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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기다림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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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2월 01일 (일) 01:33:38 [조회수 : 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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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절이다. 절기의 의미는 ‘기다릴 대’(待)와 ‘임할 임’(臨) 속에 그 내용이 다 담겨있다. 이미 오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 그 ‘이미와 아직’ 사이에 우리 시대는 존재한다. 어둠이 더 깊이 물들고, 더 가까이에서 익숙해질 무렵 마침내 빛의 계절이 찾아 올 것이다.

  프랑스 속담에 “두 요한이 일 년을 나눈다네”라는 말이 있다. 두 요한은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인데, 세례 요한이 밤이 점점 늘어나는 6월 하지의 성인이라면 사도 요한은 밤이 차차 짧아지는 12월 동지의 성인이다. 두 사람은 모두 빛의 갈림길을 자신의 날로 삼고 있다. 동지로부터 두어 날이 지나면 고요한 밤을 맞이한다.

  대림절은 아직 어둠이 깊지만 그 어둠에도 불구하고 참 빛을 바라는 절기이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6). 당시 흑암과 그늘에 대한 강조는 어두움이 단지 밤을 빗댄 것이 아니라, 어둠만도 못한 각박하고 위험한 세상에 대한 비유임을 느낄 수 있다.

  돌아보면 어둠의 세력은 빛을 가두어 두려고 하였지만, 결코 깜깜함이 진리를 숨겨 둘 수는 없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 어두운 것은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시대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마음의 등불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대림절에 밝힐 기다림 초의 의미일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남다른 빛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가리켜 해가 뜨는 동쪽에서 온 현인이라고 불렀는데, 이른바 동방박사이다. “새로운 시대의 등불은 언제나 꿈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법”이라던 문익환 목사의 말마따나 그들은 여전히 꿈같은 성탄의 신비를 전해주고 있다. 어둠 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권력의 눈 부라림을 피해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춰야 하였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야 탄생이라는 위대한 드라마의 단역에 불과하지만, 이천년이 지나도록 그들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에서 온 세 사람의 신분은 매기(Magi)였다. 역사가 삐드는 그들을 멜키올, 카스파르, 발타살로 이름 붙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메시야를 처음 경배한 이방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지금껏 많은 이야기를 생산해 내고 있다.

  별빛을 따라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의 박사는 인생의 세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멜키올은 키가 작고 수염이 긴 사람으로 황금을 선물로 가져왔고, 카스파르는 키가 크고 수염이 없는 30대 젊은이로 유향을 선물로 가져왔으며, 발타살은 얼굴이 검고 수염이 난 40대로 몰약을 드린 인물이다. 그들은 우리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대표한다.

  그들은 별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빛을 쫓아 길을 떠났다. 연구자에 머물지 않고 행동에 옮긴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선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불순한 시절에 동방박사의 용기는 빛나는 신화가 되었다. 어떤 전설에 의하면 동방박사는 제4의 인물을 넘어 열둘이었다고도 한다.

  깊은 어둠 속 미움과 증오와 가난이 존재하는 곳에는 메시야에 대한 목마름이 있기 마련이다. 복음은 평화가 파괴당한 그곳에서 메시야의 어머니는 이미 해산의 진통을 시작했다고 증언한다. 이미 만삭인 어머니가 몸을 푸는 날, 이 땅의 권력자들은 당황할 것이며 평화를 목말라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중국 사람 꾸청은 그의 시 ‘어느 세대’(一代人)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두운 밤이 나에게 어두운 눈을 주었지만 나는 그 눈으로 빛을 찾는다.”
  꾸청이 열아홉 살 때 쓴 시인데, 문화혁명으로 농촌으로 하방했던 아버지와 함께 베이징으로 복귀하면서 쓴 것이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단지 자신의 내면과 영혼의 세계만을 더듬었을까?

  지금 홍콩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대림절을 맞이하고 있을까? 동양의 불야성이었던 홍콩 역시 나락과 같은 깊은 어둠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들이 꿈꾸는 희망과 자유에 대한 몸부림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곳이나 여기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실만큼은 뜨겁게 공감한다. 역사의 어둠이 훤히 걷힐 때까지 그들이 밝힌 기다림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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