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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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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23일 (목) 12:30:43
최종편집 : 2020년 01월 23일 (목) 12:34:11 [조회수 :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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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그리스도: 탈육신 종교의 혐오와 폭력에 대한 대안적 정통주의

 

리처드 로어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0년 1월 30일,
신국판, 352쪽,
값 14,000원.


ISBN 978-89-97339-48-8 94230 ISBN 978-89-87427-87-4 94230 (세트) 
원서 The Universal Christ: How a Forgotten Reality Can Change Everything We See, Hope For, and Believe (Convergent Books, 2019)

 

출판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아마존서점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으로 초대한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그리스도교의 원래 고유한 특성인 화육(성육신) 종교가 물질, 육체, 자연, 여성을 혐오하는 탈육신 종교로 둔갑했다고 보는 그는 이 책에서 보편적 그리스도 신비에 기초한 “대안적 정통주의”를 제시한다. 즉 예수 한 사람만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왔던 오랜 전통에서 “잊혀졌던 실재,” 곧 만물 속의 “신적 현존,” “초월적 내재,” “만물의 충만함”으로 표현된 실재를 되찾고 동방교회의 공동체적 부활 이해에 근거해서 “보편적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이런 보편적 그리스도론의 바탕은 요한복음과 바울로의 편지들, 프란치스칸 전통의 화육 신비주의이며, 최근의 존 도미닉 크로산과 월터 윙크 등의 예수 연구와 카를 융, 샤르댕, 칼 라너의 통찰력에 근거한다. 그리스도를 예수에게만 적용한 “특수계시”라는 정통주의는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 속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간과하는 한편, 예수가 경계했던 종교적 투사와 배타주의, 타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 생태계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초래했기 때문에, 그는 빅뱅 이후 계속되는 화육 과정 속에서의 그리스도 신비의 계속성과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피조물의 성스러움과 아름다움, 그리스도 신비를 닮는 신자들의 온전한 성숙과 제자도, 공동체적 구원, 생태계에 대한 책임성의 초석을 마련해준다. 특히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항상 “사람의 아들,” 곧 “사람”이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폭력이 구원한다”는 메시아주의에 반대한 ‘안티-메시아’였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절실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되심으로써 사랑하신다”고 역설하는 그는 하느님의 본성과 화육, 원죄와 십자가, 구원과 성만찬(영성체), 속죄론, 부활의 여정, 관상의 의미와 수행에 대한 설명을 통해, 탈육신 종교의 혐오와 폭력에 대한 대안적 정통주의를 제시할 뿐 아니라 생태계 붕괴에 직면하여 혐오와 폭력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묵시종말적 시대에 신비주의적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제공해준다.

 

 

2. 저자와 역자

 

   
▲ Richard Rohr

리처드 로어(1943—)는 프란치스코회 신부로서 1986년에 “행동과 관상 센터”를 설립했으며, 초창기에는 몇 년 동안 미국과 독일에서 애니어그램을 가르치는 한편, 오랜 영적 지도와 상담, 특히 카톨릭 신부들을 위한 피정을 17년 넘게 인도하고, 앨버커키 교도소 지도신부로 14년 넘게 사목한 경험을 바탕으로 『불멸의 다이아몬드』, 『물밑에서 숨쉬기』, 『위쪽으로 떨어지다』 등 20여 권의 주옥같은 책을 발표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회심을 경험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의 삶과 글 속에는 “아름다움이 구원한다”는 동방교회 신학방법론과 성인 프란체스코의 적극적 평화주의가 배어 있어서, 세상과 교회 안에서 상처받은 모든 영혼들을 치유하며 온전한 성숙함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그는 짐 월리스, 토머스 키팅, 랍 벨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영향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화육(성육신) 종교가 탈육신 종교로 둔갑했다고 보는 그는 토머스 머튼을 이어 관상 전통을 되살려내는 과업에 헌신했으며, 짐 월리스, 토머스 키팅, 랍 벨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준우 박사는 『역사적 예수』, 『불멸의 다이아몬드』 등 3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3. 서평

 

“로어 신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역사적 인물)에 대한 생각과 그리스도(구세주)에 대한 생각을 함께 결합시켜, 자기 주변의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인식하도록 초청한다. 그의 혁신적인 성찰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본성에 관해 깊이 생각하도록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Publishers Weekly

 

“로어 신부는 우리가 믿음의 표피 아래를 탐구하여, 모든 사람과 만물 안에 있는 거룩한 것을 보도록 도전한다. 자신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이들은 이 책에서 영감과 격려를 발견할 것이다.”

― Melinda Gates, The Moment of Lift 저자

 

“로어 신부는 그리스도를 단지 사람들 속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본다. 그는 하느님의 첫 번째 화육은 창조 자체 안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며, 또한 ‘하느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되심으로써 사랑하신다”고 말한다. 이런 문장뿐 아니라 많은 통찰력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 Bono

 

“이 책에서 로어 신부는 우리로 하여금 나자렛 예수가 가르치신 것, 행하신 것,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를 통해서 그의 말씀을 듣고 보도록 도와준다. 즉 하느님의 사랑하며 해방시키며 생명을 주시는 표현과 현존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로어 신부는 그리스도교가 그 영혼을 새롭게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 Michael Curry, 미국 성공회 감독회장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고 그 고백이 뜻하는 놀라운 의미를 파악해야만 한다. 이 책은 로어 신부의 최고 역작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왔던 그의 신학적 통찰력을 요약해준다.”

