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유학시절 자주 먹었던 음식이 있다. 뉴욕 한인 타운인 플러싱 메인스트릿 기차역 부근에서 사먹었던 중국만두다. 버스정류장 앞이라 수많은 다민족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길 옆에 위치한 이 집은 그 당시 1.25$에 중국만두 5개를 포장해 주었다. 이북출신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셔서 먹었던 우리 집 만두와는 확실히 다른 맛이었지만 한 입 깨물면 특유의 육즙과 향내가 인상적이었던 그 중국만두는 충분히 맛있었을 뿐 아니라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식사를 충분히 해결해 주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만두는 샤오롱빠오(小笼包)라는 상하이의 전통음식으로 우리 식의 ‘고기만두’인데, 육즙이 가득 들어 있는 특징이 있다. 지금도 그 만두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만두의 사전적 의미는 ‘밀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소를 넣은 음식’이다. 한국에선 그냥 만두라 하지만 중국에선 만터우(馒头), 바오즈(包子), 쟈오즈(饺子)를 구분한다. 만터우는 우리 식 한자로 ‘만두(饅頭)’인데, 여기엔 소가 들어가 있지 않다. 중국 음식점에서 고추잡채와 함께 먹는 꽃빵이나 팥앙금이 없는 호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오즈와 쟈오즈는 둘 다 소가 들어가 있는데 바오즈는 대개 동그란 형태이고, 쟈오즈는 반달 모양으로 길쭉하다. 바오즈는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 '포자'라고 불리고, 쟈오즈는 생반죽으로 빚어 '교자'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뉴욕에서 먹었던 샤오롱바오(小笼包)는 작은 대나무 찜통(샤오롱)에 담긴 바오즈로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딤섬(点心)은 대나무 찜통에 쪄내는 각양각색의 미니 만두로 중국 광둥 요리 중 하나이다. 홍콩관광청의 설명으로 딤섬의 종류를 있는 대로 다 끌어 모으면 2000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중국 만두의 종류가 있다. 중국 음식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물만두는 슈이지아오(水饺)라고 부르고, 훈툰(馄饨)이라고 불리는 얇은 만두피로 만든 만두국도 있다.

만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음식이고, 고려시대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1600년대 이후 발간된 우리나라 음식 책에 나오는 만두는 모두 78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만두도 중부 이북 지역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역사적으로 충청도이남 지역에서는 만두를 먹지 않았다. 이북 지역에서는 설음식으로 떡국 대신 만두국을 먹었다. 설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는 것이 이북 지역의 세시풍속이었다. 전라도나 경상도에서는 만두 대신 떡국을 먹었고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은 떡만두국을 먹었다.

만두는 중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모양과 맛은 약간씩 다르지만 만두의 범주에 속하는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아르메니아의 힝깔리,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펠메니, 폴란드의 피에로기, 스페인의 엠파나다, 스웨덴의 피테팔트, 이스라엘의 크레플라흐, 터키의 만티, 티베트의 모모, 인도의 사모사, 몽골의 보쯔 등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전해지는 만두의 역사에는 몇 가지 기원이 있다.

첫 번째는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일화다. 중국 최고의 참모인 제갈공명(181-234)이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濾水)의 풍랑이 거세어 뱃길이 험해졌다. 강을 건너지 못하자 남만 현지 노인이 "원통하게 죽은 병사의 영혼이 노한 것이니 포로의 머리를 베어 제사를 지내시오."라고 권유했으나 제갈공명은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네." 하며 밀가루 반죽에 양과 돼지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만두를 빚어 제사를 지내고 무사히 강을 건너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삼국지는 ‘서기 184년 황건의 난부터 서기 280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명나라 때 소설’이다 보니 만두에 관한 정확한 고증이라고 보기에는 역사적 근거가 약하다. 삼국시대 이전인 후한(後漢) 시대에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이미 만두라 할 만한 음식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두 번째는 중국 무협 소설과 영화에서 최고의 의사 ‘화타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의 4대 의성 장중경(张仲景) 선생과 관련된 일화이다. 제갈공명과 동시대인 삼국시대 초기 가장 유명한 의사였던 장중경이 벼슬을 마치고 낙향하여 고향인 남양(南陽)으로 돌아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귀에 동상이 걸려 고통 받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그는 제자들과 함께 마을에 천막을 치고, 가마솥에 양고기와 산초를 넣은 귀 모양의 만두를 빚어 한기를 몰아내는 약재와 함께 ‘거한교이탕’(祛寒嬌耳湯)을 끓여낸다. 천막에서 추위를 피하면서 따뜻하고 영양 많은 만두를 먹은 백성들이 동상이 다 낳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피로 싼 이 음식의 모양이 자그마하고 예쁜 귀처럼 생겼다 하여 ‘쟈오얼(嬌耳)이라 부르다가 후에 ’쟈오얼(餃耳)‘ 쟈오즈’로 바뀌었고 이것이 오늘날 교자 형태의 만두를 이야기한다고 전해지는 설이다.

세 번째로 우리나라의 만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2세기 말 고려 중기인 명종 때 고려사(高麗史) 효우열전(孝友列傳)에 나온다. 위초는 본래 거란에서 귀화한 사람으로 명종 때 벼슬을 했다. 그의 아버지 위영성이 병이 나서 위독해지자 의사가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위초가 스스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잘라 다른 재료와 섞어서 만두를 빚어 먹이니 병이 나았다. 1185년(명종 15) 왕이 위초의 효행 이야기를 듣고 재상들에게 포상할 것을 의논하라고 분부하자, 홍살문을 세워 표창하고 그의 효행을 역사 기록에 남겼다.

제갈공명은 포로의 목숨을 구하려고, 장중경은 불쌍한 백성을 살리려고, 고려사에는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려고 만두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만든 만두의 공통점이 있다. 만두에는 생명을 살리는 휴머니즘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설 명절을 맞이하며 만두국을 먹을 때 만두에 담긴 생명을 살리는 정신을 기억하면 좋겠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주어졌다. 어떤 속재료라도 품어주고 감싸주는 만두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올 한해는 생명을 살리는 삶과 목회가 되길 바라고 기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