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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왜구, 그런 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인가진짜 내로남불이 덜 내로남불을 보고 내로남불이라 비난한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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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1월 11일 (월) 00:48:20 [조회수 :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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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을 가리켜 토착왜구라니…

 

토착왜구, 좀 거친 말이다. 아니 심히 난폭한 말이다. ‘토착’이란 대대로 그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옛날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고 다니던 일본 해적을 가리켜 ‘왜구’라 하는 것이니, 이 말 ‘토착왜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민 중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임이 틀림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말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 ‘토착왜구’란 ‘토왜’라는 말을 풀어 쓴 것이라는 게 정설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이 ‘토왜’라는 말이 처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은 1908년 4월 5일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실린 ‘壹團厲氣凝聚하야 一進會가 生出이라 大和魂魄換着하니 土倭之稱難免이라 自衛團의 兼毒으로 傳染病이 熾盛하니뎌 心腸을 淸潔하지’라는 말에 나온 것이라 한다.

그리고 애국지사 정암 이태현(1910~1942) 선생의 문집 <정암사고(精菴私稿)>에 ‘수왜십죄(數倭十罪: 왜인들의 열 가지 죄)’라는 항목이 있는데, 거기에 ‘토왜가 원수와 같은 오랑캐를 끌어들여 종묘사직을 망하게 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의 오랑캐는 물론 왜인을 지칭한다.

그런데 ‘토왜’를 풀어 쓴 말 ‘토착왜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가 지난봄 3월 14일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말해 역사왜곡논란이 일어났다. 민평당 문정선 대변인은 그 다음날인 15일 ‘나 대표가 토착왜구라고 커밍아웃했다’ 했으며, 이에 곧바로 자한당 이양수 대변인은 ‘친일매도 비판과 단어선택이 도를 넘었다’며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평당도 이를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았다. 정동영 대표가 “토착왜구가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을 휘젓고 있다”며 공격의 고삐를 죄었다.

‘반민특위’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의 약칭으로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를 말한다. 그러나 친일 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반민특위의 활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친일 세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들이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였다. 그 결과 사회는 정의가 무너져 가치관이 혼란에 빠졌고 이기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부연설명하자면 반민특위는 광복 이후에 제헌헌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합법적인 조직으로 친일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강제로 해산하면서 결국 친일잔재청산은 물을 건너가고 말았다는 것이 국민 다대수의 인식이다. 그런데 그런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들이 분열됐다고 하니 비판이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토착왜구라니 너무 심하다는 생각 또한 지우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같은 민족 대한민국 국민을 보고 토착왜구라 하는 것보다 더한 막말이 어디 있겠는가.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그러나 세상만사는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정암 이태현 선생의 <정암사고>보다 먼저 1910년 6월 22자에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을 실어 토왜를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이라 정의하였다.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역시 거칠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이를 좀 순화하여 말한다면 ‘혈통적으로는 한국인이 분명하나 의식은 일본인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이 땅에 그런 사람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없다고 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한다. 아니 없기는커녕 득실득실하다는 것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그렇게 친일이 도를 넘어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사람이 많다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들은 보통사람이라면 몸서리치게 지긋지긋하여 생각하기조차 끔찍했던 그 일제 36년을 가리켜 이 땅을 근대화시킨 거라며 긍정적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 국민의 강제징용에 위안부, 식량수탈 같은 피해도 부정한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전(戰前)의 메이지 헌법시대, 그러니까 제국시대로 돌아가는 걸 목표로 하는 일본회의(日本會議)를 정치적 기반으로 한 아베 정권의 주장을 기를 쓰고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지금 나라에는 옳고 그름이 사라지고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토착왜구들이 애국시민 행세를 하는데도 그게 자기 진영의 사람이라면 박수를 보낸다. 아니 함께 토착왜구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토착왜구라는 말만 나와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말한다. 토착왜구란 좌익들이 보수진영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말이다. 5.18과 세월호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는 토착왜구가 된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금지령이 내렸을 때 가장 좋아 한 것은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고 경제 불황은 일본 때문이다라 하려 한 현 정권이다. 등등의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말 그렇다면 이 땅에는 토착왜구가 없다는 말인데, 정말 그런가.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인’ 같은 사람들이 정말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는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말이다.

