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들뜬 마음에 밤을 지새우던 소풍 날 도시락으로 싸주셨던 메뉴는 김밥이다. 1년에 한두 번 소풍갈 때나 먹었던 김밥이 요즘은 한집 건너 한집인 치킨 집 중간의 그 한집이 김밥집이라고 말할 만큼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자녀들 소풍에 김밥을 직접 싸서 도시락을 챙기는 집은 많지 않다. 가까운 김밥 집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해졌기 때문이다.

김밥의 전문가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김밥을 싸서 포장을 해주는 모습을 보면 김밥 만들기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지만 처음 만드는 사람에게 김밥 만들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김밥은 먹는 사람이 편한 음식이지 만드는 사람에게 편한 음식이 아니다. 밥이 익은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질감이 느껴지니 밥 짓기도 중요하고, 참기름과 소금의 양도 예민하게 맞추어야 하고, 속재료를 준비하는 일도 번거롭고. 김밥을 마는 것도 자르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 저녁은 김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있는 재료로 김밥 속을 채우면 되겠다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와 스팸과 계란이 보인다. 프라이팬에 잘게 자른 김치를 올려 볶아주고 스팸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사면을 구워주고 계란도 지단을 만들어 넉넉히 잘라 놓았다. 대나무 김밥말이틀 위에 김 한 장을 올려놓고 소금과 참기름을 간하여 섞어준 밥을 한 주걱 올려놓는다. 물 묻힌 손가락을 털어 밥알을 평평하게 펴 놓은 후 준비한 속을 올려준다. 그리고 속을 촘촘히 눌러서 당겨가며 김말이 틀을 말아준다. 잘 말지 않으면 김밥 속에 공간이 생겨 나중에 김밥 속이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 끝부분은 밥알을 조금 붙여주거나 기름을 발라주어 붙여준다. 말아놓은 김밥위에 참기름을 발라주고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른다. 완성된 김밥을 내어놓으니 아내와 딸이 맛있다고 감탄한다.

김밥의 필수 재료인 김에 관한 가장 최초의 문헌은 고려 충렬왕 때 편찬된 ‘삼국유사’(1285)이다. 삼국유사에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에서는 이미 조선시대 초기인 1420년경에 경남 하동 지방의 토산품으로 ‘해의’(오늘날의 김)가 전해지고 있다.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에 이 김을 종잇장 형태로 만들어서 우리가 흔히 먹던 주먹밥에 싸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에서는 정월대보름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에 ‘복쌈’이라는 음식을 소개하는데 복쌈은 취나물을 볶아 밥을 배추 잎이나 김에 싼 음식을 말한다. 특히 취나물과 오곡밥을 버무려 김에 싼 음식을 ‘김쌈’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김밥의 원조이다.

‘해의’라 불렸던 이름이 김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인조18년(1640년경) 김양식방법을 창안하여 보급한 김여익(1606-1660)의 성을 따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여익은 전남 영암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조정이 항복하자 태인도에 숨어살던 중에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이용한 김 양식 방법을 창안하여 보급하였다. 이후 광양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는데 하루는 임금이 광양 김을 반찬삼아 수라를 맛있게 드신 후 음식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한 신하가 "광양 땅에 사는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고 아뢰자, 임금이 "그럼 앞으로 이 검은 바다풀을 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으로 부르도록 하여라" 분부하여 ‘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김밥이 일본의 ‘후토마끼’(초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을 먹은 역사는 우리나라가 오래되었고 속재료를 넣어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된 것은 일본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김밥으로 토착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록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400년이나 후인 1802년 ‘각반부류’라는 요리책에 네모난 김을 생산한 기록이 있고 일본의 김초밥이 처음 기록된 것은 1829년이다. 이때는 조선 순조왕때인데, 그 때 이미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김밥이 존재했음을 생각해본다면 밥을 김에 싸먹는 형태의 김밥은 우리가 먼저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원통형태의 김밥모양은 일제강점시 시대에 들어온 일본의 ‘후토마끼’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김밥과 후토마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가장 큰 차이는 밥양념의 차이다. 후토마끼는 식초로 간을 하고 김밥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다. 후토마끼는 일본식 계란말이와 생선, 야채가 들어있는 단순한 형태를 가지면서 와사비가 들어있고 꼭 간장에 찍어 먹지만 김밥은 생선회나 와사비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속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간다. 후토마끼는 회를 만들고 남은 잔여물을 김에 말아 고객에게 제공하는 음식이었지만, 한국은 한 장의 김 안에 지역의 쌀과 채소 등 지역의 농축수산물을 전부 표현하는 메인 음식의 개념으로 본질적으로 그 가치의 차이가 있다.

김밥을 만들면서 머릿속에 '융합[融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융합’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사물을 서로 섞거나 조화시켜 하나로 합함, 서로 섞이거나 조화되어 하나로 합쳐지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하나로 합쳐져서 새로운 것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양한 재료들의 다양한 맛이 하나되어 전혀 다른 새로운 맛과 모습으로 탄생하는 김밥의 융합정신이 교회에 필요한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교회는 김밥의 다양한 속재료처럼 서로 다른 연령, 직업, 성격, 은사, 경제적 여건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갈등의 요소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잘 섞이고 조화를 이루어 특색 있고 건강한 공동체로 새롭게 융합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밥이지만 김은 사실 김밥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다만 김은 김밥을 김밥답게 만드는 중재역할을 한다. 목회자는 어쩌면 김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목회자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의 문제점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돕고, 갈등의 요소에서 중재역할을 잘 해야 한다.

김밥의 융합에 중요한 두 축이 있는데 그것은 김과 밥이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어떤 속재료도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탄력성이 김밥의 무한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 된 것처럼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한 포용력과 어떤 상황이나 사태에도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김밥의 두 축인 김과 밥처럼 중요한 포용력과 탄력성으로 융합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명 또한 목회자에게 있다. 어떤 교회에 부임하든 간에, 어떤 성도들을 목양하던 간에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으로 품어 안고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야 하는 사명 말이다. 김밥을 먹으면서 다시 한 번 도전을 받으며 교회의 역할, 목회자의 역할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