성도들이 김 교수의 성경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이러한 신앙과 현실의 균형 혹은 결합 때문 아닐까?

이러한 설명은 퍽 추상적이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예수』에 수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김 교수의 설명을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하나는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포도원 주인에 대한 비유’다.

1.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 12:1-8; 막 2:23-28; 눅 6:1-5)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 이후부터 율법과 계명을 신앙과 사회생활의 규범으로 믿고 지켜 왔다. 율법에 대한 준엄성이 이스라엘 민족 고유의 아집스러움과 합쳐져 교조주의가 되었고, 그 병폐적인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율법과 계명의 내용을 축조적으로, 문자 그대로 지키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 교만이 겹쳐, 그 결과로 나타나는 폐습은 인간성 자체를 병들게 만들 정도였다.

십계명은 모세가 직접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또 어겨서는 안 될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제4계명은 안식일에 관한 것이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일로 지키라. 엿새 동안에 네 모든 일을 힘써 하고 제7일은 너의 하느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니 너나, 네 자녀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일지라도 일하지 말라. 엿새 동안에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시고 제7일에 쉬셨으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안식일을 복되고 거룩한 날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나 이 안식일을 지키는 습관은 차차 교리화되고 형식에 치우치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에 식사를 짓지 않았음은 물론, 세수를 하는 것이나 머리를 다듬는 일도 금지되었고, 심지어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땅을 파는 일과 통한다고 해서 금지해야 한다고 할 지경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교회에서 교회로 나오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것은 죄가 아니나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타는 것은 죄가 된다고 판단을 내린 목사가 실제로 있었을 정도였으니.

예수가 처음 전도를 시작한 봄철 어느 안식일에, 예수의 일행은 따가운 볕을 쬐면서 밀밭 사이를 걷고 있었다. 물론 호반 지역에서의 일이다. 그때 예수의 한두 제자들이 길에서 잡히는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화과 열매나 밀 이삭 같은 것은 길 가는 길손들이 따 먹는 것을 용인하고 있었다. 그것도 율법책 속에 허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비벼 먹는 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항의를 해 왔다.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이 금지되었는데, 어떻게 밀을 비벼 먹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왜 당신은 그것을 금지시키지 않느냐는 힐난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당황했고, 제소자는 비신앙적인 처사를 나무랐기에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처사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반문했다. “너희는성경에서, 다윗 왕이 일행과 더불어 먼 길에 지쳐 있을 때 성전에 들어가 먹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제사 떡을 자신과 일행이 함께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그것을 성경은 정당한 처사로 간주하고 있으며,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따져 보면 제사장들은 가장 신성하다고 여기는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가리지 않고 일하게 되어 있지 않느냐? 너희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데,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귀한 것은 제물이 아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교훈을 왜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확실히 말해두지만, 내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사실과 교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경탄에 해당하는 혁명적 교훈이다. 만일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예수는 성전 밖으로 끌려나가 돌무덤에 묻힐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 때문에 구약 종교에서 신약 종교로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똑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가 예외 없이 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많은 종교인들은 종교가 인간을 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석가가 인간을 위해 애써 주었기에 불교가 탄생한 것이다. 인간이 석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가장 반대할 사람이 곧 석가인 것이다. 심지어는 인간이 교회를 위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회가 인간을 위해 존립한다는 뜻을 거부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이다. 중세기 기독교의 과오들은 대부분 이런 위치에서 저질러진 것이다.

예수의 교훈은 명쾌했다. 안식일을 비롯한 모든 율법과 계명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이나 계명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며, 종교는 언제나 목적과 방법을 뚜렷이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항상 그 순서를 뒤집는 과오를 범하곤 했다. 지금도 비슷한 잘못은 얼마든지 있다. 일부 교파에서 꼭 어느 날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든지,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은 죄라고 해서 어린 청소년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불행은 없어야 한다. 만일 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제3자가 그런 현상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필요도 없는 옷을 입혀놓고 왜 먼지를 털지 않느냐고 책망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율법과 계명으로부터의 해방이 신약 종교의 탄생이었고 모든 면에서 휴머니티가 최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예수의 뜻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종교의 과오를 바로잡아 주는 뜻인 동시에 앞으로 어떤 종교도 범해서는 안 되는 가르침이다.