한 유명 대학의 모 교수는 위안부에 대해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다’며 ‘매춘의 일종’이라고 한다. ‘살기가 어려운데 조금 일하면 돈 받는다는 매춘 유혹이 있다. 예전에도 그런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그를 한 거대 정당이 혁신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의 자리에 앉힌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박찬주 대장을 아십니까? '귀한 분'이랍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옳고 그름이 사라진 것은 물론 토착왜구와 같은 친일적 문제만은 아니다. 요즘 공관병 갑질로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했던 장본인 박찬주 대장이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다. 거대 야당이 영입 제1호로 지목하면서부터이다. 논란이 이는데도 당대표는 '귀한 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전에는 군인권센터 소장을 겨냥해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말을 쏟아내기도 한 인물인데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 다대수의 염원이 담긴 검찰의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출범하게 되자 이에조차도 반대하거나 몽니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검증이 다 된 것’ ‘검증이 끝난 얘기’라고도 하는데, 정말 그런가.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싶다. 야당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는데,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해도 과오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필자가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에 있다. 우리는 그때 세월호에서 희생된 유민이의 아빠 김영오 씨를 포함한 유가족들이 한 광화문에서의 단식투쟁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식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피멍이 든 가슴에다 오랜 단식으로 배 가죽이 등에 붙은 그들 옆에서 냄새 진한 피자와 치킨 같은 음식을 폭식하며 빈정거리고 약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야비하고 잔인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기는 그야 별의 별 사람도 다 있는 것이 세상이다 보니 그렇다 할수도 있지만, 가슴에 금배지를 달만큼 지체 높은 인사가 그 유족들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면 믿어지겠는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자식 팔아 내 생계 챙긴 것’이다.

요지경 같은 이야기는 또 있다. 알츠하이머로 5.18 관련 재판에도 나갈 수 없다고 버티던 전두환 씨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골프를 치는 모습이 공개되어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상대방의 비난성 말을 곧잘 받아넘겨 맑은 정신임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야 모두가 그런 자로 내놓은 사람이니 그렇다 치지만, ‘전두환은 영웅’이라고까지 추앙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에조차 그 같은 사고에 찌든 사람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5.18은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그냥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된 것’이라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북좌파들이 지금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한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그 같은 발언이 나온 그때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말 자체만을 들려주며 국회의원이 한 말이라 한다면 누군들 믿을 수 있겠는가.

 

 

혹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미국인 같은 사람은 없는 것일까

 

정치란 본래가 지저분한 것이고 그런 것이 정치판인데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필자도 그렇다는 데에 아니라 할 생각은 없다. 지난봄(4.29.)에는 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제일야당을 지칭해 ‘도둑놈들한테 이 국회를 맡길 수가 있겠냐’ 했다. 이게 국회의원이 그것도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런가 하면 바로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국회 운영위원회의에서 청와대 국정감사 진행 중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가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우기지 말라’는 어휘를 써 가며 말하자, 뒤에서 듣고 있던 강기정 정무수석이 ‘우기는 게 뭐예요. 우기다가 뭐냐고’라고 소리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정무수석이 할 일이 무엇인가. 국회 및 여야 정당과의 소통, 협력이 주요 업무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청와대를 5공 독재의 권력시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 되다 보면 양비론이 되어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이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회고 나라고 간에 진정한 의미의 발전은 물 건너가고 말게 된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하물며 인간세상, 그것도 정치판인데 옳기만 하고 바르기만 한 집단이나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나의면 그쪽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못이 크면 그래선 안 된다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고 나라고 더디더라도 발전해 간다. 그놈이 그놈이라 해서는 발전은 없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이라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가 있고 7시간도 더 지난 시간에서야 중대본을 찾아 ‘다 그렇게 구명 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잠꼬대가 아니고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한 대통령, 허구한 날 머리손질에 2시간씩이나 정성을 들인 대통령은 어떤가. 그가 문 대통령보다 더 유능하고 책임감이 강한가. 그리고 그가 대통령 때의 집권당은 어느 당이었는가.

문 대통령이 한미관계를 파탄 냈다고도 한다. 대미관계가 조금만 껄끄러워져도 나라가 곧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법석을 떠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미국과 사이좋게 지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

우리는 지금도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의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탄 카트를 운전했다. 그 운전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함박웃음을 웃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대미외교의 쾌거라 치켜세웠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게 무엇을 주고 받은 대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필자로서는 우리가 미국에 왜 이렇게도 사족을 못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집회에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애국심의 발로라 할 수 없는 것도 아닐 테니 그렇다지만, 대형 성조기까지 등장시킨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미국인’이고 싶은 것일까.

