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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의 신앙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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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2월 22일 (일) 23:37:45
최종편집 : 2020년 01월 20일 (월) 02:13:44 [조회수 : 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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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신실한 신앙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을 꼽는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도에서 포기할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에 선출되기까지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체험한 신앙인이었다. 그가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을 과감히 수행한 것은 흑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의 일화다. 전세가 북군에 유리하지 못하자 링컨 대통령이 고심에 빠져 있었다. 그때 신자들이 링컨을 위로하며 “염려 마십시오. 이 전쟁 동안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링컨이 대답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심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는가 하는 점이요.”

남북전쟁 당시 소위 바이블 벨트로 불리는 남부의 백인들은 신실한 교인들이었다. 목화재배를 위해서 노예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남부에서는 그들은 성경에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기록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편이라고 믿고 열심히 기도했다.

물론 북부의 신앙인들도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남부에 비해서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지 않는 산업화된 사회였기 때문에 그들은 노예제도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리고 종이나 자유인이나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바울의 말에 의지해서 흑인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믿고 기도하며 싸우고 있었다.

이렇게 어느 한 사건을 놓고 두 편으로 갈리어서 양편이 모두 하나님께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경우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고민일 것이라는 농담을 한다. 정말 그런 경우에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물론 어느 편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는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결정하실 일이지만,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추론할 수는 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은 옳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자기편이라고 믿고 기도한다. 남북을 가릴 것 없이 당시 미국의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자기편에 계신다고 믿고 기도했고 무조건 열심히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대부분 그렇게 믿고 기도한다.

그러나 링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링컨은 하나님이 무조건 자기를 돕기보다는 자기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을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그를 도우실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악을 행한다면, 도와달라고 기도해도 자기를 도와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무조건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믿고 기도하는 신앙은 미숙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린아이들은 그들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면 무조건 다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그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울면서 떼를 쓴다. 그러면 부모는 마지못해서 그들의 청을 들어준다. 교회에서는 흔히 그런 기도를 부추긴다. 성경에서도 그런 기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렇게 어린아이가 부모를 무조건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신앙인의 기본 자세다.

특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체험적 신앙은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주는 데에 필수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 것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체험에 의해서였다. 그런 체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곁에 계신다는 확신, 그들의 편이라는 확신을 갖게 마련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하지만, 그러한 확신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성숙한 신앙에 이르러야 한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베드로와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라는 확신을 지녔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그들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다.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이 의인으로 취급해주신다는 것을 언급한 바울은 12장부터 16장까지에서는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12장 1절을 “그러므로”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그러므로”는 11장까지에서 그가 반복적으로 언급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너희를 구원하여 주셨으므로’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바울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편에 계시는 분이다.