― Wesley Graberg Michaelson, 미국 개혁교회 증경사무총장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는 그 뿌리와 그 숙명을 만물 안에서, 모든 물질 안에서, 모든 삼라만상 안에서 발견한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적인 소속, 보편적 신뢰, 보편적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이 책은 종교를 변화시켜 더욱 부드럽고 변혁적인 종교로 만들 것이다.”

― Timothy Shriver, 스페셜 올림픽 회장.

 

 

4. 목차

 

시작하기 전에 / 9

제1부  모든 것을 위한 또 다른 이름

 1. 그리스도는 예수의 성(姓)이 아니다 / 21
 2. 당신이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을 받아들이라 / 39
 3. 우리 안에, 우리로서 계시된 것 / 57
 4. 원죄가 아니라 원선 / 77
 5. 사랑이 그 의미라는 것을 / 97
 6. 성스러운 온전함 / 115
 7. 어떤 좋은 곳으로 / 129

제2부  거대한 쉼표

 8. 행동과 말씀 / 145
 9. 사물들의 깊음 / 151
10. 여성적 화육(성육신) / 167
11. 이것이 내 몸이다 / 179
12. 예수는 왜 죽었는가? / 193
13. 그 짐은 혼자 질 수 없다 / 221
14. 부활의 여정 / 235
15.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한 두 증인들 / 261
16. 변화와 관상 / 279
17. 단순한 신학을 넘어: 두 가지 수행 / 303
에필로그 / 315
후기  사랑 이후의 사랑 / 317
부록  하느님께 이르는 영혼의 여정 / 319
부록 1  네 가지 세계관 / 321
부록 2  영적인 변화의 패턴 / 329
참고문헌 / 337
옮긴이의 말 / 349

 

 

5. 책 속으로

 

(p. 10) 수치를 당한 그리스도(the humiliated Christ)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생각이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빵을 구걸하면서 러시아 전역을 절룩거리며 걷는 그리스도(the lame Christ)의 모습이었다. 그 그리스도는 모든 시대마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와, 심지어 죄인들에게조차 찾아와 그분 자신의 궁핍을 통해서 그들의 자비심을 되살리려 오실 분이다. 눈 깜빡할 찰나에 나는 이 꿈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건한 백성의 꿈이 아니라, 공상이 아니라, 전설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특권이 아니라, 사람 속에 계신 그리스도 …

 

(p. 13) 1054년에 대분열을 통해 서방교회가 동방교회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만물을 해방시키셨으며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이런 심원한 이해를 점차 잃어버렸다. 대신에 우리는 점차 신적인 현존을 예수라는 단 하나의 몸에 국한시켰다. 신적인 현존은 빛 자체처럼 어디에나 있으며 인간의 경계선들로 제한시킬 수 없는 때에 그렇게 국한시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믿음의 문이 닫히게 된 부분은 초대 교인들이 “현현”이라고 부른 주현(Epiphany)에 대한 이해, 또는 가장 유명하게도 “화육(성육신, Incarnation)”에 대한 가장 폭넓고 아름다운 이해를 못하게 믿음의 문이 닫혔으며, 또한 화육의 마지막이며 완전한 형태인 “부활”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동방정교회들은 원래 이런 주제들에 대해 훨씬 폭넓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서방교회의 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모두 최근에서야 비로소 이런 통찰력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씀이 육신(flesh)이 되셨다”(요한 1:14)고 말하면서, 단 한 사람의 몸(body)을 가리키는 용어 ‘소마(soma)’ 대신에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용어 ‘사르크스(sarx)’를 사용한 이유다.

 

(p. 16-17) 그리스도에 대한 우주적인 개념은 어느 누구와 경쟁하지도 않고 어느 누구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포함하며(사도행전 10:15, 34),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마침내 전체 우주에 합당한 하느님이 되도록 허락한다.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이렇게 이해할 때, 창조주의 사랑과 현존은 창조된 세상 속에 근거하게 되며, 또한 “자연”과 “초자연” 사이의 정신적 구별은 무너지게 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 것처럼, “당신의 인생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마치 어떤 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마치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방법이다.” 앞으로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p. 23)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이처럼 물리적 피조물 속에 자신을 계시한 것이 첫 번째 화육(Incarnation: 성육신, 영이 육신을 입은 것에 대한 총칭적 용어)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게 일어난 것으로 믿는 인격적인 두 번째 화육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난 것이다. 이것을 프란치스코회 언어로 표현하자면, 삼라만상은 첫 번째 성서(the First Bible)로서, 두 번째 성서(the second Bible)가 기록되기 전에 137억 년 동안 존재했다.