이제라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조금씩이라도 옳고 바른 길로 나갔으면 좋겠다. 의인이 없는 것처럼 바르기만 한 집단, 옳기만 한 사람도 없으니 조금이라도 나은 쪽에 힘을 실어 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차선이 없으면 삼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애국이고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요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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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11-11 09:30:51
아무 대나 함부로 내로남불을 같다 붙이지 말라!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뻔뻔하게 조국 일당의 국정농단을 자초한 자 역시 그 자리에서 내쫓아야 할 것이다. 최순실이와 어깨동무한 자를 그 자리에서 내쫓을 때 <좌파+우파일부>가 함께 행동하여 탄핵하였다. 나 역시 우파이지만 박근혜를 내쫓는 데 일조하였다.

그런데 박근혜보다 더 무능한 문재인을 내쫓는 일에는 좌파는 입을 다물고 있다. 오히려 감싸고 있다. 이게 바로 내로남불의 극치이다. 아무 대나 함부로 내로남불을 같다 붙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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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11-11 09:38:56
성조기 흔드는 이유는 공산(사회)주의세력과 싸우고 있는 民心에 미국도 동참하라는 요구!

정권을 잡기 전엔 미국을 욕하다가 정권을 잡은 후엔 미국에 찍소리도 못하고 2분짜리 정상회담이나 구걸하고 나자빠진 문재인 따위가 등신인가? 성조기를 들고 中共정권의 허수아비인 홍콩 정권에 데모하고 있는 홍콩인(反습근평세력)이나 김정은 수석대변인 정권에 데모하고 있는 反文人(反문재인세력 중 일부)이 등신인가?

현재 데모하고 있는 홍콩인(反습근평세력)이나 현재 데모하고 있는 反문재인세력 중 일부가 성조기를 흔드는 이유는 공산(사회)주의세력과 싸우고 있는 民心에 미국도 동참하라는 요구이다.

일반민중이 성조기 흔들고 나자빠졌다고 성토하는 데... 그러면 장사치 트럼프에게 2분짜리 정상회담이나 구걸하고 나자빠진 세력의 수장과 그 수장의 비굴한 행태에 대해선 입도 벙긋 못하는 그 똘마니들은 뭐라고 성토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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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11-11 09:29:45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반민특위 활동에 제동을 건 이유
1945년 12월 중순 서울의 국일관에서 열렸던 귀국 임정간부 환영회에서 해외출신 신익희가 “국내에 있던 사람들은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 친일파!”라고 하자 국내출신 장덕수가 “그럼 난 어김없는 숙청감이군 그래!”라고 받아치며 민망할 정도의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국내파와 해외파의 첨예한 의견 차이에 대해 해외출신 이승만은 “악질적인 독립운동 방해자 이외에 친일파란 있을 수 없다”고 하였고, ‘중립적 견해’를 가진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하였습니다.

