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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개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호세아 13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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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2월 01일 (일) 14:57:59 [조회수 :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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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개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호세아 13장

 

 

1. 이스라엘의 패망

 

➀ (9절)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상숭배’ 때문이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세 가지(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인데 거기에 한 가지 실 예를 더해 우상숭배의 정체를 폭로한다. 왕 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왕 노릇하는 것이다. 주인 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인노릇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메시아)는 왕이라는 뜻이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그리스도’ 아닌 것을 ‘그리스도’로 섬기는 일이다. 물질(돈, 감투, 힘, 쾌락)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 자신’이나 ‘우리’도, 그리스도가 되어선 안 된다. 오직 예수님만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인(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왕)로 모시고 사는 삶이다. 세속적인 가치(만들어진 신)를 좇는 우상숭배는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이다.

 

② (10절)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 ‘전에 네가 이르기를’ 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킨다. (삼상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건국초기 사무엘에게 왕을 구한 것은,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통치를 버린 것이다. 왕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왕 노릇하려는 속셈이었다. 이와 더불어 북이스라엘 건국당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사건이다. (왕상12:19~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다윗의 길 VS 여로보암의 길의 차이점, 둘 다 왕이었지만 다윗은 왕 세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따랐지만, 여로보암은 왕을 세우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왕 노릇했다는 점이 다르다. 청지기가 주인노릇을 하는 행위다. 주님의 것을 내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죄악이다.

 

③ (11절)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느니라”

▶ (잠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18:18)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 제비뽑기는 단순히 의사결정방식이 아니다. 제비뽑기에 담긴 정신은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자리)을 구하는 데 있다. 제비뽑기의 전제는 ‘기도’다. 신뢰(삶의 주관자 되심을 경외하는 믿음)를 바탕으로 한 의뢰(기도, 묻고 여쭙는 것)다. 천국의 본래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 분열과 다툼은 종식되고 평화가 온다. 교회에, 가정에, 나의 삶에 하나님의 자리(최종결재권)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통치가 회복되면 ‘하나’되어 살고, 하나님의 통치를 떠나면 ‘분열과 다툼’으로 죽는다.

 

 

2. 징계의 목적

 

① (12절)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 (메시지성경) ‘내가 너의 배신행위를 일일이 기록해두었다. 에브라임의 죄는 모두 문서화되어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있다’ 우상숭배의 증거가 명백하게 다 드러났고 죄에 대한 형량이 확정되었다는 뜻이다. 소위 ‘빼박’(일이 몹시 난처하게 되어 그대로 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음. ‘빼도 박도 못 하다’를 줄여 이르는 말)이 되었기에 죄 값을 치르는 일만 남았다.

 

② (13절)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 기회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은유적으로 전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단순히 죄악 때문이 아니다. 회개치 않는 완고함 때문이다. 자신의 더러움을 씻지 않고, 질병을 인정하고 치료받지 않아서다. 지체하지 말고 빨리 회개하는 게 지혜다. (메시지성경) ‘진통이 시작되고 아기가 나올 시간이 되어도, 아둔한 에브라임은 태를 열고나올 줄 몰랐다. 생명으로 나오는 길이 열렸음에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③ (14절)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리신다.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주신다. 사랑하기 때문에,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구원받는 길은 이것뿐이다. 유일한 희망이 여기에 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시키시는 데 있다. 때리시고 어루만지신다. 호세아가 음행한 고멜을 버리지 않고 사서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것처럼 끝까지 사랑하셔서 마침내 구원하신다.

▶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도바울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을 증거 하면서, 호세아 13장14절의 본문을 인용한다. 죽은 자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 한다. 비록 죽어도 다시 살리신다. 죽어야 다시 산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의에 대해서 산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삶이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고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이걸 깨닫는 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 방식이 징계다.

▶ (히12:6,10,11)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징계 받기 전에 빨리 깨닫는 게 지혜다. 징계를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달게 받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욥23:10)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3.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① (15절)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 ‘여호와의 바람’(진노의 잔)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은유적으로 기록한다. (메시지성경) ‘하나님의 광풍이 오고 있다 노호하며 사막에서 오고 있다.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어, 폐허와 잔해만 남길 것이다. 도성은 약탈당할 것이며,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은 다 사라질 것이다’ 대제국 아시리아의 침공이다. 주신 분께서 거두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인생에 적용하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빨리 깨닫는 것이 지혜다.

 

② (16절)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 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 ‘사마리아가 자기 하나님께 맞서 반역했으니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죄악에 대한 무서운 형벌을 기록한다. 기독교의 용서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용서를 받으려면 자신의 죄를 뉘우칠 뿐만 아니라 죄 값을 치러야 한다. 벌을 달게 받아 속죄하는 게 마땅하다. ‘그의 백성은 죽임을 당하고, 아기들은 바위 위에 메어침을 당하며, 임신한 여인들은 배가 찢길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부모의 죄악이 죄 없는 후손들에게 임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성경에서 자녀는 내일의 희망을 가리키는 은유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게 미래는 없다.

▶ (눅13:1~9) 빌라도에 의해 갈릴리사람들이 처형 당한 사건과 실로암에서 망대 붕괴사고로 사망한 사건들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상숭배를 일삼던 북이스라엘의 비참한 최후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남 얘기가 아니다. 어느 민족 누구든지 회개치 않으면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타산지석의 교훈을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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