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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하나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호세아 11장 1절~12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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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1월 10일 (일) 17:33:12 [조회수 :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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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하나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호세아 11장 1절~12절

 

 

1. 무시와 무지의 죄악

 

➀ (1절~2절)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을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출애굽 노예 시절이다. ‘집도 절도 없다’ 가진 집이나 재산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아무 것도 없던 때다. 약할 때, 작을 때, 보잘 것 없던 시절, 사랑으로 구원하신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계2:4) ‘그러나 너를(에베소교회)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은혜 받았던 때, 한낱 노예로 살던 먼지 같았던 그때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점점 멀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고 경외해야할 하나님을 ‘무시’했다. ‘바알들을 제사,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 제사와 분향은 예배와 기도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안 섬긴 게 아니라 하나님을 잘못 섬긴 것이다. 예배는 희생, 자기부인인데 자기과시로 행했고, 기도는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좇는 순종인데 내 욕심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메시지성경) ‘갖고 놀기 좋은 신들로 종교놀음을 벌였다’

 

② (3절~4절)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도다”

▶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걸음을 가르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고 안내(guide)하시는 하나님, ‘팔로 안을찌라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guard), ‘사랑의 줄로 이끌었고’ 이끄시는 하나님(lead), ‘멍에를 벗기는 자’(freedom), ‘먹을 것을 두었도다’(Food) 몸과 마음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다. ‘고치는 줄 알지 못 하였도다’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외면한 ‘무시’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때문이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고 순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믿음과 순종이 구원의 길, 다시 사는 길이다.

▶ (계3:17~19) ‘네가 말하기를(라오디게아교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구원의 유일한 길은 믿음(무시에서 보는 것)과 순종(무지에서 아는 것)으로 회개하는 길 뿐이다.

 

 

2.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① (5절)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사는 데 돌아오지 않고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앗수르의 침략 앞에 또 다른 강대국인 애굽을 의지했다. (사31: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메시지성경) ‘인간에 불과한 존재들에게 아첨하는 짓을 그만두어라 그들은 자아와 허풍으로 가득할 뿐, 별 볼일 없는 존재인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② (6절)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 ‘칼’은 앗수르의 침공을 가리킨다.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무엇을 의지하는지, 무엇을 의뢰하는지 드러난다.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라’ 하나님을 찾기보다 세상적인 방법(인간적인 자구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삶의 문제 앞에서 삶의 주관자 되신 주님께 의뢰하고 의지하기보다 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뢰하는 이유는 돈과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믿기 때문이다.

 

③ (7절)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의지적인 결심이었다. ‘위에게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메시지성경) ‘개선의 노력은 번번히 무산 되었다’ 33회 감리교회 입법의회는 타락한 금권선거제도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결정권을 비워두는 제비뽑기’로 돌이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제비뽑기가 부결 된 건 단순히 선거방식을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우리 뜻대로 하기’를 스스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과, 저주받은 감독회장이 또 한명 탄생할 것이다. 감리교회의 선교의 문이 막히고 더 급속하게 침체할 것이다. 한국감리교회가 사는 길, ‘법정소송’에서 자유 하는 길, ‘금권타락선거’로부터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하신다. 가정과 개인의 삶도 동일하다.

 

 

3. 의의 최후승리를 믿노라

 

① (8절)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하도다 ”

▶ (메시지성경)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단념하겠느냐?’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직 여기에 희망이 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가능하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했던 주변의 성읍들이다(신29:23).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으시고 결코 버리시지 않는 다.’ 마치 번지점프처럼 내가 주님을 붙잡는 게 아니다. 우리는 약해서 놓치고 악해서 버리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붙잡아 주심으로 구원에 받는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절망과 위기의 순간에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 다’ 우리의 죄악이 가벼워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더 크고 깊기 때문이다.

 

② (9절) “내가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 구원의 길은 하나님께서 진노보다 긍휼이 더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메시지성경)‘아무리 노여워도 나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겠느냐? 나는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며 지금 여기 너희 가운데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속적인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의 원리를 초월한다. 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인 ‘에로스’와 차원이 다른, 변함없는 자비와 긍휼인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다. 죽어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거룩하신(구별, 다른, 초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증거 하신다. 징계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길 원하신다.

 

③ (10절~11절)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내 백성이 마침내 하나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의의 최후승리다. ‘내가 그들을 다시 고향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약속)이다’ 죄악으로 인해 앗수르에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임을 선포하신다. ‘사자처럼 포효할 때’ 잠시 앗수르와 바벨론이 성하도록 내버려두시지만 마침내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역사하시고 구원하시는 날이 온다. 비록 악이 성하고 성도들이 핍박이 극심해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하신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일 뿐이다. 대적자(사단)가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거역하는 일이 만연하지만 ‘마지막 때가 이르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구원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어떤 믿음인가? 의의 최후승리를 믿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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