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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당할 자 누구랴” 요엘 2장 1절~17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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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년 01월 06일 (월) 09:36:58
최종편집 : 2020년 01월 06일 (월) 09:37:39 [조회수 :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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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당할 자 누구랴” 요엘 2장 1절~17절

 

여호와의 날

 

① (1절~11절)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 요엘이 전하는 메뚜기 떼는 자연재해를 넘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성전을 파괴하는 ‘이방열강의 군사적 침공’을 은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인생이 끝나는 ‘죽음’의 순간과 온 땅과 하늘이 무너지는 ‘세상의 종말’의 날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재난의 순간이다. 이 모든 때를 통칭해서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른다. 모양은 다르지만 내용은 끝을 의미하는 ’절망’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요엘의 예언은 불가항력적인 메뚜기 대재앙(국가의 멸망, 개인의 죽음, 위기와 절망)을 통해서 마지막 때 임할 심판의 날을 경고한다. 그날을 대비하는 믿음의 자세를 촉구하는데 최종적인 목적이 있다.

▶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메뚜기 떼로 상징되는 이방군대를 여호와께서 친히 진두지휘하고 계신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와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인 심판의 막대기일 뿐이다. (삼하7:14)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막대기만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막대기를 들고 계신 분에 주목해야한다. 삶에서 찾아오는 재난과 문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성찰해야 한다. 위기를 모면하는 증상치료보다 원인치료를 해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의 열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랴’ 여호와의 날이 두려운 까닭은 그 날을 당해낼 자가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예외가 없다. 재물과 명예, 인간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게 된다. 여호와의 날은 인간의 한계를 철저하게 자각하는 순간이 신앙의 자리요, 믿음의 출발선이다.

 

 

2.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① (12절~14절)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올찌어다”

▶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하신다. 다시 사는 유일한 길은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전심을 다한 회심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날에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금식’의 정신이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소제와 전제’는 물질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온전한 회복을 뜻한다.

▶ 핵심은 ‘혹시...누가 알겠느냐’라는 구절에 있다. 회개로 인한 회복의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회개에 의한 회복의 역사는 당연하게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용서, 구원과 회복은 내 공로(공덕)가 아니다. 다시 기회를 주실지 말지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결정에 달려 있다. 회개에 따른 용서와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회개와 참회조차 인간적인 노력이나 공덕의 수단(방편)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진정한 회개는 참회할 도리를 다하고 오직 주님의 선처를 구할 따름이다.

 

② (15절~16절)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장로들을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다 나와 전심으로 회개한 실례가 요나의 표적이다. (눅11:32) 예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니느웨가 요나의 경고를 듣고 전심으로 회개함으로 구원받은 놀라운 사건이다. (욘3:10)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그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니느웨 사람들은 비록 이방인들이었지만 진심어린 회개로 구원받았지만, 완고함으로 회개치 않던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③ (17절)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찌어다”

▶ 구원과 회복을 위한 기도는 나의 공로(참회)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은혜(긍휼)를 구해야 한다. (눅18:9~13)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 실 예는 모세의 중보기도다. (출32:14) ‘여호와께서 그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어 알게 하시고, 여호와의 이름이 존귀케 되길 원하신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기도해야 한다. ‘언약을 기억하소서’ 언약의 성취는 우리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그 실 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날에 우리가 마땅히 주님께 간구해야 할 가장 강력한 최선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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