만일 안식일을 논해야 할 계제가 된다면 예수의 뜻과 마음이 그 표준이 된다는 생각에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데에 그 뜻이 함축되어 있고, 앞으로 나와 더불어 안식일이 그 뜻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예언일 수도 있다. 지금은 그 뜻이 채워지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안식일을!‘이라고 생각해 잘못이 없을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선한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7일간의 하루를 안식과 축복의 날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4계명은 6일간 열심히 일한 사람이 하루의 안식을 취하는 것을 하느님의 은총의 뜻이라고 지적해 준 것이다.

2. 포도원 주인에 대한 비유(마 20:1-16)

어느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들을 만나 포도원에 가서 일하기를 부탁했다. 누가 보아도 후한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했다. 한참 뒤, 9시쯤 되어 이 주인은 일거리를 찾지 못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또 포도원으로 보냈다. 적당한 삯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주인은 12시에도 몇 사람을 보냈고, 오후 3시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주인은 장터에 나갔다가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왜 종일 이렇게 일없이 서성거리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가족들이 굶주리고 있고, 우리도 일을 하고 싶으나 고용해 주는 사람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은 그들도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라고 보냈다.

저녁 때가 되어 품삯을 줄 시각이 되었다. 주인은 관리인을 시켜 나중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정해진 품삯을 주라고 지시했다. 5시에 온 사람부터 모두가 한 데니리온씩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은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주인은 역시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부터 와서 일한 사람이 항의를 했다. “주인님이 하시는 일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사람은 한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한 데나리온을 주고, 저는 일찍부터 찌는 더위 속에서 종일 일을 했는데 어째서 같은 삯을 주는 것입니까?”라고. 그런 불평은 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주인의 대답은 달랐다. “나는 그대와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고, 그것은 충분한 하루의 품삯이 되지 않느냐. 저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족들의 어려움을 참작해서 그대와 같은 것을 주었을 뿐이다. 내가 그들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 그대에게 잘못된 것은 없지 않느냐?”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유명한 예수의 가르침이다. 영국의 러스킨이 이 비유를 들어『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저서를 남겼고, 인도의 간디도 그 뜻을 계승했을 정도이다.

우리는 모두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 성패가 민족이나 국가의 행복과 번영을 가늠해 줄 정도이다. 산업 혁명 이후부터 마르크스가 나타나기까지, 또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 문제는 개인과 사회의 가장 중대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수가 처음 받은 시험도 돌로 떡을 만드는 일이었다.

예수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평이한 교훈을 당시의 실정에 맞추어 예리하게 전달해 주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경제나 사회생활에 있어 정의의 질서만 가지고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그 위에 사랑의 질서가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수고한 노동자의 주장은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직업을 찾지 못한 더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처음의 노동자는 세상의 모든 일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기적인 소유 의식이 잠재해 있었다. 약속 이상의 것을 가지고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를 표준으로 정의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인의 대답은 높은 차원의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렇게 모든 문제를 처리한다면 저 가난한 사람들, 저녁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네 동료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리고 품삯을 마음대로 줄 수 있는 내가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들은 갈 곳이 없지 않은가를 묻는 것이다.

