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가까이 다가오는데 어린 것에게 떡국 한 그릇 먹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아이에게 떡국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고 싶어 전당포 문이 닫히기 전에 떡 사고 간장 사서 설날 아침 준비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빨아서 다듬어놓은 옥양목 치마 한 벌을 전당포에 맡겼다. “이십 전이라도 주시오.” 이 말을 들은 전당포 주인이 “치마를 어디에 쓰겠느냐”고 말하면서도 치마를 놓고 가라며 삼십 전을 내주었다. <1927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설날에 자식에게 떡국 한 그릇을 먹이려고 자신의 치마 한 벌을 전당포에 맡기는 가난한 어머니의 마음과 무뚝뚝해 보이는 전당포주인의 인정이 느껴지는 이 기사를 보면 그 시절에도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맞이하였다. 새해 첫날, 신정이라고 부르는 1월 1일이 오늘이다. 사실 신정과 구정이라는 구분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정책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총독부가 민족의 전통적인 큰 명절 '음력설'을 '구정'이란 말로 격하시키고, 사라져야 하는 낡은 인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신정만을 챙겨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신정은 새해 첫날로, 구정은 설날로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오늘은 새해 첫날과 설 명절에 먹는 떡국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1849년에 편찬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1819년 저술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문헌에서는 떡국이 정조차례(설날아침 차례지내는 풍습)와 세찬(설날 차례상과 손님대접을 위해 차리는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남선(崔南善 1890~1957)도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매우 오래된 풍속으로 상고시대의 신년축제시에 먹던 음복적(飮福的:제사를 지내고 난 뒤 그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성격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고 새로 시작하는 날엔 엄숙하고 청결해야 하기 때문에 깨끗함을 상징하는 흰 떡국을 먹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설날에 떡국을 만드는 방식과 넣는 재료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충청도지역의 다슬기떡국, 충청북도의 미역떡국과 충청남도의 구기자떡국이 있다. 전라도지역은 꿩떡국, 전라북도의 두부떡국, 전라남도의 닭장떡국이 있고, 경상도에는 굴떡국, 경상북도의 태양떡국, 경상남도의 멸치떡국, 황해도 개성식 조랭이 떡국과 강원도의 만두떡국 등 떡국을 만드는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떡국은 우리나라만 먹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설날에 떡국을 먹는다. 중국에서는 찹쌀로 만든 경단을 국물에 넣은 ‘탕위안(湯圓)’을 먹고, 일본은 된장이나 가다랭이로 맛을 낸 국물에 찹쌀떡을 넣은 ‘오조니(お雑煮)’를 먹는다. 평상시에는 잘 먹지 않다가 설날에는 꼭 챙겨 먹는 것이 똑같고 새해에 복을 부르는 음식이라는 관념도 비슷하다.

떡국 만드는 법을 소개하니 한번 만들어 보길 바란다.

1. 양지는 찬물에 30분에서 1시간을 담가서 핏물을 뺀다.
2. 떡은 만들기 전 물에 20-30분 정도 불려준다.
3. 냄비에 쇠고기, 물, 대파, 통마늘, 다시마, 무, 통후추, 양파를 넣고 센 불로 끓이고 끓은
   후에는 중불로 줄여 30-40분 정도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푹 삶아 육수를 만든다.
4. 만든 육수를 거름망이나 채로 걸러낸다.
5. 삶아진 양지는 건져서 찢거나 얇게 썰어둔다.
6. 육수를 끓이는 동안 달걀흰자와 노른자를 구분하여 황백지단을 만든다.
7. 냄비에 육수가 펄펄 끓어오르면 떡국떡, 다진 마늘, 국간장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너무 오래 끓이면 떡이 퍼지니 5분 정도 끓이는 것이 좋다)
8. 떡살이 동동 떠오를 때 어슷썬 대파,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9. 떡국을 그릇에 담고 잘라놓은 양지와 달걀 황백지단과 대파, 김가루를 고명으로 올려 맛있게 먹는다.

설날에 먹는 떡국에는 무병장수와 재물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길쭉한 가래떡처럼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바라고 떡을 동전처럼 잘게 썰면서 재물운을 소망하는 것이다. 또한 흰 떡은 ‘지난해의 묵은 때를 씻겨내고 그 흰 빛깔처럼 새해는 순수하고 흠 없이 맞으라’라는 뜻도 담겨 있다.

새해 첫날이 되었으니 떡국을 끓여 먹으면서 지난해의 잘못들과 아쉬운 미련들을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풍성함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