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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나들이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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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08일 (수) 20:45:42
최종편집 : 2020년 01월 08일 (수) 21:10:23 [조회수 : 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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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나들이로 아는 목사님의 아들 OOO 전도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간만에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고 흥겨운 잔치집을 가는 것이니 하객으로서의 복장 단장도 필요했다. 이옷 저옷 꺼내어 깔맞춤을 한 뒤 신발은 높은 구두와 낮은 구두를 골라놓고 한참을 망설이다 굽이 높은 구두를 선택했다.

농촌살이에서 먼 길을 가려면 가기 전 단장할 것이 여러 개가 있다. 나의 단장할 것 중에 하나는 연탄을 갈아놓는 것이다. 한 장을 갈 것인지 두 장을 갈아놓고 갈 것인지는 불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농촌생활 8년 차에 접어들면서 터득한 나름의 불조절 고수의 비결이다.

평소에는 옷을 갈아입기 전 불을 갈고 떠났는데 오늘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잘 차려입고 연탄을 갈러갔다. 활활 타오르는 연탄을 조심스럽게 꺼내는데 웬일인가! 연탄 석장이 나란히 붙어 나오고 있었다. 보통은 두 장이 붙어 나와야 하는 경우인데 석 장이라니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순간 3초 동안 여러 생각들이 오고가는 사이 석 장의 연탄이 연탄집게에서 스스르 빠져나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활활 타오르는 연탄이 떨어지면서 불똥이 신발에 튀었나보다. 구두 겉면이 바르르 말리고 들뜨면서 벗겨지려했다. 손으로 쓰윽 문지르니 들뜬 부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결국 신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신발이 망가졌으니 속이 상할 만도 하건만 도리어 담담하였다. 이유는 이렇다. 우리말에 ‘아끼다 똥 된다’는 말처럼 이 신발이 그 짝이 난 것이다. 이 신발은 몇 년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생각지않게 저렴하게 구입을 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굽이 높았다. 5센티 정도면 여자들이 신기에는 무난한 신발일 수 있겠으나 농촌에 내려와 자가용 이용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운동화나 굽이 낮은 캐주얼화, 고무신 위주로 신다보니 굽이 조금만 높은 신발을 신는 날이면 그 날은 종일 다리와 허리에 큰 무리를 주었다. 이 신발이 그랬다.

싸고 모양새도 괜찮고 앞볼도 넓어 편한 것 같았지만 그보다 더 편한 신발에 익숙한 내 발은 그 사이 5센티도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다보니 이 신발은 거의 3년 정도 신발장에 묵히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신발장을 열 때마다 꺼내고 넣기를 반복했는데 결국 오늘 신발의 운명은 나의 발에서 떠나버렸다. 1도의 아쉬움도 없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쓰레기통에 던져진 것이다. 신발의 무게가 제법 묵직했기에 쓰레기통에 골인한 순간 내 마음까지 가볍게 느껴졌다. 이는 신발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어서 나를 신어다오’ 하던 무언의 압력이 신고는 싶었으나 신지 못한 신발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내 주위엔 이 신발처럼 비우고 싶으나 비우지 못하고 품고 사는 물건들이 참 많이 있다. 옷장을 열면 옷이 한가득, 찬장을 열면 그릇이 한가득, 서랍을 열면 잡동사니가 한가득이다. 옷장, 찬장, 서랍 뿐이겠는가. 좋은 말로 하면 풍족한 일상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내가 정말 일상에서 쓰고 입고 먹는 것은 겨우 한두개가 고작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이외의 풍족한 것들, 남아있는 것들,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는 것들을 버리거나, 필요한 이들에게 주거나, 비우지 못하고 산다. 볼 때마다 오늘 버려야지, 내일은 꼭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 시간이 오면 마음먹음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새해 벽두 내 책상의 벽과 수첩의 일순위는 “주변 정리”로 정하여 써놓았다. 올해는 꼭 정리에 정리를 하리라 다짐하면서.

새해 첫 나들이.

산뜻하게 출발하기를 원했으나 아침부터 신발 한 켤레가 내 발목을 잡을 뻔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잡히지 않은 것은 그것이 묵혀 있었기 때문에, 무거운 신발이었기에 아싸! 이때다 하고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졌기에 가능했다. 결혼식에 가기 전, 작은 것이지만 마음먹음을 행동으로 이어갔으니 절반은 성공인가? 그런면에서 이젠 주변 정리를 위해 과감성을 발휘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이 소소한 기대가 소소한 기쁨을 안겨준다. (2020.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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