빨치산 북한과 대결하면서 동시에 건국해야만 했던 이승만정권의 입장에서는 ‘惡質친일파’를 제외한 ‘順日친일파’를 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빨갱이들의 난동이었습니다. 빨갱이의 난동을 막기 위해 ‘악질친일파’를 제외한 전 국민이 똘똘 뭉쳐야만 했습니다. 반민특위활동에 대한 약간의 제동은 ‘순일친일파’에 등을 돌리고선 빨갱이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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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11-11 09:26:52
당신들이 친일파를 아는가? (글쓴이: 이경숙, 2005년 안티조선에 올린 글 펌)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는 다섯 가지 이슈의 첫 번째는 바로 친일문제입니다. 시간적으로는 가장 먼저가 되는 이슈인데, 이 친일문제가 민족 분열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가 아니라 오히려 80년대 들어서부터입니다. 해방된 직후에는 오히려 친일문제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3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제의 통치하에서 같이 살아온 입장에서 2천만 동포가 전부 동병상련의 심정이었고, 친일파라고 누구를 손가락질 하고 할 만큼 떳떳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때문이고, 또 직접 일제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일제의 통치가 얼마나 혹독했으며, 그 시대가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야만적이고 광폭했던 시대였는가를 몸소 체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설사 친일파라 해도 어느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를 해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나도 그 심정, 그 입장을 안다'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상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욕할 염치나 자격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냥 용서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악독한 친일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반민특위가 처벌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민특위가 애초의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악랄한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단죄가 어느 정도는 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친일파 척결과 일제시대의 청산이라는 것이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더욱 첨예하고 심각한 우리 민족 내부의 분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이 이제 다 죽고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광복동이가 지금 환갑입니다.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다 칠순 이상의 노인들입니다. 70대 이하는 일제시대를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모르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생각을 해서 '친일파는 역적'이라는 단순도식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후대들은 친일을 용서할 수 있는 체험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 해방이 된 그 날에 매일 같이 천황의 만수무강을 비는 기사를 실었던 조선일보 사옥이 민중들의 손에 불태워지지 않았으며, 왜 친일반민족신문인 조선, 동아의 경영자들이 일본으로 도망가지 않고 우리나라 땅에서 여전히 존경받는 지도급 인사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는지, 왜 귀국한 상해 임정의 요인들도 조선, 동아의 경영인들과 시국을 의논하고 나라를 함께 걱정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은 조선, 동아가 지면에 천황 일가의 사진을 싣고, 성전 완수를 촉구하는 기사를 싣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랬을망정 한글로 발행되는 조선인의 신문이 폐간되지 않고 나와준 것만 해도 감사하고 대견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선인은 조선, 동아의 기자들을 전부 애국자로 생각했었고, 그건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고,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 지를 알지도 못하는 후대들이 당시 신문에 실렸던 단편적인 사진과 기사들에 흥분하고 선동된 나머지 세계 역사에 드물 정도의 민족적 자산인 두 신문사를 친일반민족지로 낙인을 찍고 독립기념관에 보존된 윤전기를 야만적으로 끄집어내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일은 지난 세월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고, 어떤 세력에 의한 음모의 일환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한가지 이야기를 더 해 드릴까요? 우리나라 공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이 교내에서 데모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아무도 그런 일을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것이 91년 아니면 92년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데모의 이유는 고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의 동상건립에 반대하는 데모였습니다. 김정렬장군은 초대와 3대 공군참모총장이었고 해방 직후에 아무 것도 없던 무에서 그야말로 맨땅에서 조국의 공군을 건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6.25때 그분의 지휘 아래 우리 빨간마후라들이 북한과 중공의 공군을 상대로 하늘에서 싸웠습니다. 창군 초기에 대한민국 국군의 초창기 멤버들은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그 인적자원의 토대는 공통적으로 3군데였습니다. 바로 구일본군 출신, 아니면 만주군 출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복군 출신이 그것입니다. 김정렬장군은 경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에 일본의 예과사관학교에 입학해서 그곳을 졸업하고, 1941년에 다시 일본 육군 항공사관학교에 들어가 전투기 파일럿이 된 사람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맥아더가 방어하는 필리핀을 공략할 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서 싸운 실전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김정렬 장군이 처음에 공군을 만들 때도 그 인적 구성은 세군데 각기 다른 출신의 비행사들이 섞여있었습니다. 물론 수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역시 구일본군 출신의 파일럿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구일본군 출신 파일럿과 중국 국민당군 공군 출신인 파일럿들은 대륙의 하늘에서 서로 싸운 적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에 이들은 출신지를 불문하고 다 같은 한국의 군인으로서 일심협력하여 나라를 지켰지 누구도 너는 일본군 출신입네, 너는 광복군입네 편을 가르지도 않았고, 출신에 따른 파벌이 군내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구일본군 장교였던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불평을 말한 비행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김정렬장군은 모든 공군인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만약 당시에 일본군 출신이라서 배격하고, 천황한테 충성했다고 해서 내치고 그랬다면 공군이건 육군이건, 해군이건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인으로서 비행경험이 있고 조종간을 잡아본 인적자원을 총동원을 했는데도 공군은 경험 있는 비행사의 부족과 양성의 어려움에 늘 허덕거렸습니다. 이건 공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육군과 해군도 마찬가지였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공히 그랬고, 민간 기업과 학계, 언론계 역시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친일을 가지고 사람을 가리다가는 건국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법은 있었습니다. 북한처럼 빨치산 출신, 홍군 출신들이 대거 입국해서 모든 요직을 장악하고 소련군과 같은 압도적인 대규모 군사력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포정치, 철권통치, 군사국가로 가는 길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착지는 모든 동구권의 국가들이 보여준 바 그대로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북한처럼 됩니다.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면 우리가 걸어온 길이 옳습니다. 설령 다소의 친일 경력이 있더라도 새 조국의 건설에 그들의 능력과 자질을 바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랬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조금도 모르는 90년대 초의 공군사관생도들이 이 나라의 공군을 만든 자기들의 아버지를 친일로 매도해서 교내에서 데모를 하는 패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제가 예로써 공군의 김정렬장군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예가 비단 공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625전쟁 때 공산침략군과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장군들과 장교의 대부분이 일제 때 일본군 장교출신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고 이나마 잘살고, 자유로운 조국에서 숨쉬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군대만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정계, 재계, 학계, 종교계, 예술계 등 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그들 자신의 죄도 아니고, 그들 자신의 본의도 아니었던 일제시대의 경력 때문에 친일파로 낙인이 찍히고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아 그 명예는 더렵혀지고 그 공적은 깎이어 나갔습니다. 더욱 억울한 일은 그들이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전혀 모르는 아들과 딸들에게 그런 치욕을 당했다는 점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일제의 강점기간이 36년이었습니다. 한일합방이 되던 해 태어났던 사람이 서른 여섯 살에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암만 피식민지 백성이라 해도 한 인간이 40대가 될 때까지 배우지도 않고, 일도 안 하고, 취직도 하지 않고 그렇게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차별받고 멸시받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오기와 울분이 각계에서 더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일본인들과 경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신생독립국가들의 중추는 식민지 시절에 지배국가에 중용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간디, 네루, 막사이사이, 수카르노, 장개석, 이광요 등 공히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나라도 과거의 경력을 가지고 건국의 주역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방 직후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불문하고 모두가 합심단결해서 새 조국을 건설하는데 매진했던 것입니다. 반민특위가 하려고 했던 것은 그야말로 반인륜적이고, 빈민족적인 범죄자들의 처벌이었지 일제시대에 관직에 나가고, 장교가 되고, 신문기자를 하고, 법관을 하고 교수를 했다고 해서 단죄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시대의 주인공들이 무대의 뒤안길로 점차로 사라지게 되니까, 새삼스럽게도, 그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들의 입에서 '친일단죄론'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친일청산의 타겟은 반민족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같은 뛰어난 정치지도자들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민족 신문, 그리고 학계와 언론계, 경제계, 예술계, 문화계의 주류인사들이 친일이라는 신종 매카시즘의 칼날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종교계의 원로이자 민족의 지도자 중 한사람인 김수환 추기경까지도 일본군 장교복을 입은 젊은 시절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눈에도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통성과, 도덕적 권위,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에 흠집을 내고 상처를 입히자고 하는 목적이 드러나 보이는 친일청산론은 70년대부터 일부 학생들에게서 보이기 시작하다가 80년대에 들어와서 운동권이 당시의 권위적인 정권을 공격하는 주된 무기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김일성 집단과 좌경화된 학생조직들이 한국의 주류계층을 공격하여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아킬레스건으로 발견한 것이 이 친일문제입니다.
  
