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김학중  |  hjkim@dream10.org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0년 01월 10일 (금) 00:07:59 [조회수 : 469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며칠 전에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좁은 골목에는 횡단보도가 나있는데, 신호를 무시한 어느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아마 그이도 무척이나 놀랐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 있는 건널목은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기 일쑤이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적으니까 방심하고 그냥 건너기가 쉬운 것이다. 반면에 대로변에 있는 횡단보도는 신호를 잘 지켜서 건너는 사람이 많다. 보는 눈도 많을 뿐만 아니라, 혹여나 교통 지도 단속을 나온 경찰관에게 걸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어떤 실험에서도 사람들의 극명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실험이었다. 일정 시간을 두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세어보니까 무려 81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아무도 의식을 안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잠시 후, 이와 반대되는 대조군 실험을 하게 된다. 어떤 남자가 “무단횡단에 대한 사회학적 조사 중”이라는 표지판을 들고 서 있게 한 뒤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표지판을 들고 있든지 말든지, 그저 내 갈 길을 가겠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고, 표지판의 글귀를 조금이나마 의식한 것인지 어떤 사람은 횡단보도로 방향을 틀어 길을 건넜던 것이다.

그 길은 알고 보면 횡단보도가 없는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좁은 골목이긴 하지만 사방으로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식 없이 무단횡단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표지판을 들기 전후가 극명하게 달랐던 것은 ‘누군가 나를 의식하고 있다’라는 차이에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나를 실험의 대상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데도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올바른 길로 찾아가게 만들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역할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 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나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러한 감시자 효과(Observer Effect)를 산업 심리학 용어로 ‘호손효과’(Hawthorne effect)라고 부른다. 1920년대 미국의 호손이라는 전기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 생산력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실험의 명제가 ‘작업 현장의 조명 밝기가 변함에 따라 제품 생산력은 어떻게 변하는가?’였다. 이에 대하여 가설은 조명이 밝아짐에 따라 제품의 생산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작업장의 조명 밝기는 생산력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명이 밝든 어둡든 관계없이 직원들의 생산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요인을 미쳤던 것은 직원들로 하여금 ‘누군가 우리의 생산력을 실험하고 있다’라는 부담감이었다. 한마디로 보이지는 않지만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을 때 생산력은 향상되었던 것이다. 이 실험이 끝나자마자 직원들의 생산력은 급격하게 저하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지켜보는 눈이 있고 없고를 따라서 극명하게 달라진다. 무언가 더 잘 되고, 발전하기 위해서 적절한 감시와 통제는 필요할 수도 있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해 마다 연초에는 서로에게 이런 덕담을 주고받곤 한다. “부디 올 해는 계획과 목표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갈 정도로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변할 수밖에 없다. 어찌하겠는가. 이렇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연약한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라면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애쓰고 발버둥 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혹여나 작심삼일로 그친 목표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전해도 충분한 때이다. 그렇게 다시 도전하며 나아갈 때,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느슨하게 풀어진 것들을 다시 쪼여 맬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세움을 받았다면, 어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 한 분만 믿고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감시자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선한 양심으로 모든 일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눈을 피했다고 잘못된 일을 덮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눈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무단횡단을 하다가도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횡단보도를 찾아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런 의식 없이 가고 있었다면 방향을 바꾸어 그분의 뜻에 맞게 나아가야 한다. 새해에 계획과 목표는 외부 환경의 조건이 좋다고 될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얼마나 선한 양심이 살아 있는가’로 판가름이 날 것이다.

 

김학중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