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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모르는 이야기’를 꺼내라.
김학중  |  hjkim@dream1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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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1월 03일 (일) 23:07:20 [조회수 : 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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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자녀를 얻은 부모라면 누구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고심한다. 그만큼 이름을 짓기가 참 중요한데, 아이들이 태어난 해마다 유독 인기가 있고 선호하는 이름들이 있다. 1982년에 태어난 여자 아이들의 이름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이 바로 ‘지영’이라고 한다.

 지영이라는 이름이 유독 82년생들에게 많다는 것을 한 소설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난 2016년에 출간된 <82년생 김지영> 이 소설은 ‘조남주’라는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여자’로 태어나서 ‘여성’으로써 겪어야 하는 소외와 냉대를 소설과 리포트 형식의 중간쯤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지영’은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문화와 남녀차별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다. 학교에 가서는 여자 아이가 품위를 단정하게 하지 못해서 남학생에게 곤란한 일을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을 받는다. 사회에 나가보니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여직원은 인정받기가 힘들고, 아이를 낳아서 엄마가 되고 보니 ‘맘충’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결국 서른네 살 김지영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친정 엄마, 남편의 옛 애인, 학교 선배 등으로 빙의해 주위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여전히 평범한 김지영의 삶을 살고 있어도, 속으로는 타인에게 원하지 않는 상처를 입고, 병이 들어버린 것이다.

 1999년 우리나라는 법적인 제도로 ‘남녀차별 금지법’을 제정했다. ‘여성부’가 만들어졌고, 현재는 ‘여성가족부’로 유지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제도적으로는 차별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법제도는 제도일 뿐,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개선이 되었다거나, 성평등에 관한 의식 수준이 향상되었다거나 딱히 변화를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달 23일에 <82년생 김지영>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 개봉되었다. 이번 달 1일 기준으로 국내박스오피스 순위에 이 영화는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누적 관객 수는 19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누적 매출은 15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 이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여성이라는 존재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누군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을뿐더러, 누군가는 전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단시간의 흥행으로 우리 사회가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왜곡된 시선과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 영화가 제작 단계에 들어갔을 때부터 기대한 반면에, 다른 경우는 어떤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해당 배우는 악플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영화를 관람한 후 유명 연예인들의 후기나 소감이 달릴 때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혹평이 난무하곤 한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는 젠더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그런 찬반논쟁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느 시사 잡지의 인터뷰에서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2019년을 사는 김지영들에게 괜찮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지영이 어머니보다는 지영이가, 지영이보다 지영이 딸 아영이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지난 달 말에 이틀에 걸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제33회 총회 입법의회’가 열렸다. 감리교회의 기준이 되고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어야 할 장정의 법들을 시대에 맞게 개편하는 자리였다. 지금의 현실에 맞게 낡은 것은 고치고, 새로이 추가 되어야 할 것들을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며, 중대한 결정을 내린 시간이었다.

 현 감독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하며 체감한 것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지금의 감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나 약점을 잘 보완해야 할 것!’ 법제도와 현실의 괴리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혀야 할 의무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600명 가까이 되는 각 연회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벌이는 핵심은 ‘감리교회의 정상화’를 위해서, 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일 것이다.

 이번 의회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피드백이나 다양한 시선들이 있을 것이다. 첨예한 대립이나 입장 차이에 대하여 ‘그럼 그렇지 뭐 뻔한 것 아니겠냐?’하며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런 의견들까지 겸허히 수용하면서 공동의 선을 목표로 의견을 모아야 할 때이다. 감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기억하며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들을 치열하게 꺼낼 때이다. 그것이 바로 ‘2019년의 감리교회보다는 2020년의 감리교회를 위해서, 더 나아가 2020년보다는 앞으로의 감리교회를 위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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