광복이 되고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문제가 민족을 분열시키는 으뜸가는 이슈로 부각되어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대중적인 선전과 선동이 교묘하고, 사안 자체가 젊은 세대에 어필하기 쉽다 보니 이제는 순수한 애국적인 동기에서 '친일단죄론'에 합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급기야는 누구보다도 국가의 정통성과 도덕성에 확신을 가져야 할 공군사관학교의 생도들까지 단지 일본육사를 나온 일본군 장교였다는 이유만으로 공군의 창설자를 존경할만한 선배로 삼기를 거부하고, 당대의 모든 사람이 민족의 정기를 지켜온 민족신문으로 인정하고 감사를 표했던 조선일보의 윤전기가 독립기념관에서 끌어내려지는 참담한 꼴을 목도하기기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실을 바로 말하고 사실을 엄격하게 전해야 하는 책임을 기성세대들이 소홀히 한 잘못이 크다고 저는 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때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술로 해방 후에 건국에 참여하여 각계 각층에서 나라를 이끌었던 건국세력 및 그들의 뒤를 이어받은 근대화 주도 세력과, 이들에 의한 건국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근대화의 가치를 폄하하면서 이 주도세력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집단 사이의 전면적인 승부라고 저는 봅니다. 어느 쪽이 승리하고 어느 쪽이 나라의 주도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의 국가적 정체성과 국가관의 성격이 달라질 것으로 저는 예측합니다. 단순히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충돌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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