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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구슬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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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1월 24일 (일) 01:34:30 [조회수 : 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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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동안 구슬공예가 유행을 탔다. 비교적 값싼 소재와 손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 때문에 여성들의 취미생활로 한두 번쯤 도전해 보았을 것이다. 내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이다. 물론 작은 구슬과 씨름하는 일은 아주 고된 일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슬공예는 무릇 민족적이고, 가히 세계적이다. 그만큼 고유하고 또 보편적이다. ‘비즈’라고 불리는 구멍 뚫린 구슬의 소재는 민족마다 자연환경에 따라 유리, 돌, 보석, 조개, 진주, 뼈로 만든 것이 종류별로 존재한다. 플라스틱 제품일수록 말할 나위 없이 다양하고 형형색색 반짝인다.

  구슬공예의 원조처럼 여겨지는 인디언들에게는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꼭 지켜야할 원칙이 하나있다. 구슬들 중에서 반드시 흠이 있는 것 하나를 넣어 꿰는 것이다. 그 흠이 있는 구슬은 ‘영혼의 구슬‘이라고 부르는데, 영혼을 가진 존재는 그 무엇도 완벽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2005년 5월, 하노버에서 열린 독일교회의 날에 참여한 일이 있다. 1000개 쯤 진열된 부쓰들을 지나던 중 에이즈(AIDS)를 이슈로 내건 캠페인 코너에 들렀다. 그곳은 에이즈와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으려고 홍보 중이었는데, 지나는 사람에게 구슬 십자가를 만들지 않겠냐고 웃으며 제안하였다. 겨우 1유로를 내면 예쁜 구슬 십자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욕심에 멈춘 걸음이었지만, 막상 도전해보니 기대와 전혀 달랐다. 네 개의 못을 구부려 십자가 틀을 만들고, 그 위에 구슬 치마를 두루는 일로 언뜻 보기에 간단한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작은 구슬은 굵은 내 손가락에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자꾸 구슬이 손가락 밖을 벗어났고, 떨어진 구슬은 멀리 도망가기 일쑤였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에이즈 홍보전시장에서 뜬금없이 구슬 십자가를 만들도록 했을까?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을 잠시 붙잡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마치 좁쌀만 한 작은 구슬을 꿰는 것이 힘들 듯, 세상에 호락호락한 일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의도 같았다. 그런 자잘한 관심조차 기울이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에이즈 환자들의 고통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2006년 서울에서 세계감리교대회(WMC)가 열렸을 때 한 미국인 여성 목사가 내가 차린 십자가전시장에 들렀다. 그는 자신이 오클라호마 쿡슨 힐에서 체로키 인디언 사역을 하고 있다면서, 자기네 구슬 십자가도 이곳에 전시되기를 원하였다. 그가 즉석에서 기증한 십자가는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하던지, 체로키 인디언의 심벌이 연합감리교회 십자가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신의 목에서 풀어낸 목걸이였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구슬 십자가들을 여러 종류로 꿰게 되었다. 독일 복흠에서 이웃하며 살던 멜링히톤교회 슈타인 뷔테 목사는 케냐에 다녀오면서 구슬 십자가를 선물하였다. 마사이 십자가라고 하던데, 그 때만해도 아프리카 출신이라면 이런 정도의 구슬 십자가는 수월하게 만드는 줄 알았다. 돌아보니 깨알 같은 구슬을 크기와 색별로 조화롭게 이은 그들의 재주가 얼마나 비상한지 놀랍기만 하다.

  가톨릭교회가 밝은 구슬을 이용해 기도용 묵주를 만든다면, 정교회는 검은 매듭을 지어서 기도용 묵주로 활용한다. 개신교회는 따로 정형화된 것이 없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교회가 보급하는 ‘믿음의 진주들’이 대표적으로, 루터교회가 권장하는 기도법이다. 크고 작은 진주들을 서로 엮어 한 줄에 꿰었는데, 이를 색깔과 크기 별로 주제와 이름을 붙인 후 손가락으로 천천히 굴려가며 기도하는 방식이다.

  경건훈련을 위한 기도생활로 고안된 ‘믿음의 진주들’은 모두 18개의 다양한 진주를 둥글게 연결한 것이다. 가장 크고 중심에 있는 황금빛 진주는 하나님이다. 이어서 침묵을 뜻하는 작고 길죽한 진주가 있고, 그 곁에 붙인 흰 진주는 진주처럼 소중한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이어서 붙어 있는 크고 흰 진주는 세례를 뜻하는데, 믿음의 사람은 세례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새 삶을 산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진주들마다 신앙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있다. 두 개의 빨간 진주는 사랑, 하나의 검은 진주는 밤, 인생의 어둠,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 희고 큰 진주는 부활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진주를 한 원으로 연결한 것이다. 서로 관계를 맺고 꿰어 온 진주들은 내 삶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믿음의 진주들’은 사도신경에서 온 기도법이다.
 
  어느새 교회력이 한 바퀴를 돌았다. 오늘은 마지막 주일인 영원한 주일이다. 기도용 묵주가 원형인 까닭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성을 의미할 것이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작은 구슬로 꿴 기도의 궤도를 순례하는 사람이라면 1년 365일 커다란 시간의 원을 한 바퀴 도는 일도 그리 두렵지 않을 것이다. 세월의 신비는 구슬과 구슬이 이어지듯, 날과 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구슬은 ‘믿음의 진주들’처럼 두려움과 외로움을 지나고, 어두운 밤도 마주한다. 구슬 같은 인생이라면 삭막한 광야를 거치고, 절망스런 막장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빛나는 희망을 보기도 할 것이다. 모름지기 견딜만한 인생이라면 그런 흠 많은 영혼의 구슬을 서너 개쯤 품고 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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