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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요엘 3장 1절~8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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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19일 (일) 23:14:45
최종편집 : 2020년 01월 19일 (일) 23:16:52 [조회수 :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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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요엘 3장 1절~8절

 

1. 그 날과 그 때

1) (1절)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 ① 여호와의 날 : 오늘 본문이 전하는 그 날과 그 때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를 가리킨다. ‘그 날과 그 때는’ 중층적인 의미를 전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열강의 침략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죽음의 순간,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재난(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 장차 임할 세상의 종말 등을 가리킨다. 이를 통칭해서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른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의 순간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자각하며,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날이다.

▶ ② 종말신앙의 메시지 : 그 날과 그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마24:36)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행전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그 날과 그 때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죽는 날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야 한다. 그 날과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 날이 반드시 있고, 그 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은 알고 살아야 한다. 안 알려 주신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은 모두 거짓된 미혹에 불과하다. 종말에 대해 예수께서 하신 첫 번째 메시지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종말신앙의 핵심은 ‘마지막 때’가 아니라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오늘’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종말에 대한 마지막 경고는 ‘너희는 장차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오늘날 성행하는 이단 사이비집단의 미혹만큼 한국교회의 세속주의가 더 심각하다. 마지막 날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참된 종말신앙을 외면한다. 한국교회가 타락하고 쇠약해진 원인이다.

▶ ③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 : ‘그 날은’ 심판의 날이자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8월15일은,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는 패망(항복)의 날이지만 우리민족에게는 해방(독립)의 날이었던 것처럼, 그 날은 적대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는 날이다. 죽음은 어떤 이들에게는 이 세상이 끝나는 날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날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에게는 절망의 날이지만 반석 위에 집을 지는 사람들에게는 숨은 공력이 드러나는 구원의 날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 나는 심판의 순간이다. 판가름하시는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신뢰하고 의뢰하는 자), 곧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그날에 구원을 얻게 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리킨다. (눅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
2) (2절)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 여호사밧 골짜기 :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가리켜서 ‘여호사밧 골짜기’(심판의 골짜기)라고 칭한다. (대하 20:26~30) ‘제 사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송축, 찬양)라 일컫더라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여호사밧을 선두로 즐거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로 그 적군을 이김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한고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모압 자손, 암몬 자손이 유다 왕 여호사밧을 침공을 승리하고 찬양했던 역사적 사실을 소환한다.(역대하 20장의 주요메시지 : 여호와께 낯을 향하여 온 백성이 금식하며, 우리를 치러오는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힘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2.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

1) (3절~5절) “이는 그들이 나의 땅을 나누었으며 또 제비를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 의의 최후승리 : 심판의 날의 또 다른 의미를 증거 한다. 심판의 날은 의의 최후승리의 날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날이다. 진실과 정의가 드러나는 날이다. 하나님은 주무시고 계신가, 왜 침묵하시는가? 적들이 저지른 만행을 다 알고 계시고 다 기억하신다. 낱낱이 회복하시고 그 날에 친히 보응하신다. (도산 안창호)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그 날에 반드시 되갚아 주신다. ‘두로와 시돈, 블레셋 사방아’ 열강과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웃 나라들의 악행과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만행을 가리킨다. 현실에서 정의와 진리가 실종되고 악이 비록 성하여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대적자(사단)들을 멸하시고 의의 최후승리를 이루신다.


2) (6절~8절)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① 동해복수(보수)법. 핵심 구절은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동해복수법(동해보복법, 영어로 talion, 라틴어로 lex talionis)은 ‘출21:23~25, 레24:17~22’에 기록되는데, 동해복수법의 정신은 무시무시한 보복의 당위성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 생명의 등가성이다. 자신의 것(내 생명, 내 물질, 내 자녀)이 소중하면 타인의 것도 ‘동일하게, 같은 무게로’ 소중하다는 엄중한 사실을 전하는데 그 본 뜻이 있다. 자신의 희생(시간, 물질, 헌신, 봉사)은 생색을 내면서 타인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눅6:31)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7~38)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② 심판을 유보하라.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라. 원리주의자(근본주의자: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이 되는 이치를 최선으로 여기고 이를 지키고 따르는 사람) 이름은 좋으나 현실은 무섭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가 스스로 정의의 화신처럼 하나님 노릇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을 정의로 타인을 악으로 정죄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보복을 일삼는 만행을 저지른다. 독실한 것과 독선과 편견은 다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롬2:1~5)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남 얘기하지 말고 너 나 잘해)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내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 ③ 복수는 하나님의 것. (롬12:19~21) ‘내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신32:35)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타인에 대한 정죄와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의 판단이 틀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정확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시37: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고 도리어 나 자신을 성찰하고 겸비하는 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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