 

(p. 25) 요한복음이 그리스도를 “어둠이 이길 수 없는 빛”(요한 1:5)이라고 묘사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이었다. 사물들의 내적인 빛(the inner light)은 제거하거나 파괴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것이다. 그것이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요한이 능동태 (과거진행형―역자주) 동사를 선택한 것(“그 빛이 세상 속으로 오고 있었다.” 요한 1:9)은 그리스도 신비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적인 과정, 즉 우주를 채우는 빛처럼 불변의 상수(constant)로서 계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빛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창세기 1:3). 이것을 잊지 말라.

 

(p. 35) 나로서는 완전한 그리스도 신비를 참되게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도교를 기초에서부터 개혁하기 위한 열쇠인데, 이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우리들만의 배타적인 집단 속에 집어넣거나 잡아두려는 어떤 시도에서든지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신약성서가 극적으로 또한 명백하게 표현한 것처럼, “천지창조 이전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으며 … 하느님의 자녀들로 선언되었으며, 태초부터 선택됨으로써”(에페소 1:3, 11), “그분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로 만드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1:10). 만일 이 모든 것이 진실하다면, 우리는 모든 몸을 포함하는 자연종교를 위한 신학적 기초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는 태초부터 해결되었다. 그리스도교를 통해 세뇌된 당신의 머리를 떼어내어 세차게 흔들어 당신이 배운 것들을 떨어낸 다음에 다시 붙이도록 하라!

 

(p. 66) 아마도 우리가 그리스도 신비에 주목하지 않는 가장 큰 본보기는 우리가 계속해서 행성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을 것인데, 행성 지구는 우리 모두가 의존해서 살아가는 터전이다. 오늘날 과학은 대부분의 종교들보다 훨씬 더 물리적인 것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에는 과학과 기업이 대다수 사람들—심지어 여전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설명하는 주체들이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이나 구원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물리적 우주를 포함하지 않았거나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이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있다.

 

(p. 181) 그러나 여기서 그 수단, 매개물, 그리고 그 최종적 메시지는 육체적이며 먹을 수 있는 것이며 씹을 수 있는 것, 그렇다, 소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살이다. 고대 종교의 상당수는 신이, 제단에 바쳐진 인간이나 동물들을 먹거나 희생 제물로 삼았지만, 예수는 종교와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고 계신 것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p. 210) 20세기에 현대 심리학이 어떻게 인간들이 거의 언제나 자신들의 무의식적인 그림자(shadow)를 타인들과 다른 집단들에 투사하는지를 밝히기까지는 사람들이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패턴을 2천 년 전에 밝혔다. 즉 예수는 “너희를 죽이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고도 그것이 오히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요한 16:2)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결함들을 증오하며, 또한 슬프게도 그런 투사(projection)를 흔히 가장 잘 은폐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과 종교는 우리의 대부분의 폭력을 정당화하며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숨는 데 이용되어 왔을 것이다.

 

 

6. 출판사 서평: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질문들

 

왜 어떤 목사들은 “하느님으로 충분하며, 예수는 필요 없다!”고 고백하는가?

왜 어떤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 충분하지, 왜 따라야 하는가?”라고 묻는가?

1054년 대분열 후, 서방교회가 잃어버린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부활에 대한 이해에 왜 그토록 큰 차이점이 있는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반성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신학적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지 자신을 예배하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는가?

왜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종교적인 투사를 하는 것을 매우 경계했는가?

왜 예수는 행동의 변화보다 먼저 마음과 사고방식의 변화를 더 중요시했는가?

왜 예수는 율법과 도덕 중심의 종교를 은총과 자비 중심의 종교로 바꿨는가?

왜 프란치스칸은 경험, 성서, 전통이라는 세 바퀴를 이성적으로 타라고 하는가?

그리스도를 오직 예수 한 사람에게만 적용시킨 정통주의의 결과는 무엇인가?

왜 예수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 즉 보통 사람이라고 87회나 강조하셨는가?

화육(성육신) 종교로 출발한 그리스도교는 왜 탈육신의 종교로 둔갑했는가?

탈육신 종교는 왜 육신, 물질, 여성, 자연을 혐오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

“중생한” 신자들은 왜 비종교인들보다 가정폭력과 인종차별이 훨씬 심한가?

왜 하느님의 초자연적 전능성을 믿는 사람일수록 생태 위기에 무관심한가?

성경 문자주의와 종교적 광신주의는 왜 흔히 극단적인 폭력집단을 낳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교리들에 대해 질문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가?

쇠퇴해가는 교회를 되살릴 수 있는 그리스도는 정말로 어떤 그리스도인가?

마지막 만찬이 그토록 제자들을 놀라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한국교회는 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110만 명의 서명을 받았는가?

대한불교조계종은 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개최하였는가?

후천개벽과 해원상생을 꿈꾸었던 착한 백성이 왜 그토록 모질게 되었는가?

왜 천국에 간 사람들은, 악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을 봐야 만족하는가?

“세상의 슬픈 소리를 보는”(관세음) 어머니의 마음은 이제 어디에서 찾을까?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더욱 악화되는 시대에,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20년 후 본격화될 동시다발적인 식량폭동에서 종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명의 붕괴에 직면한 인류 앞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되살려야 하는가?

멸종 위기종이 된 인류에게 그리스도교가 제공할 마지막 선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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