그런데 바울은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에 이어서 너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만한 일을 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많은 목회자가 12장 이하에 주목하지 않는데, 로마서의 전반부만을 중시하는 것은 아주 큰 오류다. 1장에서 11장까지와 12장에서 16장까지가 합쳐져서 로마서 전체를 이루며, 전반부의 믿음과 후반부의 행함이 합쳐져서 온전한 바울의 신학을 이루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의 신앙은 로마서 전체에 기반을 둔 온전한 신앙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소홀히 하는 로마서 12장 이하에도 주목해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들 가운데서 가장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가 12장 이하를 중시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화평의 왕이 오셨다고 노래한다. 이 화평의 왕은 무력을 통해서 화평을 쟁취하려는 열혈당원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치중했던 하나님 사랑뿐 아니라 그들이 소홀히 했던 이웃 사랑도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화평의 왕은 분쟁과 대결을 그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세우라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링컨 대통령은 화평의 왕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가 수행한 전쟁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흑인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싸웠다. 그리고 그는 그를 모욕한 사람을 용납하고 정치 현장에서 한때 대결했던 사람들까지도 포용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그리고 로마서 12장 이하에 기록된 바울의 권면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가 변호사 시절에 스탠튼과 어느 소송사건을 함께 맡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스탠튼은 자기가 링컨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알자 “저런 시골 변호사와 변론을 함께 한다는 것은 내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라면서 그 변호를 거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렇게 모욕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링컨은 대통령이 되자 스탠튼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그 리고 그는 대통령 지명전에서 대결했던 슈어드와 체이스를 요직에 기용했다. 이런 것은 한국 교인들의 개인적인 삶에서뿐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링컨이 각료회의에서 한 말은 그가 화평의 사도임을 잘 보여준다. 그때 많은 사람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서 어린애들처럼 대통령의 얼굴을 보려고 백악관으로 모여들었다. 경찰이 막아서도 그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열광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1865년 4월 14일 열린 각료회의에서 그는 말했다. “이미 너무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조화와 융합을 원한다면 마음속의 원한이 소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계와 교회를 둘러보면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화평을 위해서 힘쓰기보다는 정쟁에 휘말려서 하나님이 자기편에 있다고 믿고 기도하면서 분쟁과 대결을 일삼고 있다. 어떤 기독교 정치인은 날마다 극단적인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많은 무고한 생명을 살상한 군사 구테타의 주범과 어울려 만찬을 즐기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목사의 품위에 맞지 않는 육두문자식의 막말과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신성모독적인 말을 내뱉으면서 정치 투쟁을 일삼고 있는 목사도 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정치풍자 소설에 『동물농장』이 있다. 어느 농장에서 동물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농장주에 반항해서 혁명을 일으켜서 돼지를 그들의 지도자로 삼는다. 그 후로 그들은 한동안 평화롭게 지낸다. 그런데 한참 후에는 그 돼지가 인간과 합작하여 동물들을 학대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오웰이 풍자하는 것은 악한 일을 하는 상대를 처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정권을 잡은 자가 머지않아 자기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악한 짓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오웰은 러시아의 혁명을 염두에 두고 이 풍자소설을 썼지만, 일반적인 정치 현실에도 이 풍자는 적용될 만하다. 정치란 실권을 잡으면 옛 여당이나 지금 여당이나 결국 같은 짓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당들도 그렇지 않은가? 전에 여당을 비판하던 야당이 이제 정권을 잡으니까 옛날의 여당이 하던 부정한 일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정당들이 차기에 정권을 잡기 위해서 이전투구하는 마당에 교회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당은 모두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이익집단이다. 교회가 나서서 이런 이익집단들 중의 어느 하나를 지지하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교회가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좌편향적인 사상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맞서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학교 교사보다도 교회의 목사는 편향적인 정치 문제에 깊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교회가 정치 세력과 손잡았을 때 교회가 세속화하고 타락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교회에서는 우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는 사람들을 양성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자기네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대화도 타협도 외면하는 정치 세력들을 향해서 나라를 위해서 일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혀야 한다. 교회는 이 사회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양심의 소리를 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교회가 정권욕에 사로잡혀서 서로 드잡이를 일삼는 정치판에 휩쓸리는 것은 세상의 빛이 되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이 땅에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우리는 예수님이 화평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링컨처럼 물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 편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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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12-23 10:30:47
노예해방 관련 링컨에 대한 지나친 偶像化는 오류, 링컨의 노예정책은 국가통합(통일)의 도구에 불과했다!
링컨의 奴隸觀은 아직까지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고 갈린다. <개인 링컨>은 노예해방에 반대했다. 남북전쟁 승리 후에도 자기가 부리고 있던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았던 점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개인 링컨과는 달리 <정치인 링컨>은 노예해방에 대해 수시로 말이 바뀌었지만 결국에는 남군(남부)에 속해있던 있던 노예들의 반란을 노려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링컨의 위대성은 노예해방이 아니라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를 통합(통일)한 데에 있다. 나라를 통합(통일)하는 과정에서 노예해방 문제는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즉 노예해방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통합(통일)과정에서 實用主義的으로 노예를 활용했을 뿐이다. 오로지 노예해방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노예해방 문제만을 뚝 떼 내어서 링컨을 지나치게 義人化시키는 건 요즈음 말로하면 역사왜곡이다.

이미 노예제가 합법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주는 그대로 두고,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서만 연방의회가 이를 법률로써 금해야 한다고 링컨 대통령이 주장하자 남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북부 역시 링컨의 태도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도 링컨이 우물쭈물하자 사람들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왜 링컨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가? <뉴욕 트리뷴>은 링컨의 모호한 태도를 공격하면서 즉각적인 노예해방을 촉구했다.

그러자 링컨은 편집국장 호레이스 그릴리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분명한' 태도를 밝혔다. “······ 나의 정책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의 제일의 관심은 연방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노예제를 허용하느냐 금하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만약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도 연방이 존속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방을 위해 모든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면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부는 해방하고 일부는 그대로 두어야 연방이 존속된다면 역시 또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링컨은 남부의 노예반란을 부추기기 위해 드디어 노예해방을 선언한다. "······ 미국의 대통령인 나, 에이브러햄 링컨은 ······ 반란주로 지정된 주에서 노예로 있는 모든 사람은 1863년 1월 1일을 기해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 이 선언은 진실로 정의를 위한 행위이며 군사상의 필요에 의한 합헌적 행위이다. 이 선언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인류의 신중한 판단이 있기를 기원하노라."

북부 내의 노예해방 반대론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반란州의 노예문제만 건드리는 현명한 링컨의 정치적 책략에 의해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남부의 수많은 노예들이 흑인의용군으로 북부에 가담하였다.

링컨의 위대성은 노예해방 문제를 국가를 통합(통일)하는 데 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적 혜안에 있다. 국가 누란의 위기에서 빛을 발한 링컨의 中道統合的 政治力에 감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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