물론 정의의 질서는 귀하다. 그것이 깨진다면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운 과제는 정의만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오히려 정의 위에 사랑의 질서가 보충될 수 있을 때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해 그리스와 서구 사회는 정의의 전통을 누려 받았다고 말한다. 그 후에 기독교의 사랑의 질서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서구의 성장과 번영이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있다. 쇼펜하우어 같은 무신론적인 철학자도 정의를 구리에 비교한다면 사랑은 순금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은 사형을 받을 죄인이 아니라고 끝까지 변명했으나, 예수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예수가 의도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하늘나라였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까지도 정의 질서로 그쳤다면 기독교가 원하는 하늘나라는 찾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하늘나라는 사랑의 왕국이었고, 사랑의 실천이 모든 역사의 주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의 사랑은 어떤 숨겨진 절차를 밟고 있는가. 처음에 온 노동자는 자신과 책임을 지고 있는 가족을 위한 소유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은 포도원에 와 있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주었다. 우선 넓은 공감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공감과 이해가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는 “이 세대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슬픔을 함께 할 줄 모르는 메마른 세상이다.”라고 한탄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슨 종교가 가능하겠는가를 자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공감을 가진 사람, 또 가져야 할 사람이 주인임을 잘 알고 있다. 품팔이꾼들이 공감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한 데나리온을 나누어 가졌음에 틀림이 없다. 사랑을 베풀 경제적 여유와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직장과 사회의 지도층, 윗사람들은 남다른 공감을 가져야 한다. 그 공감이 사랑의 발단이 되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정치인들이 국민을 이해할 수 있으며, 문화인들이 성장하지 못한 대중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즉 윗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아랫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공감과 이해인 것이다.

정치가들이 업적을 노려 국민을 이용하는 일은 자주 있다. 기업인들이 수입을 올리기 위해 소비자들을 괴롭히는 일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직장이나 사회의 윗 사람들이 유형무형의 압력을 아랫사람들에게 가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런 구조의 부조리 때문에 오는 사회적 불안과 비극은 누가 해소시켜 줄 것인가. 언제나 사회의 윗사람들이 공감과 이해로 사랑을 실천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한다. 러스킨이나 간디가 이 비유를 들어 경제와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귀중한 신념으로 삼은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최근 사회복지 체제를 의도하는 국가들이 수입이 많은 사람들의 세금으로 가난한 국민을 위해 주고,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소유 체제에서 기여 체제로 뀌고 있음은 바로 이런 뜻의 사회적 실천으로 보는 것이 좋다. 국민 모두가 경제적 혜택을 고루 받아 행복을 누리는 사회가 최선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옛날과 같이 특권층이나 부유층이 국민을 지배하려 든다든가, 가난한 백성들을 좌우하면서 사는 사회는 그 존립의 기반을 잃게 마련이다.

포도원 주인이 가난한 품팔이꾼들에게 사랑을 베풀 듯이 사회 각계층의 지도자들은 가난한 대중, 소외된 젊은이들,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교육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혜택을 주어야 한다. 다른 문제는 모두 그 위에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적어도 크리스천에게 사명이 있다면 이러한 사회적 정의와 사랑의 실천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많은 환자를 알고 있으면서도 예배당을 짓는 데 막대한 투자를 한다든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으면서 헌금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 비유의 뜻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정부나 사회의 다른 지도자들이 그런 과오를 범하더라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사회 질서를 위하는 것이 기독교의 책임이어야 한다. 예수가 이 비유를 말해 준 것은 개인의 신앙적 자세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짓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또 우리가 여기서 느낄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 일찍부터 포도원에 와서 일을 한 노동자는 일의 목적이 돈에 있었다. 다른 일꾼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주인까지 돈의 소유가 목적이었다면 그 주인은 결코 늦게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의 임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일꾼들은 돈의 소유가 목적이었으나 적어도 주인만은 인간이 더 귀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랑의 실천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열쇠가 여기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명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당장은 돈이 생활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지도층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력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회 생활의 최후의 목적은 사람이며, 경제를 비롯한 다른 것들은 사람을 위한 수단과 방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내 생명과 인생보다 귀한 것이 없듯이 경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값진 인생을 위해 바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포도원의 주인은 그 뜻을 알았기 때문에 사랑의 질서를 실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수가 요청한 것이 바로 이러한 윗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이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